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디지털교과서를 둘러싼 각계의 입장 차이가 좁혀지지 않는 가운데 교과서 발행사들이 오는 21일 국회 앞에서 대규모 시위를 예고하고 있다. AI 교과서 정책에 대한 갈등은 더욱 심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18일 천재교과서에 따르면 발행사들은 21일 국회의사당 앞에서 오전 초중등교육법 개정 반대 시위를 개최할 예정이다. 이날 교과서발전위원회와 발행사, 에듀테크 개발사 임직원, 대표 교사 등 교육 현장 관계자 약 5000명이 참석할 것으로 예상된다.
AI 교과서 발행사들의 AI 교과서의 지위를 교육자료로 격하하는 초중등교육법이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 상임위원회를 통자하자 지난 11일 AI 교과서 발행·예정사 20곳과 교과서발전위원회는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AIDT 위헌적 입법 철회를 위한 발행사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AI 교과서 폐기는 교육의 미래를 버리는 것"이라며 즉각 중단을 요구했다.
발행사들은 AI 교과서 개발을 위해 한 권당 40억원 이상을 투자했고 총 20개사가 최소 8000억원 이상을 투자하고 3만 6000명의 종사자가 근무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준우 아이스크림미디어 대표는 "AI 교과서를 교육자료로 격하시키는 것은 미래 교육을 무력화시키는 정책"이라며 "AI 3대 강국 정책에서 교육만 후퇴하려고 하는지 의문"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지난 14일에는 국회와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릴레이 시위를 벌이며 "“AI 활성화라며 AIDT 부정이 웬 말이냐”, “AI에 10조 쓰겠다면서 교과서는 격하?” 등 피켓을 들고 정부 정책을 강력히 비판했다. 발행사들은 헌법소원과 행정소송 등 모든 법적 수단을 동원하겠다는 입장을 지속적으로 밝혀왔다.
◇ 정부 내부서도 입장 갈려
AI 교과서 정책을 둘러싼 혼란은 정부 내부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하정우 대통령실 AI 미래기획수석은 AI 디지털교과서의 교과서 지위를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 수석은 지난달 15일 AI 수석으로 취임한 뒤 대통령실 내부 논의에서 AI 교과서를 계속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네이버클라우드 AI혁신센터장 시절부터 AI 교과서에 우호적인 입장을 유지해왔다. 과거 자신의 SNS에 "최근 미국, 이스라엘, 일본, 중국 등에서는 오히려 교육에 AI 도입을 빠르게 달려나가고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진숙 교육부 장관 후보자도 16일 국회 교육위원회 인사청문회에서 AI 디지털교과서 문제에 대해 “절차적 합리성과 소통 문제가 아쉬웠다”고 “합리적이고 모든 현장과 관련 관계부처, 전문가와 소통을 하면서 절차적인 합리성을 지켜가면서 추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답했다.
배경훈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AI 교과서 문제에 대해 말을 아꼈다. 그는 “여러 지금 입장도 있고 저도 살펴봐야 할 부분이 있다”고 했다.
◇ 교육부 vs 민주당, 팽팽한 대립
교육부는 AI 교과서 도입의 정당성을 강조, 새 정부 설득에 나섰다. 교육부는 AI 교과서와 관련해 새 정부에 보고하면서 ‘부분 도입’, ‘전면도입’, ‘폐지’ 세 가지 경우의 수를 제시한 뒤 '폐지' 시나리오에 부정적인 내용을 다수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교육부 관계자들은 또한 국회와 국정기획위에 AI 교과서가 폐지되면 교과서 업체에 3000억원 규모의 배상을 해야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장세린 교사노조 사무총장은 “과거 교과서 정책이 바뀌며 손해봤다는 이유로 소송을 했던 출판사들이 국가 상대 소송에서 패소한 적이 있다”며 “실패한 정책을 밀어붙인 교육부가 소송핑계를 대며 기존 정책을 옹호하는 데에 숨은 의도가 있진 않은지 의심스럽다”고 반박했다.
더불어민주당은 “AI 교과서의 교육자료화에는 변함이 없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김영호 국회 교육위원장은 지난 2일 “여야 의원들이 납득할 수 있는 AI 교과서의 미래 설계를 해올 것”을 교육부에 요구했다. 고민정 민주당 의원은 국회 교육위원회 전체회의에서 “AI 교과서를 전면 금지하겠다는 입장은 변함없다”며 “오늘 전체회의에서 법안이 상정되지 않은 것은 교육부가 마지막으로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을 드리고자 함”이라고 했다.
◇ 발행사들 “인력 50% 줄여야”
발행사들은 지위가 교육자료로 격하될 경우 투자비 회수가 불가능해 회사당 최대 1000억원 가까운 손해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만약 법안이 확정되면 발행사들은 최소 50~60%에 달하는 관련 인력을 정리해야 한다고 밝혔다. 일부 발행사들은이미 의무 도입에서 올해 ‘자율 선택’으로 권한을 전환한 것에 대해 행정소송을 제기한 상태이다.
맞춤형 학습을 표방하는 AI 교과서는 올해부터 도입됐다. 지난해 정부 예산만 최소 5330억원가량이 투입됐다. AI교과서의 효과에 대한 이의 제기가 잇따르면서 올해는 원하는 학교만 선택해서 쓰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백승아 의원실에 따르면 올해 1학기 전체 가입자 중 사용률은 14.5% 수준에 그쳤다.
한 발행사 관계자는 “정부 주도로 개발되어 현장에서 실제 사용 중인 AI 디지털교과서의 지위를 이제 와서 변경한다는 것은 정책 신뢰를 뿌리째 흔드는 조치”라며 “폐기가 아니라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헀다.
AI 디지털교과서가 교육자료로 격하될 경우 의무 교육 대상에서 제외되어 지역별·학교별 예산에 따라 도입 여부가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또한 교과서와 달리 저작권료 등 추가 비용이 발생하여 이용률이 더욱 감소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한편 AI 교과서는 AI 시대 교육 혁신으로 학생 개인의 수준에 맞는 ‘맞춤형 교육’을 위해 윤석열 정부에서 교육부가 적극적으로 추진해온 정책이다. 지난해 업체 12곳 76종의 AI 교과서가 검정 심사를 통과했고 올해 3월부터 전국 학교의 32%, 초 3·4학년(영어·수학), 중 1·고 1(영어·수학·정보) 학생들이 사용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AI 디지털교과서의 ‘교과서’ 지위를 폐지하고 이를 ‘교육자료’로 격하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에 따라 지난해부터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발의해 AI 교과서의 법적 지위를 ‘교육자료’로 변경하는 움직임을 지속해왔다. 국회 교육위원회는 지난 10일 해당 개정안을 상임위원회에서 재석 15인 중 찬성 9인, 반대 6인으로 통과시킨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