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의 인공지능(AI) 도입이 ROI(투자수익률) 실현의 불확실성 탓에 속도 조절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21일 IT업계에 따르면 AI를 빠르게 도입한 선발 기업들이 높은 성과를 거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명확한 수익 모델 부재로 신중한 접근을 택하는 기업들이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 2월 레노버코리아가 발간한 ‘CIO 플레이북 2025’에 따르면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AI 투자는 평균 3.3배 증가했으며, 한국은 무려 6.2배 늘어나 아태 평균의 두 배에 달했다.
아태지역 뿐 아니라 글로벌 전체로도 AI인프라 증설 등 투자는 늘어날 전망이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가트너는 올해 글로벌 IT 지출은 전년대비 7.9% 늘어난 5조4300억달러(7550조4150억원)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가트너는 생성형 AI와 인프라 증설이 투자 전체 증가를 견인할 것으로 전망했다.
투자 규모만큼 기업들의 AI 도입 의지도 늘고 있다. 레노버 조사에 따르면 국내 기업의 76%가 AI 도입을 고려 중이거나 향후 12개월 내 도입을 계획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는 아태지역(56%) 및 전세계(49%) 평균을 웃돌았다.
실제 성공 사례도 늘고 있다. 포브스코리아가 지난 1월 발표한 ‘2025 대한민국 AI 50’에 따르면 뤼튼테크놀로지스는 ChatGPT 다음으로 한국인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생성형 AI 앱으로 성장했고, 데이블은 11개국 약 3000개 미디어 업체에 개인화 콘텐츠 추천 솔루션을 제공하며 해외 시장에서도 선도 기업으로 자리 잡았다.
다만 이같은 투자 증설에도 한국에는 AI전환(AX) 부분에서 이른바 ‘퍼스트 무버’가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
국내에서 ‘퍼스트 무버’가 부재한 주요 이유로는 ROI 실현에 대한 부담과 불확실성이 지목된다. 기업이란 집단은 이익을 창출하는 곳인데, 당장 큰 투자에도 언제 수익이 날지 모르는 불확실성이 가장 크다는 것이다.
IT업계 한 관계자는 “기술력 부족이 가장 크지만 그 외에도 성과 실현까지 기간을 1~3년을 잡는데, 그 기간을 성공적으로 극복하는 것이 가장 크다”면서 “극복하는 기간동안 전사적으로 AX에 대한 피로감은 쌓이고 투자는 늘어야 하지만 불확실성에 오히려 줄어들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지난 3월 맥킨지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AI를 도입한 기업들의 80% 이상의 기업이 생성형 AI 사용에도 불구하고 기업 수익(EIBT) 측면에서 실질적인 효과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 4월 S&P 글로벌은 AI 프로젝트 대부분을 포기하는 기업의 비율이 지난해 17%에서 2025년 42%로 급증했으며, 주요 원인으로 비용과 불명확한 가치가 지목됐다고 밝히기도 했다.
성과 실현까지의 시간이 3년이 넘어가면 투자를 줄이기도 한다는 점도 지적됐다. IT 스타트업 한 관계자는 “아직 ROI를 달성하지 못한 기업 대부분이 예상 기간을 넘기면 비용 절감을 고려하기도 한다”며 “실제 프로젝트가 수익성을 달성한 기업은 절반도 안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ROI가 기업의 AI 투자나 AX의 목표로 잡지 말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업계에 따르면 AI 모델 하나가 여러 애플리케이션을 만들고 그 과정에서 다른 비즈니스적 가치가 창출돼 ROI 측정을 더 지능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 서버를 몇 대 구비하고 매출이 얼마나 성장했는지 비교하는 일련의 과정은 구시대적인 방법이라는 것이다.
전재일 한국IDC 수석연구원은 AI 투자가 여러 애플리케이션을 만들고 가치 만족도나 생산성 개선 등을 개선하며 혁신이나 고객 만족도 부분에서 가치를 창출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현재 기업들이 측정하는 ROI 측정은 너무 경직된 방식으로 진행된다”면서 “여러 비즈니스적 가치나 혁신을 보지 않고 수익적 측면에만 몰두한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전 연구원은 이러한 방식으로 고민을 겪고 있는 기업들에게 AB테스트 등을 비롯한 과학적으로 입증된 효과 측정 기법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는 “AI를 도입한 실험군(A)과 AI를 도입하지 않은 대조군(B)을 3개월 가량 시간을 두고 비교해 보고 과학적으로 선택하는 방법도 존재한다”며 “연단위의 ROI나 KPI 기준을 측정하는 것보다는 더 유연한 측정 방식을 통해 검토해 봐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