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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 AI] 데이터 분석계의 ‘간달프’…팔란티어가 그리는 AI 미래

[국방 AI] 데이터 분석계의 ‘간달프’…팔란티어가 그리는 AI 미래

  • 기자명 유덕규 기자
  • 입력 2025.06.16 17:40
  • 수정 2025.06.16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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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A 투자로 시작된 데이터 분석 제국, 안보를 뒤흔들다
고담·파운드리·AIP로 정부서 민간까지…연매출 4조원 돌파 전망
HD현대 지분 투자로 한국 진출, 효율성과 프라이버시 침해 저울질

[편집자주] 전쟁 양상이 바뀌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목격된 드론 떼 공격, AI 기반 표적 식별 등은 현대전에서 AI가 선택이 아닌 필수임을 보여줍니다. 수초 내 수천 개 표적 식별, 24시간 무인 경계 등 AI 시스템이 국방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습니다. 국내 방산업체들도 AI를 핵심 무기로 삼아 글로벌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습니다. 인공지능 전문매체 THE AI는 급변하는 국방 환경에서 AI 기술이 우리 방산업계와 국가 방위력에 미치는 영향을 집중 조명합니다.

/일러스트=챗GPT 달리.
/일러스트=챗GPT 달리.

‘팔란티어테크놀로지스(Palantir Technologies, 이하 팔란티어)’. 국내·외를 통틀어 방산과 AI 하면 떼어 놓을 수 없는 글로벌 기업 중 하나다. 팔란티어의 팔란(Palan)은 ‘멀리’라는 뜻을 담고 있고 티어(Tir)는 '지켜보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직역하면 ‘멀리서 지켜본다’는 뜻이다.

영화 '반지의 제왕'에서 간달프가 손에 들고 있던 신비로운 수정구슬 ‘팔란티리(Palantír)’도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팔란티리는 시공간을 초월해 멀리 떨어진 곳까지 볼 수 있는 마법의 보석으로 중간계의 운명을 좌우하는 중요 도구였다. 멀리 떨어진 곳을 볼 수 있다는 마법의 보석처럼, 방대한 데이터 속에서 숨겨진 패턴과 정보를 찾아내는 것이 팔란티어의 핵심 사업이다.

◇ 페이팔 창업자가 만든 ‘세상에서 가장 은밀한 스타트업’

팔란티어는 피터 틸(Peter Thiel), 알렉스 카프(Alex Karp), 조 론스데일(Joe Lonsdale), 스티븐 코헨(Stephen Cohen), 네이선 게틀링스(Nathan Gettings) 등 5명이 공동으로 설립했다. 이 중 피터 틸은 페이팔의 공동창업자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피터 틸은 일론 머스크와 함께 전자결제 시스템 페이팔을 창업한 후 2002년 이베이에 매각했던 인물이다. 틸 창업자는 페이팔 운영 당시 사기 거래를 탐지·방지하기 위해 만든 금융사기 인식 소프트웨어를 대테러방지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사기 거래를 탐지하고 방지하기 위한 보안 시스템을 개발했던 경험이 팔란티어의 데이터 분석 기술 개발에 밑바탕이 된 셈이다.

피터 틸은 팔란티어 창업 배경에 대해 “미국에서 제2의 9.11이나 그보다 끔찍한 사건이 일어나도록 두고 볼 수가 없었다”고 밝힌 바 있다. 소프트웨어와 데이터 분석을 활용해 사회 안전에 기여하겠다는 목표가 회사 설립의 주요 동기였다.

팔란티어는 초기부터 정부 기관을 주요 고객으로 삼는 전략을 택했다. 2005년 미국 중앙정보국(CIA) 산하 벤처캐피탈인 인큐텔(In-Q-Tel)로부터 200만달러 투자를 받으며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했다.

현재 CIA, 연방수사국(FBI), 국가안보국(NSA) 등이 주요 고객이며, 세계 각국의 정보기관들과 계약하며 '세상에서 가장 은밀한 스타트업'이라는 별칭이 붙기도 했다. 지난 2020년 9월 기업공개(IPO) 이후로는 일반 기업이나 민간 시장에서 활용하는 솔루션도 출시하고 있다.

팔란티어의 파운드리 구동화면. /팔란티어테크놀로지스
팔란티어의 파운드리 구동화면. /팔란티어테크놀로지스

◇ 고담부터 AIP까지…4개 플랫폼으로 시장 석권

팔란티어가 전 세계 정부 기관과 대기업들로부터 주목받는 이유는 서로 다른 곳에 저장된 방대한 데이터를 연결하고 분석하는 기술력에 있다. 현재 팔란티어는 네 가지 주요 제품을 통해 정부와 민간 영역에서 서로 다른 니즈를 충족시키고 있다.

팔란티어 제품군에는 우선 정부 기관을 위한 ‘고담(Gotham)’이 있다. 배트맨 시리즈의 도시명에서 따온 이 소프트웨어는 주로 정부 기관과 군대에서 사용하는 데이터 분석 플랫폼이다. 고담의 핵심 기능은 여러 데이터베이스의 정보를 통합해서 보여주는 것에 있다. 지도를 기반으로 다양한 정보를 시각화하며, 대량의 데이터에서 숨겨진 패턴을 찾아낸다.

실제로 고담은 테러 수사에서 통신 기록, 금융 거래, 위치 정보 등을 연결해서 분석하거나, 자연재해 발생 시 기상 데이터, 인구 분포, 교통 상황을 종합해서 대응 계획을 수립하는 데 활용된다. 군사 정보 분야에서는 위성 영상, 정보 보고서, 통신 감청 자료를 통합 분석하는 역할을 한다. 고담의 가장 큰 특징은 서로 다른 형태의 데이터를 하나의 화면에서 볼 수 있게 해준다는 점이다.

정부 부문에서 입지를 다진 팔란티어는 민간 기업을 대상으로 ‘파운드리(Foundry)’를 출시했다. 파운드리는 기업이 보유한 데이터를 분석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돕는 소프트웨어다. 고담과 기본 원리는 같지만 기업 환경에 맞춰 설계됐다. 파운드리는 기업 내 모든 데이터를 중앙에서 관리하고, 직원들이 필요한 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하며, 데이터 분석 과정을 자동화한다.

제조업체에서는 설비 가동 상태, 생산량, 품질 데이터를 분석해서 유지보수 시기를 예측하고, 의료기관에서는 환자 대기시간, 의료진 스케줄, 병상 현황을 연결해서 운영을 최적화한다. 항공업계에서는 연료 소비량, 기상 정보, 승객 수를 분석해서 운항 계획을 수립하는 데 활용된다. 파운드리의 목표는 기업이 데이터 기반으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이런 소프트웨어들을 원활하게 운영하기 위해 팔란티어가 개발한 것이 '아폴로(Apollo)'다. 아폴로는 팔란티어의 다른 소프트웨어들을 설치하고 관리하는 역할을 한다. 팔란티어 소프트웨어의 업데이트를 자동으로 처리하고, 여러 환경에서 동일한 소프트웨어를 동시에 운영할 수 있게 하며, 보안 패치와 기능 개선 사항을 실시간으로 적용한다.

아폴로의 특징은 인터넷 연결이 없는 환경에서도 작동하고, 클라우드 서버나 자체 서버 어디든 설치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한 번 설정하면 별도 관리가 거의 필요하지 않아 고객들은 최신 버전의 팔란티어 소프트웨어를 지속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팔란티어의 가장 최신 제품은 ‘AIP(Artificial Intelligence Platform)’다. 대규모 언어 모델(LLM)을 기업과 정부 환경에서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플랫폼이다. 미국의 오픈AI가 만든 챗GPT 같은 인공지능 기술의 기업 활용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주목받고 있다. AIP는 기업 내부 데이터를 외부로 유출시키지 않으면서 AI를 활용할 수 있게 하고, 조직의 데이터를 학습한 AI가 업무 관련 질문에 답변하며, 사람과 AI가 협업할 수 있는 작업 환경을 제공한다.

예를 들어 “지난 분기 매출 추이 분석” 요청 시 AI가 관련 데이터를 찾아 보고서를 작성하거나, 계약서나 보고서에서 중요한 부분을 AI가 찾아서 요약해 준다. 복잡한 상황에서는 AI가 여러 옵션과 예상 결과를 제시해서 의사결정을 지원한다. AIP는 챗GPT 같은 공개 AI와 달리 조직 내부 데이터만을 학습해서 보안을 유지하면서 더 정확한 정보를 제공한다.

◇ 한국서도 HD현대 등과 협력… 정부 진출은 초기 단계

팔란티어는 한국에 진출하며 자회사 팔란티어테크놀로지스코리아를 두고 있다. 팔란티어는 지난 2021년경 한국에 현지법인인 ‘팔란티어테크놀로지스코리아(이하 팔란티어 코리아)'를 설립했다. HD현대그룹이 팔란티어 한국법인의 지분을 25.1% 확보하고 조선, 자동차, 발전기, 정유, 에너지 등 여러 계열사에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외에도 DL이앤씨, 코오롱베니트 등이 팔란티어의 솔루션을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팔란티어 코리아는 주로 민간 기업을 대상으로 파운드리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다. 제조업, 에너지, 건설 등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기업들이 보유한 데이터를 통합 분석해 운영 효율성을 높이는 데 집중하고 있다.

최근에는 정부 부문으로의 확장도 시도하고 있다. 지난해 4월 팔란티어가 대전에서 개최한 'AI·디지털 기술 국방 활용 제안발표회'에서 'MDO 수행을 위한 AI 기반 육군항공부대 지휘 관리 결심 지원체계 구축' 솔루션을 선보인 바 있다. 이는 육군 항공사령부에 산재한 빅데이터를 통합해서 지휘관이 모든 휘하 부대 상황을 한 번에 파악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한국 정부 부문에서의 팔란티어 도입은 아직 초기 단계다. 대규모 언어처리 모델의 운용을 위해서 군이 가지고 있는 온갖 영상, 음성, 화상, 공개정보 소스를 클라우드로 얹은 다음, AI가 그것을 잘 가공해서 정리한다는 개념 자체가 아직 한국군에게는 먼 미래의 일이라는 평가도 존재한다. 또한 국내 AI 기술과의 격차, 보안 우려, 높은 도입 비용 등이 과제로 지적되고 있다.

◇ 고평가 우려에도 성장세 지속… 올해 매출 35% 증가 전망

팔란티어가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들도 적지 않다. 투자업계에 따르면 팔란티어는 현재 주가가 매우 높은 수준이다. 투자업계 한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팔란티어의 주가수익비율(PER)은 120배 내외로 일반적인 기술주 대비 상당히 높은 편이다. 보통 성장주라도 PER 30-50배 정도를 적정 수준으로 보고 있어, 팔란티어가 상당히 고평가돼 있음을 시사한다. 이런 높은 평가는 회사가 시장 기대에 못 미치는 실적을 발표할 경우 주가 급락으로 이어질 위험을 안고 있다.

두 번째 과제는 정부 의존도다. 팔란티어는 여전히 정부 계약에서 상당한 매출을 얻고 있다. 정부 예산 삭감이나 정책 변화는 회사 실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또한 고객 범위가 자금력이 풍부한 정부 기관과 대기업에 한정되어 있어, 향후 고객 유치가 포화 상태에 이를 가능성도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세 번째는 경쟁 심화다. 스노우플레이크나 데이터브릭스 같은 클라우드 데이터 플랫폼 기업들이 AI 기술을 앞세워 빠르게 성장하고 있고, 마이크로소프트나 구글 같은 빅테크 기업들도 데이터 분석 시장에 적극적으로 진출하고 있다. 팔란티어는 이런 경쟁 환경에서 자신만의 차별화된 경쟁력을 유지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프라이버시와 데이터 보안에 대한 우려도 있다. 팔란티어는 이민세관집행청(ICE)과의 계약을 통해 추방 작업에 기술을 제공하면서 시민사회로부터 비판을 받아왔다. 지난 2019년 8월에는 팔란티어 직원 200명 이상이 ICE 계약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는 청원서에 서명했고, 최근에는 전 직원 13명이 공개적으로 회사의 방향을 비판하기도 했다. 또한 경찰서에서 고담을 사용할 때 시민권 침해나 인종 편견 문제가 제기되는 등 감시 기술의 오남용에 대한 우려도 지속되고 있다.

이런 과제들에도 불구하고 팔란티어의 미래 전망은 밝다. 팔란티어의 경영진들은 올해 전체 매출이 전년 대비 35.9% 늘어난 38억9000만달러(약 5조3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특히 상업 부문의 성장이 두드러져 미국 상업 매출은 68%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1분기 성적표도 예상보다 높았다. 팔란티어는 올해 1분기 매출 8억8400만달러(약 1조2000억원)를 기록하며 전년 대비 39% 성장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1억7600만달러(약 2400억원)으로 전년 대비 118% 성장했다.

챗GPT 같은 생성형 AI가 대중화되면서 기업들이 자체 데이터를 활용한 AI 서비스에 관심을 보이고 있고, 팔란티어의 AIP가 이런 수요를 충족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재무 건전성도 크게 개선됐다. 소프트웨어 업계에서 매출 증가율과 영업이익률을 더해 40%를 넘으면 재무적으로 튼튼한 회사로 평가하는데, 팔란티어는 이 지표가 83%에 이른다. 국방 분야에서도 새로운 기회가 열리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대규모 미사일 방어 프로젝트 추진 계획을 공개하면서, 팔란티어가 이런 대규모 국방 프로젝트에 참여할 가능성도 언급되고 있다.

◇ 데이터가 힘인 시대…효율과 감시 사이 균형점 찾기

팔란티어의 성장은 데이터 분석 산업 전반의 변화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현재 정부와 기업에서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이 늘어나고 있고, 이에 따라 데이터 통합과 분석 솔루션에 대한 수요도 급증하고 있다.

특히 생성형 AI의 등장으로 기업들의 데이터 활용 방식이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제조업체의 스마트 팩토리나 병원의 데이터 분석 시스템 등에서 이런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 팔란티어의 AIP 같은 플랫폼들이 이런 수요 증가를 견인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팔란티어의 성공은 동시에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데이터 분석 기술이 가져오는 효율성과 투명성의 이면에는 감시와 통제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팔란티어가 직면한 프라이버시 논란과 윤리적 우려는 단순히 한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데이터 중심 사회로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해결해야 할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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