최종편집:2025-11-26 07:49 (수)
실시간
[창간 5주년 특집] 성제훈 경기도농업기술원장 “농업, 첨단 융복합 산업의 중심”

[창간 5주년 특집] 성제훈 경기도농업기술원장 “농업, 첨단 융복합 산업의 중심”

  • 기자명 김동원 기자
  • 입력 2025.06.23 15:46
  • 수정 2025.06.23 15:48
  • 0
  • 본문 글씨 키우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모든 첨단기술 융합할 유일한 산업, 농업
음성인식 영농일지와 의농융합으로 새로운 농업 패러다임 구축

성제훈 경기도농업기술원장은 “농업은 쇠퇴하는 전통 산업이 아닌, 4차 산업혁명 기술을 총망라할 수 있는 유일한 융복합 산업으로 재정의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동원 기자
성제훈 경기도농업기술원장은 “농업은 쇠퇴하는 전통 산업이 아닌, 4차 산업혁명 기술을 총망라할 수 있는 유일한 융복합 산업으로 재정의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동원 기자

한국 농업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직면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4년 농림어업조사 결과’에 따르면 농가 수는 97만 4000가구로 전년 대비 2.5% 감소했고, 농가인구는 200만 4000명으로 전년 대비 4.1%나 급감했다. 2023년 99만 9000가구에서 1년 만에 2만 5000가구가 사라진 것이다. 2050년 농촌인구는 845만 명까지 감소할 것으로 전망되며, 전체 농업경영주의 1.2%에 불과한 청년 농업 비율은 일본(4.9%), 프랑스(19.9%)에 비해 극히 낮은 수준이다. 농촌소멸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위기는 곧 기회다. 지난달 경기도 화성시에 소재한 경기도농업기술원에서 만난 성제훈 원장은 이런 절망적 현실을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로 완전히 뒤바꿀 수 있다고 확신했다. “농업은 쇠퇴하는 전통 산업이 아닌, 4차 산업혁명 기술을 총망라할 수 있는 유일한 융복합 산업으로 재정의돼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디지털 농업 분야 권위자인 성 원장은 농촌진흥청 디지털농업추진단장을 거쳐 지난해 1월 현 직책에 취임했다. 1994년 컴퓨터 영상처리 석사과정을 거쳐 1998년 농업 관련 기술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30여 년간 AI와 빅데이터를 통한 농업 혁신을 주도해 왔다.

그는 “항공우주, 조선, 자동차 등 기존 제조업과 달리 농업은 바이오테크, ICT, 로봇공학을 동시에 접목할 수 있는 플랫폼 산업의 특성을 갖고 있다”면서 “농업은 21세기 컨버전스 기술의 테스트베드이자 실증 무대가 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가 제시하는 미래 농업은 SF 영화를 방불케 한다. 아침에 정수기 앞에 서면 얼굴 인식으로 개인 맞춤형 혈압약이 자동 배출되고, AI가 전날 식사를 분석해 부족한 영양소를 파악한다. 개인 유전자 정보 기반의 맞춤형 농산물이 로컬푸드에서 자동 주문·배송되는 혁신적 시스템이다.

◇ AI가 농업 명장의 노하우를 전수한다

농업계 최대 현안 중 하나는 고령화다. 농업인 평균 연령이 70세를 넘어서면서 숙련 기술자들의 대거 은퇴가 임박했다. 특히 40년 이상 농사를 지은 베테랑 농민들이 향후 5~10년 내 대부분 현장을 떠날 예정이어서, 그들이 축적한 경험과 노하우가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성 원장은 이런 ‘농업 지식의 단절’ 문제를 AI로 돌파할 수 있다고 봤다.

핵심은 영농일지의 혁신이다. 현재 농민들은 정부 보조금을 받기 위해 영농일지를 작성하지만, 대부분 연말에 몰아서 기억에 의존해 적는 형식적인 경우가 많다. 성 원장은 “현재의 영농일지는 보조금 신청을 위한 형식적 기록에 그치고 있어 실질적인 데이터로서의 가치가 부족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가 개발 중인 시스템은 스마트폰 앱 기반의 음성인식 기술을 활용한다. 농민이 “오늘 오전 10시에 토마토 하우스 1동에 칼슘 엽면시비 했음. 농도는 1000ppm”이라고 말하면, AI가 자동으로 작업 내용, 시간, 장소, 사용 자재, 농도 등을 구분해 영농일지 데이터베이스에 저장한다. 1년간 축적된 이런 세밀한 데이터를 AI가 분석해 우수 농가와 일반 농가의 작업 패턴 차이를 찾아낸다.

예를 들어 같은 토마토를 재배해도 수확량이 30% 높은 김모 씨는 파종 후 45일째 되는 날 반드시 칼슘 보충을 하고, 개화기에는 3일 간격으로 엽면시비를 하는 반면, 일반 농가는 이런 타이밍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는 식의 패턴을 도출한다.

그는 “우수 농업인과 일반 농업인의 작업 패턴을 비교 분석하여 최적화된 농법 알고리즘을 구현할 수 있다”면서 “이를 신규 농업인이나 기술 부족 농민에게 제공하겠다”고 설명했다.

특히 개별 명장의 이름을 모델에 붙여 ‘김철수 토마토 재배 모델’, ‘박영희 딸기 농법’ 식으로 브랜딩할 계획이다. 신규 농업인은 앱에서 “김철수 모델 적용”을 선택하면, 파종부터 수확까지 김씨의 농법을 단계별로 안내받을 수 있다. 심지어 “내일은 칼슘 엽면시비를 해야 합니다. 농도는 1000ppm으로 하세요”처럼 구체적인 알림도 받는다.

성 원장은 “개별 농업 명장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면서 동시에 그들의 노하우를 체계화해 농업계 전체의 기술 수준 향상을 도모하겠다”고 말했다. 명장들에게는 자신의 농법이 모델로 활용될 때마다 일정한 수익도 배분할 예정이다.

성제훈 원장은 “공급자 중심의 대량생산 체계에서 벗어나 소비자 니즈 기반의 주문형 농업으로 전환해야 생산자와 소비자 간 상생이 가능하다”고 조언했다. /김동원 기자
성제훈 원장은 “공급자 중심의 대량생산 체계에서 벗어나 소비자 니즈 기반의 주문형 농업으로 전환해야 생산자와 소비자 간 상생이 가능하다”고 조언했다. /김동원 기자

◇ 농업과 의료의 융합, 개인맞춤형 식단 제공

성 원장의 더 큰 비전은 농업과 의료의 융합이다. 그가 구상하는 시스템은 이렇다. 고혈압 환자가 약국에 가면 약사가 혈압약과 함께 “칼륨이 풍부한 바나나와 시금치를 드세요”라고 추천한다. 환자가 동의하면 QR 코드를 찍어 인근 로컬푸드 직매장으로 주문이 자동 전송되고, 1~2시간 내 신선한 농산물이 배송된다.

약국은 농산물 판매 수수료를, 로컬푸드는 새로운 판로를, 농민은 안정적인 수요를 각각 확보하는 윈윈 구조다. 현재 약국에서는 의약품만 판매할 수 있지만, 성 원장은 향후 약사법 개정을 통해 건강 관련 농산물도 함께 판매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더 나아가 그는 웨어러블 기기를 통해 개인의 혈압, 혈당, 심박수 등을 실시간 모니터링하고, 수치에 이상이 생기면 자동으로 담당 의사에게 알림이 가는 시스템을 구상하고 있다. 의사의 처방에 따라 필요한 약물은 약국에서, 권장 농산물은 로컬푸드에서 자동 주문되어 당일 배송되는 완전 자동화 헬스케어 생태계다. 일례로 당뇨 환자의 혈당이 갑자기 오르면, 시스템이 자동으로 “혈당 상승 감지. 의사 상담 예약됨. 오늘 저녁 식단으로 현미밥과 브로콜리 주문 완료”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식이다.

◇ 농업만이 모든 산업 아우를 수 있어

성 원장은 농업이 미래 융합 산업의 중심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3D 모델링, 신재생에너지, 식품안전, 웰니스 케어를 통합적으로 아우를 수 있는 산업 영역은 농업이 유일하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식물공장 기술이 우주 산업에서 시작되고, GPS가 군사 목적에서 농업으로 확산된 것처럼, 농업은 다양한 분야의 첨단 기술을 흡수하며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왔다. 이런 관점에서 그는 농업 정책 역시 기존의 생산자 중심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급자 중심의 대량생산 체계에서 벗어나 소비자 니즈 기반의 주문형 농업으로 전환해야 생산자와 소비자 간 상생이 가능하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하지만 그의 구상이 기술 만능주의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세대별 특성을 고려한 차별화된 접근법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고령 농업인들에게는 “기존 농업인들의 전통적 농법은 존중하되, 마케팅과 유통 부문의 기술적 지원을 통해 경쟁력을 높여드리겠다”며 기존 방식을 유지하면서도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했다. 반면 젊은 농업인들에게는 AI와 빅데이터를 활용한 스마트 농업 기술을 적극 도입해 차세대 농업을 이끌어가도록 지원하겠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농업 혁신의 궁극적 목표는 예방 중심의 건강 관리에 있다. 성 원장은 2018년 세계경제포럼의 ‘질병과 직접 싸우지 않겠다’는 선언을 언급하며 “질병이 발생한 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음식을 통해 질병을 예방하거나 발병 시기를 늦추는 것”이 농업 기술 발전의 핵심 가치라고 강조했다.

끝으로 그는 “농업의 미래는 AI와 빅데이터 기반의 개인 맞춤형 헬스케어 서비스 제공을 통해 의농융합이라는 새로운 가치 창출 영역을 개척하는 것”이라며 “기술과 인간의 조화, 생산과 소비의 균형, 건강과 식품의 통합을 실현하는 21세기 대표적인 혁신 산업으로 농업이 진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저작권자 © THE A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