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연구진이 내성균에 특화된 신약 후보를 신속히 발굴할 수 있는 인공지능(AI) 기반의 차세대 항생제 개발 기술을 개발했다.
광주과학기술원(GIST)은 남호정 전기전자컴퓨터공학과 교수와 서지원 화학과 교수 공동연구팀이 다양한 박테리아의 유전자 정보와 항균 펩타이드 간의 활성 관계를 분석해 균종 특이적인 펩타이드 기반 항생제 후보물질을 제안하는 AI 모델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이 모델은 박테리아 종별 고유 유전자 정보와 다양한 항균 펩타이드 간의 상관관계 데이터를 학습해 감염병을 유발한 세균에 최적화된 항균 펩타이드를 선별할 수 있다. 이를 통해 균종 특이적 정밀의료는 물론 유전자 변이를 거쳐 기존 항생제에 내성을 지닌 병원균에도 정밀하게 대응할 수 있는 맞춤형 치료제 후보 도출이 가능해졌다.
지금까지 AI 기반 항균 펩타이드 연구는 단순히 항균 활성 여부만을 예측하거나 표적 박테리아 종을 고려하지 않아 실제 활용에 한계가 있었다.
연구팀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대용량 펩타이드 데이터를 학습시키고, 표적 박테리아 종의 게놈 정보를 활용하는 AI 모델인 ‘램프(LLAMP·Large Language model for AMP activity prediction)’를 개발했다.
‘램프’는 특정 박테리아의 게놈 정보와 펩타이드 서열을 입력하면 해당 박테리아 종에 대한 펩타이드의 활성지표로서 최소억제농도(MIC)를 예측한다. 최소 억제 농도는 특정 항균제가 세균의 성장을 억제하는 데 필요한 가장 낮은 농도를 의미한다.
이 모델은 단백질 데이터를 기반으로 사전 학습된 언어 모델에 대용량 펩타이드 데이터를 추가로 학습시켜 펩타이드 특유의 ‘언어’를 이해하도록 만든 뒤 박테리아 게놈–펩타이드 조합을 기반으로 미세 조정(파인튜닝)을 거쳐 완성됐다.
기존 모델보다 항균성 예측 정확도가 최소 4%, 최대 9% 향상되고, 활성값 예측력은 최소 3%에서 최대 40%까지 개선되는 등 모든 성능 지표에서 우수한 성능을 보였다.
연구팀은 ‘램프’를 통해 자연계에 존재하는 약 500만 개의 펩타이드 서열을 스크리닝(screening)하고, 트랜스포머 기반 모델에서 입력의 어떤 부분에 모델이 주목했는지를 확인하는 방법인 어텐션(Attention) 분석을 통해 항균 활성에 기여하는 특정 아미노산들을 확인했다.
이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펩타이드를 재설계(서열 엔지니어링)해 항균 특성을 더욱 높였고, 병원성 세균에 직접 적용해 항균 활성을 확인했다.
그 결과 병원균의 유전자 정보를 입력해 신약 개발 과정에서 수많은 후보 물질 중에서 효과가 있을 가능성이 높은 물질을 선별하는 단계인 스크리닝한 후보물질들이 강한 독성과 내성을 지닌 병원균에 대해서도 최대 3.1 마이크로몰(μM)의 최소억제농도값(MIC)을 나타내며 강력한 항균 효과를 보였다.
이들 펩타이드 화합물을 대상으로 적혈구에 대한 용혈독성 시험을 진행한 결과, 실제 임상 3상까지 진행된 펩타이드 항생제 ‘펙시가난(pexiganan)’과 비슷한 수준의 안전성(용혈독성)과 선택성을 보였다.
추가 연구를 통해 활성과 선택성이 우수한 항균 펩타이드가 나선형 구조에서 유래한 특정 아미노산의 배열과 양친매성 특성을 통해 세균의 세포막을 직접 파괴하는 메커니즘으로 작용한다는 사실도 규명했다.
연구팀은 이번 성과에 대해 AI가 단순히 기존 약물을 모방하는 데 그치지 않고, 병원균의 유전자 특성을 분석해 그에 최적화된 새로운 치료제를 설계할 수 있음을 보여준 데에 큰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남호정 GIST 교수는 “새로운 내성균이 등장했을 때, 그 유전자 정보를 기반으로 빠르게 항생제 후보물질을 제안할 수 있는 AI 기반 신약개발 체계를 구축한 것이 이번 연구의 핵심”이라며, “균종 특이적 펩타이드를 발굴해 내성균에 특화된 항생제를 개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존 모델과 차별화된다”고 말했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브리핑스 인 바이오인포매틱스’ 지난 18일 온라인으로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