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디지털 교과서(이하 AI 교과서)의 ‘교과서’ 지위를 박탈하는 법안이 국회 통과를 앞두고 있는 가운데 개발에 참여한 에듀테크 기업들이 수백억 원대 손해 위기에 놓였다. 정부 정책을 신뢰하고 대규모 투자를 단행한 기업들은 정책 급변으로 인해 사실상 투자금을 회수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지난달 30일 국회 교육위원회 법안심사 소위에서 AI 교과서를 '교육 자료'로 격하하는 초·중등교육법 일부 개정안이 통과됐다. 2일 예정됐던 교육위원회 전체회의에서는 해당 개정안의 의결이 보류됐지만 여당이 법안 통과를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어 결국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개정안 의결이 보류됐지만 AI 교과서가 교육자료로 격하되는 것은 시간 문제로 여겨지고 있다. 국회 과반 이상을 차지한 여당이 개정안 통과를 강하게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법안을 상정하지 않은 것은 AI 교과서 정책을 정리할 시간을 드리기 위한 것”이라며 2일 열린 교육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교육부에 정책 철회를 요구했다.
AI 교과서 업계는 이미 현실적인 손실을 호소하고 있다. 현준우 아이스크림미디어 대표는 지난 1일 ‘THE AI’ 창간 5주년을 기념해 새 정부의 AI 정책 방향을 집중 조명한 민간인공지능특별위원회 토론에서 “저희도 초등 영어·수학 교과서 검정에 참여했지만 수학에서 탈락해 약 95억 원의 손실을 입었다”며 “정부 정책을 믿고 투자했는데 정책이 뒤바뀌면 기업이 모든 리스크를 떠안아야 한다”고 토로했다.
AI 교과서는 검정 통과 여부에 따라 수익 여부가 결정된다. 검정에서 탈락하면 개발비는 고스란히 손실로 처리된다. 그럼에도 지난해 많은 업체들이 정부 방침을 신뢰하고 장기적 관점에서 사업에 참여했다. 이들 기업은 과목당 최소 70억에서 100억 원 이상을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준우 대표는 “우리나라의 교육을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며 “이 정책이 성공한다면 우리가 다른 분야에서 1위를 했던 것처럼 글로벌 진출의 길도 열릴 수 있을 것”이라며 “정책이 일관성을 가지고 지속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현재까지 관련 업체들은 AI 교과서 공급에 대한 대금을 단 한 푼도 받지 못했다. AI 교과서 발행 업체들은 현재까지 교과서에 대한 대금을 한 푼도 받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출판사와 교육청·학교 간 구독료 발생 시점에 대한 견해차로 계약이 지연되고 있기 때문이다. 학교 측은 도입 초기 시스템 오류 등으로 사용이 원활하지 않았기 때문에 5월부터의 사용에 대해서만 구독료를 내겠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 교과서 발행사는 “평균 3년간 최소 4만 명 이상 사용자가 확보되어야 손익분기점을 넘을 수 있다”며 “교과서 지위를 전제로 구독료도 낮게 책정해왔지만, 교육 자료로 격하되면 수익구조 자체가 붕괴된다”고 우려했다.
이미 AI 교과서의 학교 채택률은 낮은 상황이다. 올해 3월부터 초등 3·4학년, 중1, 고1을 대상으로 영어·수학·정보 과목에서 AI 교과서를 도입했지만 전체 1만 1932개 학교 중 32%만이 이를 채택했다. 교과서는 학교가 의무적으로 사용하지만, 교육 자료는 학교 자율에 따라 선택되므로 향후 채택률은 더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올해 3월 말 비상교육, 천재교과서 등 AI 교과서 일부 업체는 AI 교과서 사업 손실로 관련 사업 부서 직원들을 감원하거나 다른 곳에 재배치하는 구조조정을 실시했다. 천재교과서, YBM 등 발행사들은 서울행정법원에 교육부 장관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한 상태이다. 향후 손해배상 등 민사소송까지 검토 중이다.
교육부는 지난해에만 교사 연수, 기기 구입, 인프라 구축 등으로 5300억원 넘는 예산을 AI 교과서 사업에 투입했다. 하지만 도입 4~5개월만에 예산만 수천억 원 낭비하고 학교 현장에서 사실상 퇴출되는 수순을 밞고 있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감사원도 국회 요구에 따라 지난달부터 교육부를 상대로 AI 교과서 도입 과정을 감사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교육부는 년년 도입을 목표로 지난달 13일부터 새로운 AI 교과서 검정 심사에 착수했다. 이번 심사에는 12개 업체가 총 74종을 신청했다. 업계는 평균 1과목 개발에 평균 100억 원 이상을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AI 교과서가 교육 자료로 전환될 경우 업계 전체 손실은 최대 7400억원에 달한다. 현재 교육부에서 진행하고 있는 디지털 튜터 2000명 선발도 무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