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위한 인공지능(AI) 교육 정책이 역행하고 있다. AI 디지털교과서(AI 교과서)의 ‘교과서’ 지위를 박탈하고 ‘교육자료’로 격하하려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이 이달 말 국회 본회의에 상정된다. 상임위원회를 통과한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 AI 교과서는 교육자료가 되고 사실상 폐지 절차를 밟게 된다.
AI 교과서는 정부 주도로 수년간 개발돼 온 핵심 미래 교육 인프라다. AI 교과서에는 약 2조 원에 이르는 민간 투자와 이를 위해 3만6000명 이상의 인력이 투입됐다. 정부도 AI 교과서 도입 인프라 구축을 위해 5300억원의 국민의 세금을 썼다. 이는 국가의 예산과 민간의 투자가 들어간 국가 전략 사업이다. 이를 단숨에 ‘교육자료’로 격하한다면 지금까지의 정책적 일관성은 물론 미래 교육을 위한 기술적 기반까지도 무너질 수 있다.
AI 산업을 국가 전략으로 내세우는 정부가 정작 교육 분야에서만큼은 시대 흐름을 거스르는 모순된 결정을 내리고 있다. 정부는 ‘AI 3대 강국(G3) 100조 투자’를 국가 전략으로 AI 산업 육성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정작 초·중등 공교육 현장에서는 국가가 주도한 ‘AI 디지털 교과서’를 아무런 검증 없이 교육자료 수준으로 격하시키는 입법을 밀어붙이고 있다.
이러한 모순에 대해 현장에서는 정책 기조가 거꾸로 가고 있다는 지적이 터져 나온다. AI 교과서는 정부 주도로 수년간 개발됐다. 교과서라는 지위를 얻기 위해 발행사와 개발사들은 까다로운 검증 과정을 거쳐야 했다. 현재 학교에 AI 교과서를 제공하고 있는 발행사들은 “AI 3대 강국을 선언하고 AI 100조 정책에서 교육의 중심축인 AI 교과서가 정책 중심에서 제외됐다”며 “AI 교과서는 대한민국 미래 교육의 핵심 인프라이고 이를 하루아침에 교육자료로 격하하는 것은 국가 전략의 큰 후퇴”라고 지적했다.
AI 교과서 발행사들과 교과서발전위원회는 공동 성명을 내고 마지막 호소를 하고 있다. 이들은 11일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고 △AI 교과서에 대한 교육자료로의 지위 변경 즉각 중단 △초중등교육법 개정안 전면 재논의 △민·관·정 교육혁신 TF 즉시 구성 등을 요구했다. 공동 성명문을 낸 20곳의 발행사와 발행 예정사들은 헌법소원과 행정소송 등 법적 대응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AI 교과서 정책은 대한민국 교육이 AI 선도국가로 가느냐 정책 혼선 속에 후퇴하느냐의 갈림길이다. 교과서 지위를 유지하지 못하면 출판사들은 개발을 중단하고 고용 축소에 돌입할 것이다. 학생 정보 보호, 콘텐츠 질 관리, 즉각적인 업데이트 등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교사들도 쓰지 않게 될 것이다. 정부는 AI 교과서 개발사와 대규모 소송전도 치러야 한다.
AI 교과서를 도입하고 시행착오 과정을 겪어보지 못한 채 2조5300억원에 달하는 국민 세금과 민간 투자가 공중 분해되는 상황은 바람직한 정책 결정이라 할 수 없다. AI 교과서는 올해 처음으로 교과서 지위를 유지한 채 선택 도입됐으나 전국 학교 기준 실제 도입률은 32%에 그쳤다. 여기에 디지털원패스 전환 등의 기술적 혼선까지 겹치며 실질적으로 학교에서 제대로 운영된 기간은 4개월도 되지 않는다. 불과 4개월의 시행으로 수조 원에 이르는 사회적 투자와 수년간의 개발 노력을 무효로 하는 것이 과연 어떤 이점이 있는지 제대로 짚어봐야 한다.
더욱이 AI 교과서의 교육 효과에 대한 본격적인 진단과 검증은 이제 막 시작 단계다. 한국교육학술정보원(KERIS)의 주관 아래 서울대 교육학과가 참여한 3년간의 종단 연구가 기획돼 있었다. 현재는 초기 데이터 수집조차 완료되지 않은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효과성에 대한 충분한 평가 없이 교과서 지위를 급히 박탈하는 조치는 객관적 근거나 교육적 판단이라기보다는 정치적 결정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결국 가장 큰 피해자는 미래 세대다. 성급한 폐기보다는 실효성을 객관적으로 검증하고 제도적 보완책을 찾는 것이 정책이 지녀야 할 최소한의 책무다. AI 교과서가 이대로 끝나면 실험도 되지 못한다. 대한민국 교육의 미래를 위해서는 AI 기반 교육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은 전 세계적인 흐름이다.
이 흐름에 역행하는 것은 단지 하나의 정책 철회가 아니라 미래 교육 경쟁력 자체를 포기하는 일이다. AI 교과서를 둘러싼 혼선과 논란의 중심에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졸속 폐기가 아니라 신중한 평가와 지속적인 개선이다. 정부는 교육의 본질과 미래에 대한 책임 있는 선택을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