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아침에 신은 운동화, 출근길에 탄 자동차, 집에 새로 들인 소파. 이 모든 제품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버추얼 트윈(Virtual Twin)’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버추얼 트윈은 실제 제품을 가상 환경에 그대로 구현한 기술입니다. 전 세계 주요 제조사들이 활용하고 있지만, B2B 기술의 특성상 일반 대중에게는 생소합니다. 알려지지 않았을 뿐, 이미 우리 일상 곳곳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THE AI는 ‘버추얼 트윈 라이프’ 시리즈를 통해 보이지 않던 이 기술을 조명합니다. 신발부터 심장까지, 분자부터 도시까지. 당신이 몰랐던 버추얼 트윈의 세계로 안내합니다.
비행기 한 대에서 2파운드(약 0.9kg)를 줄이면 어떻게 될까. 성인 한 끼 식사만큼 가벼운 무게다. 하지만 항공업계는 이 2파운드를 줄인 설계자에게 거액의 인센티브를 지급한다.
비밀은 ‘시간’에 있다. 비행기 한 대는 하루 2회 왕복, 1년이면 700회를 비행한다. 여기에 10년 이상 운영된다. 2파운드는 10년간 엄청난 연료 절감으로 이어진다.
항공업계가 ‘중량 전쟁’을 벌이는 이유다. 전 세계 항공기 제조사 100%가 다쏘시스템의 버추얼 트윈 솔루션을 사용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 항공기 0.9kg의 기적, 버추얼 트윈이 만든다
항공업계에서 중량 관리는 곧 경쟁력이다. 비행기가 하루 2회 왕복, 1년이면 약 700회를 비행한다. 10년 이상 운영되는 항공기 특성상 2파운드(약 0.9kg)만 줄여도 막대한 연료를 절감할 수 있다.
김현진 다쏘시스템코리아 3D익스피리언스센터장은 “비행기 하나에서 2파운드 정도 줄이면 제조사는 설계자에게 높은 인센티브를 준다고 한다”며 “전체 기름 사용량을 상당히 아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에 따르면 1만 명이 1㎞를 이동했을 때 배출하는 탄소량은 비행기가 자동차의 2배, 기차의 20배에 달한다.
문제는 중량을 줄이면서도 안전성과 성능을 유지해야 한다는 점이다. 버추얼 트윈은 이를 해결하는데 사용된다. 가상 환경에서 설계 변경을 무수히 반복하며 최적의 중량을 찾아낸다. 김 센터장은 “자동차 한 대를 만들 때도 설계 변경이 1000번 이상 발생한다”며 “설계 변경이 있을 때마다 중량 값이 자동으로 업데이트돼 사람이 일일이 계산하면서 생기는 오류를 최소화한다”고 말했다. 이어 “비행기를 설계할 때 그 역할은 훨씬 크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에어버스 A350 XWB는 버추얼 트윈으로 탄소섬유 복합재를 50% 이상 사용하는 설계를 완성했다. 경량화를 달성하면서도 구조 안전성을 검증할 수 있었다.
◇ 3D 모델로 협업… 생산 타임라인 30% 단축
김 센터장에 따르면, 다쏘시스템의 버추얼 트윈 솔루션은 비행기 제조사 100%가 사용한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미국의 전기 항공기 스타트업 조비 에이비에이션, 태양광 드론 제조사 등 사용 기업은 다양하다.
대표 사례가 에어버스다. 2025년 4월 파트너십을 연장한 에어버스는 2만명 이상의 직원이 다쏘시스템의 3D익스피리언스 플랫폼을 사용한다. 모든 신규 민간·군용 항공기 및 헬리콥터 개발에 이 플랫폼이 적용된다.
버추얼 트윈의 핵심은 ‘하나의 플랫폼에서 모든 부서가 협업’한다는 점이다. 디자이너, 설계자, 해석 담당자, 생산 담당자가 모두 같은 3D 모델을 보며 실시간으로 소통한다.
에어버스 A350 XWB 개발 과정을 담당했던 앙투안 스코토는 “과거에는 현장별로 자체 디지털 실물 모형을 보유해 각자 작업했는데 의사소통이 불충분해 설계 시간이 늘어나고 오류가 속출했다”며 “3D익스피리언스 플랫폼 덕분에 프로그램 관계자들이 서로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교환할 수 있어 효율성이 높아졌다”고 밝혔다.
효과는 수치로 나타났다. 에어버스는 생산 타임라인을 30% 단축했고, 프로토타입 제작 비용을 20~40% 절감했다. 버나드 샬레 다쏘시스템 회장은 “에어버스는 다쏘시스템의 플랫폼을 통해 AI 기반의 혁신적인 경험은 물론, 소재 과학, 모델링, 시뮬레이션, 생산·운영 효율성 확보 등 다양한 부분에서 항공우주 산업의 미래를 새롭게 정의하는 경험을 창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버추얼 트윈으로 35년 더 나는 비행기
버추얼 트윈은 항공기 제작뿐 아니라 수명 연장에도 활용된다. 항공기의 디지털 쌍둥이를 만들어 실시간으로 상태를 모니터링하고, 고장을 예측한다.
미국 위치타 주립대학교 국립항공연구소(NIAR)는 다쏘시스템과 협력해 여객기를 화물기로 전환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여객기의 일반적 수명은 15~25년이지만, 버추얼 트윈으로 구조 안전성을 분석해 화물기로 전환하면 35년 이상으로 연장된다. 폐기물과 에너지를 절감하는 친환경 접근이다.
프랑스 다쏘 애비에이션은 프랑스 국방부와 10년 계약을 체결하고 라팔 전투기의 예측 정비 시스템을 구축했다. 각 항공기의 버추얼 트윈을 만들어 전체 수명 주기 데이터를 통합 관리한다. 비행 기록, 엔진 상태, 부품 마모도 등을 실시간으로 분석해 고장 전에 미리 정비한다.
신생 기업도 버추얼 트윈으로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있다. 프랑스의 태양광 드론 제조사 XSun은 공기역학 시뮬레이션으로 드론의 비행 효율을 최적화했다. 수천 번의 가상 테스트를 거쳐 최적의 날개 형상과 비행 각도를 찾아냈다.
브루노 슈발리에 다쏘 애비에이션 부사장은 “버추얼 트윈 경험만이 이를 달성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며 “항공기 가동률을 극대화하고 유지비를 절감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