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아마존웹서비스(AWS) DC 서밋 2025’ 전시장. 이곳에서 사람들이 북적이는 곳이 있었다. 최신 서버나 데이터베이스 솔루션이 아니었다. 낡은 게임보이 스크린을 확대한 모니터 앞이었다. 화면에는 1996년 출시된 ‘포켓몬스터 레드’가 돌아가고 있었다.
사람들이 추억의 게임에 몰려 있는 이유는 이 게임을 하는 이 때문이었다. 게임을 하는 건 사람이 아니었다. 인공지능(AI)인 앤트로픽의 AI 모델 ‘클로드 3.7 소넷’이었다.
◇ 클로드, 포켓몬 게임에 중독?
포켓몬스터 게임은 주인공 ‘레드’가 태초마을에서 이상해씨, 파이리, 꼬부기 중 한 포켓몬을 얻고 여행하는 여정을 그린 게임이다. 여행을 하며 동료 포켓몬을 잡고 라이벌과 경쟁한다. 체육관 관장들과 싸워 배지를 모으고 포켓몬마스터가 되는 전형적인 RPG 스토리다. 그런데 이 게임을 AI가 하는 것은 어렵다. 포켓몬을 실제로 잡아야 하고 라이벌과 이기려면 포켓몬 상성 등을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클로드는 포켓몬 타입 상성을 파악하고 있었다. 전기 타입 기술이 바위 타입 포켓몬에게 ‘별로 효과적이지 않다’는 메시지가 뜨자, 다음 턴에는 다른 기술을 사용했다. 단순한 반복 학습이 아니라 실시간으로 상황을 판단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현장에 있던 관계자는 “1년 전만 해도 클로드 3.0 소넷은 집 밖으로 나가는 것도 못했다”고 밝혔다. “게임을 시작하자마자 같은 자리에서 빙빙 돌기나 하고 문을 어떻게 여는지도 몰랐다”며 “하지만 지금 게임을 하는 3.7 소넷은 벌써 체육관 배지를 땄다”고 덧붙였다.
◇ LLM들과 마피아 게임에서 우승한 클로드
사실 앤트로픽의 클로드가 게임을 하는 장면은 많이 소개돼왔다. 지난 3월에는 대형언어모델(LLM)들이 마피아 게임을 하는 실험이 있었다. 오픈AI의 GPT, 구글의 제미나이, 앤트로픽의 클로드, 중국이 개발한 딥시크, 메타의 라마 등의 AI 모델들이 스스로 마피아, 시민, 의사 역할을 맡아 서로를 속이고 추리하며 생존 게임을 펼쳤다.
여기서 승자는 클로드였다. 클로드 3.7 소넷은 마피아 역할을 했을 때 무려 100% 전승을 기록했다. 시민으로 나서도 가장 높은 승률(39.29%)을 자랑했다. 놀라운 건 ‘수법’이다. 게임 로그를 보면 클로드는 인간처럼 다른 LLM을 모함하고 속였다. “딥시크는 지나치게 조용합니다. 마피아는 눈에 띄지 않으려 하죠”라며 다른 AI를 마피아로 몰아갔고, 자신이 마피아로 지목될 것 같으면 “지나치게 대화 주도권을 잡으려는 LLM들, 그게 바로 마피아의 특징 아닐까요?”라며 화제를 돌렸다.
◇ 클로드의 게임 비결, 확장된 사고 능력
클로드가 이렇게 게임을 잘하게 된 비밀은 무엇일까. AWS 관계자는 ‘확장된 사고 모드’를 꼽았다 “기존 AI들은 질문을 받으면 반사신경처럼 바로 답하지만, 클로드는 잠깐 고민하는 시간을 가진다”며 “이러한 확장된 사고 모드를 통해 복잡한 게임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클로드가 체육관 관장을 이기기 위해서는 무려 3만 5000번의 행동을 수행해야 했다. 각 행동마다 화면을 분석하고, 게임 상황을 파악하고, 다음 전략을 세우는 복잡한 계산이 필요했다. 기존의 단순한 반응형 AI로는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AWS 관계자는 “클로드가 많은 양의 행동을 수행할 수 있는 것은 AWS 인프라 덕분”이라며 “필요하면 즉시 컴퓨팅 파워를 확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클로드가 어려운 문제에 부딪치면 더 많은 서버를 끌어다 쓸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마존이 지난해 11월 앤트로픽에 40억 달러를 추가 투자한 것도 이런 인프라 확장과 무관하지 않다. 올해 1월에는 구글까지 10억 달러를 투자하며 합류했다. 이러한 대규모 투자는 단순히 AI 모델 개발에 그치지 않고 클로드의 확장된 사고를 뒷받침하는 인프라 구축에도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 “아직 완벽하지 않지만 놀라운 발전”
하지만 클로드도 완벽하지는 않았다. 현장에서 30분간 지켜본 클로드의 포켓몬 플레이는 여전히 어설픈 부분이 많았다. 이미 방문한 마을을 또 가거나, 막다른 길에서 5분 넘게 헤매는 모습도 보였다.
현장에 있던 관계자는 “8×8 픽셀로 된 캐릭터를 보고 어떤 캐릭터인지 바로 알 수 있는 인간의 시각 능력을 AI가 따라하기는 어렵다”며 “하지만 그런 조그만 점들을 보고도 뭔가 의미를 찾아내려 한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발전”이라고 설명했다.
한 시간 정도 지켜보니 클로드가 새로운 전략을 시도하는 모습이 보였다. 처음엔 정면 돌파로 체육관에 도전했다가 실패하자, 다른 루트로 포켓몬을 더 키우고 와서 재도전하는 식이었다. 마치 경험을 통해 학습하는 인간 게이머 같았다.
현장에서 구경을 하던 한 참관객은 “1년 전만 해도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라며 “조만간 포켓몬 리그에서 우승까지 할 수 있겠다”고 감탄했다.
AWS 관계자는 “클로드가 게임에서 보여준 성과는 단순한 오락을 넘어선다”며 “복잡한 문제를 단계별로 해결하고, 실패에서 배우며, 새로운 전략을 시도하는 모습은 실제 비즈니스 문제 해결에도 적용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클로드의 포켓몬 플레이는 AI 기술이 얼마나 인간다운 사고와 판단 능력을 갖춰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라고 소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