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조선미디어그룹이 설립한 인공지능 전문 매체, ‘더에이아이(THE AI)’가 창간 5주년을 맞이했습니다. THE AI는 생성형 AI 열풍이 불기 전부터, AI 가능성과 한계를 탐구하며 깊이 있는 취재와 분석을 이어왔습니다. 이번 5주년 특집에서는 국내외 AI 석학 및 전문가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AI 기술의 현재와 미래를 조망합니다. AI 혁명의 최전선에 서 있는 여러 전문가의 통찰과 비전을 독자 여러분께 전합니다.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앞으로 사람들은 취향에 맞는 콘텐츠만 소비하게 됩니다. 인공지능(AI)이 콘텐츠 생산자와 소비자 경계를 허물었을 뿐 아니라 산업 구조 전반을 바꾸고 있습니다”
이재성 중앙대 인공지능학과 교수 겸 인공지능연구소장의 말이다. 그는 AI 기술로 인한 ‘하이퍼 퍼스널라이제이션’ 콘텐츠 시대가 이미 시작됐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AI가 창작 방식만을 바꾸는 것이 아닌 소비 방식 자체를 재편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내 취향이 아니면 콘텐츠를 보지 않을 것”이라며 “AI로 콘텐츠 자체를 소비자 취향에 맞게 변형하거나 생성하는 것이 쉬워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전엔 자신의 취향은 아니지만 그냥 본다는 경우가 있었지만 이제는 이러한 것이 없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성 교수는 중앙대 인공지능대학원 교수로 기계학습 자동화 연구실을 이끌고 있다. 지난해 킨텍스 제2전시관에서 열린 ‘THE AI SHOW(TAS) 2025’에서 연구실 학생들과 개발한 어린이 동화 자동 생성 기술 ‘TaleGPT’과 얼굴 사진을 웹툰 캐릭터 스타일로 변환하는 기술 ‘웹툰 스타일 트랜스퍼(Webtoon Style Transfer)’를 선보였다.
이러한 기술들은 콘텐츠 생성의 진입 장벽을 낮추고 있다. 이 교수는 “콘텐츠 창작의 장벽이 AI 기술로 인해 사라지고 있다”며 “누구나 생산자와 소비자가 될 수 있는 프로슈머가 강화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AI는 창작자의 문턱을 낮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기존의 창작 과정에 변화를 주고 있다. 이 교수는 “일본에서 어시스턴트 개념의 문화생을 고용하지 않고 혼자 작품을 제작하는 작가들이 생기고 있다”며 “전통적으로 스토리텔러와 작화가가 분업하던 방식에서 작화가를 AI로 대체하는 식으로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또 AI에 의한 ‘사다리 걷어차기’ 현상도 나타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과거에는 창작자가 되기 위해 일정한 루트를 밞아야 했고 이 과정에서 성장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AI를 활용해 완성도 높은 결과물을 처음부터 쉽게 만들 수 있는 시대가 됐다”면서 “이러한 흐름이 기존 도제식 창작 구조를 없애고 신인 창작자가 성장할 수 있는 사다리도 없앨 수 있다”고 했다.
이 교수는 하나의 이미지나 콘텐츠를 원하는 스타일로 바꿀 수 있는 ‘스타일 트랜스퍼’ 생성 AI 기술이 마케팅의 판도를 바꿀 수 있다고 전망했다. 최근 오픈AI 챗GPT 지브리풍 열풍이 부는 것만 보더라도 이러한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단 저작권으로 인한 연구적인 한계가 존재한다. 그는 “같은 제품이나 서비스도 어떤 스타일로 포장하는지에 따라 소비자 반응이 달라질 수 있어 마케팅 전략에 스타일 트랜스퍼 기술이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다만 저작권으로 인한 연구적 한계가 커 연구 자체도 쉽지 않아 학회에 이 분야에 대한 연구가 적을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재성 교수와 AI로 바뀔 콘텐츠 분야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 생성형 AI 발전으로 콘텐츠의 형식과 소비 방식이 진화하고 있다. 향후 콘텐츠 분야 전망은.
“프로슈머 개념이 강해질 것 같다. 예전에는 콘텐츠를 만드려면 전문 지식을 갖췄어야 했다. 챗GPT 같은 생성형 AI가 나오면서 콘텐츠를 생산하는 자와 소비하는 자의 경계가 없어졌다. AI가 콘텐츠를 소비자 취향에 맞게 맞춤형으로 제작해주는 것은 더 쉬워질 것이다. 이에 창작자의 정체성(identity)이 더 중요해질 것 같다. 작화 능력은 AI가 더 잘 할 것이다. 단순한 스킬만 가지고는 경쟁력이 없어지고 다른 사람의 스타일을 따라 만든 콘텐츠는 결국 금방 AI로 대체될 수 있다. 지브리, 심슨 등 자신만의 창의적인 콘텐츠를 브랜드로 만들어야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
- 콘텐츠 분야 AI 기술 소비 방식을 어떻게 바뀔 수 있나.
“또 하나 중요한 변화는 콘텐츠가 마케팅 산업 안으로 들어온다는 점이다. 콘텐츠 자체는 점점 짧아지고 마케팅 요소가 포함된다. 스타일 트랜스퍼 기술 같은 것도 여기에 중요한 영향을 준다. 같은 콘텐츠라도 어떻게 포장하느냐에 따라 소비자 반응이 다르다. 결국 콘텐츠 산업이 점점 마케팅 산업에 편입될 수 있다. 사람의 뇌가 좋아하는 콘텐츠와 눈이 좋아하는 콘텐츠는 다르다. 예를 들어 우주 콘텐츠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다른 콘텐츠를 우주 스타일로 입히면 그 콘텐츠는 소비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러면 기존에는 안 보던 콘텐츠도 보게 된다.”
- 저작권 문제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원론적인 답은 데이터 소스에 저작권을 걸고 유료로 쓰게 하면 된다. 학습은 무료로 하더라도 상품화되면 원작자에게 대가를 줘야 한다. 문제는 콘텐츠 산업이 영세하다는 점이다. 개별 창작자가 권리를 행사하기 어렵다. 정부가 나서서 단체를 만들고 법적 소송이나 구제책을 마련해줘야 한다.”
- 기계학습 자동화 연구실에선 어떤 콘텐츠 AI 기술을 연구 중인가.
“연구실에서는 학생들이 하고 싶어 하는 연구를 하는 편이다. 그래픽 쪽에서 AI로 많이 전환되고 있다. 다만 검증받기 어려운 기술이다 보니 논문 내기 힘들다. 연구가 논문으로 정식 발표되기 어려워 피어 리뷰가 안 되는 경우가 많다. 이에 지난해 ‘TAS 2025’ 전시회에 참여해 연구한 기술들에 대해 직접 피드백을 받았다. AI 기반 콘텐츠 기술 특히 스타일 트랜스퍼나 콘텐츠 생성 같은 분야는 저작권 문제로 학문적 논문을 내기 어렵다. 학회에서 정식 논문으로 발표하는 경우도 드물다는 한계가 있다.”
- 챗GPT 같은 생성형 AI 기술이 콘텐츠 산업에 어떤 변화를 주고 있나.
“가장 큰 변화는 혼자 하는 창작이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일본 웹툰 작가들도 어시스턴트를 쓰지 않고 혼자 작업한다. 스토리텔링을 하고 이것을 만화로 구현하는 것에 더 이상 사람이 아닌 AI를 쓰겠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만화, 애니메이션 같은 콘텐츠를 만들 때 어시스턴트 역할에 AI가 쓰이고 있다.”
- 콘텐츠 분야 학생 교육은 AI 시대 어떻게 바뀌어야 하나.
“기존처럼 그림 잘 그리는 방식으로는 부족하다. AI가 80점짜리 콘텐츠를 쉽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나머지 20점을 어떻게 덧붙이느냐가 인간의 역할이다. 콘텐츠에 자기만의 스타일, 창의적 시선, 감성 등 기존에 없는 것들을 채워야 한다. 결국 본인만의 아이덴티티가 있어야 한다. 도제식 콘텐츠는 경쟁력이 없어진다,”
- 현재 진행 중인 연구가 AI 기술 발전에 어떤 기여를 할 것으로 보나.
“현재 이미지 스타일 트랜스퍼 기술을 고도화하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전혀 다른 성격의 이미지와 스타일을 결합해 창의적인 결과물을 생성하는 것이 목표다. 지브리 소스 이미지에 지브리 스타일을 씌우는 건 쉽다. 그래서 괴기스러운 이미지에 아기들이 좋아한 법한 파스텔톤 스타일을 입히는 거다. 이러한 조합은 전례가 없는 조합이라 시스템 입장에서도 당황해 결과물이 괴상하게 나오기 쉽다. 눈이 여러 개 달린 암모나이트처럼 비정상적인 이미지를 생성하는 건 시스템도 이러한 조합을 학습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금은 기존 레퍼런스 이미지에 과도하게 종속되는 스타일 전이를 완화하고, 좀 더 자연스러우면서도 창의적인 이미지를 생성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 향후 1~2년 내 AI 콘텐츠 기술이 어떤 방향으로 발전할 것 같나.
“멀티모달 능력을 키우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이미지 스타일 전환을 예로 들면 이미지에서 이미지로 바꾸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를 넘어 이미지, 소리, 영상을 통합해서 생성하게 될 것이다. 화면과 입 모양 소리를 맞추는 얼라인먼트 같은 게 핵심이다. 이런 기술은 이미 존재하지만 앞으로는 이것을 어떻게 잘 조합해서 통합된 콘텐츠를 만들어내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다.”
- 5년 후 AI 콘텐츠 생산 자동화는 어떻게 진화할 것으로 전망하나.
“이미 크랭크인은 시작됐다. 콘텐츠 생성 과정 대부분이 AI가 활용되거나 대체될 거라고 본다. 특히 CG나 특수효과 같은 비용이 많이 드는 분야가 먼저 대체될 거다. 생성형 AI 기술을 활용 안 하면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다. 어떤 콘텐츠 소스가 있으면 이것을 활용해 여러 유형의 콘텐츠로 만드는 원소스멀티유즈가 더 빠르고 활발해질 것이다. 브랜드와 같은 정체성이 있는 콘텐츠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 소수의 사람이 이 시장을 차지하는 그림이 될 수 있다. 창작자는 두 가지로 나뉠 것이다.”
- 콘텐츠 분야 AI 격차에 대비해 어떤 준비가 필요하나.
“격차라고 부르기보다는 ‘AI에 의한 사다리 걷어차기’라고 표현하고 싶다. AI 기술이 발전할수록 신입이나 초보자가 이 산업에 들어오기 힘든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다리를 놔주는 방법밖에 없다. 첫 번째는 교육이다. 예술 분야에서 영재들에게 조기 교육을 통해 본인만의 스타일을 찾을 수 있게 하는 거다. 예를 들어 송소희 국악가가 국악과 락을 섞어 자신만의 아이덴티티를 만든다면 AI가 따라올 수 없는 영역이 된다. 이런 극소수의 인재는 AI를 걱정할 필요 없이 예술혼을 키우면 된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런 상위 몇 프로가 아니다. 그럼 두 번째 길이 필요하다. AI에 친화적이 되는 거다. AI가 80점짜리 콘텐츠를 만들어주니 이를 활용해 생산성을 높이고 자신만의 강점을 찾아야 한다. 전통적인 연필 작화에 집착하는 분들은 경쟁력을 잃을 가능성이 크다.”
- AI 콘텐츠 시장 발전을 위한 방안은.
“최근 딥시크 등장이 거대 모델에서 효율적 AI로 관심이 옮겨가는 계기가 된 거 같다. 기업도 효율적인 AI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큰 기회다. 딥시크가 그 토양을 만들었다고 본다. 우리나라도 이런 흐름에 집중해야 한다. 인재 양성도 국내에 남아 있을 수 있는 인재를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국내 기업, 스타트업에 뿌리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스타트업 종사자가 대학원에 진학해 학위도 받고 동시에 자사 프로젝트에 AI를 도입할 수 있게 하는 재직자 교육 지원을 늘려야 한다. 정책적 뒷받침과 지원이 확대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