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지금 ‘인공지능(AI) 3대 강국’ 도약을 국가적 목표로 내걸고 있다. 정부와 민간이 힘을 합쳐 AI 연구개발 인프라 확충에 박차를 가하는 중이다. 품귀 현상까지 빚는 고성능 그래픽처리장치(GPU)를 국가 차원에서 대량 확보하고, 국산 AI 반도체(NPU) 개발을 지원하는 등 ‘AI 고속도로’ 구축에 나섰다. 동시에 초거대 AI 파운데이션 모델을 자체 개발하기 위한 프로젝트들이 진행되고, AI 학습용 컴퓨팅 센터를 구축해 방대한 데이터를 민간에 개방하는 정책도 추진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인프라 투자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AI 시대의 승패는 결국 사람의 역량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현실은 국내 AI 인재 풀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SPRi)의 2024년 조사에 따르면 국내 AI 기업 2,354곳 중 81.9%가 인력 부족을 호소하고 있고, 오는 2027년까지 약 1만 2,800명의 AI 인력이 추가로 모자랄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무엇보다 우수 인재들의 해외 유출이 문제다. 석박사급 AI 전문가들이 졸업 후 미국 등으로 빠져나가고 있다. 현지 빅테크 기업들이 제시하는 초봉이 한국보다 2~3배 높은 데다,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 환경에서 경력을 쌓을 기회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지난 7월 말 국가AI연구거점을 방문한 국정기획위원회 간담회장에서 해외로 진출할 예정인 대학원생들이 “국내에는 성장할 환경이 부족하다”며 하소연했다. 능력 있는 젊은 인재일수록 해외로 떠나는 이런 현상은 결국 ‘유능할수록 떠나는 구조’가 고착되고 있다는 지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인재 확보를 위해 정부도 특단의 대책을 내놓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AI 분야 핵심 인력을 육성한다며 박사후연구원 400명을 연봉 9천만 원에 채용해 연구에 투입하는 ‘이노코어’ 사업을 발표했다. 채용되는 연구실에서 받는 급여에 더해져 파격적인 지원이 이루어지지만, 연봉으로 인재를 붙잡는 방식만으로는 근본 해결이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내 연구 환경을 개선하고 산업계 일자리와 연계를 늘리는 더 어려운 숙제가 남아있다.
한국의 조직 문화 역시 문제다. 단기 성과 위주의 평가 체계와 연공서열식 보상 시스템 탓에 젊고 유능한 인재일수록 국내에 남기보다 해외로 진출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는 분석이 있다. 열심히 성과를 내도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고, 글로벌 무대와 단절된 환경에 머문다면 인재들이 떠나는 것을 막기 어렵다.
현장의 기업들도 인재 부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특히 IT 스타트업과 중소기업에는 인력난이 치명적이다. 자본과 브랜드 파워가 있는 대기업·중견기업들은 일찌감치 해외 개발 센터를 세워 현지 인력을 확보해 왔지만, 영세한 스타트업은 그럴 여력이 없어 개발자를 구하지 못해 사업에 차질을 빚기 일쑤다. 일부 스타트업은 인도와 베트남까지 찾아가 개발자 채용 행사를 열고, 서울시 산하 AI허브가 베트남 대학과 연계해 국내 스타트업에 현지 개발자 인턴을 공급하는 시도까지 등장했다.
한편 글로벌 IT 기업들이 아시아 지역본부를 한국이 아닌 일본, 싱가포르 등에 두는 사례도 많다. 영어 소통 환경, 유연한 고용 여건, 세제 혜택 등에서 한국보다 유리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은 데이터 규제나 경직된 노동시장 등 보이지 않는 장벽이 높아 외국 기업 입장에서 사업하기 까다로운 편이다. 정부도 이러한 문제를 인식해 기업이 불필요한 규제에 막혀 기술 개발에 차질이 없도록 규제를 합리화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글로벌 기업들의 눈높이를 맞추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전 세계가 AI 인재 확보 전쟁에 돌입한 현실에서, 우리도 시야를 넓혀야 한다. 영국은 과학기술 분야의 우수 인재를 위해 입국 심사를 간소화한 패스트트랙 비자를 도입하며 글로벌 인재 유치에 힘쓰고 있다. 인도의 주요 창업 허브인 T-허브에 비자 출장사무소를 설치할 정도이다. 미국과 캐나다 등 기술 선진국들도 ‘국적 불문’ 기조로 AI 두뇌들을 끌어들이고, 중국 역시 막대한 자금을 내건, 이른바 ‘레드머니’로 핵심 인재 영입에 열을 올리고 있다.
세계 유수의 연구 기관과 기업들이 앞다투어 최고 수준의 처우를 제시하며 AI 인재 전쟁을 벌이는 가운데, 한국도 더욱 과감하고 열린 전략이 필요하다. 인재 유출을 그저 막아야 할 대상으로 볼 게 아니라, 해외로 진출한 인재들을 장차 국내외 협력 파트너로 엮는 발상이 요구된다. 해외에 나간 한국인 AI 전문가들을 끊어진 인연으로 치부하지 말고, 이들이 세계 무대에서 쌓은 경험과 네트워크를 국내와 잇는 가교를 마련해야 한다. 예를 들어 재외 한인 과학자들과 공동 연구나 창업 프로젝트를 지원해 ‘두뇌 유출’이 ‘두뇌 연결’로 이어지게 하는 것이다.
또한 국내 산업계도 우수 외국인 인재를 적극 받아들일 수 있도록 문호를 개방해야 한다. 비자 제도를 정비하고, 선진국뿐 아니라 개발도상국의 글로벌 인재들이 언어와 문화 장벽 없이 역량을 펼칠 수 있는 근무 환경을 갖춰야 할 것이다.
아무리 거대한 AI 인프라와 모델도 이를 활용할 사람이 없으면 무용지물임을 명심해야 한다. ‘AI 3대 강국’의 꿈을 이루려면 인프라와 인재라는 두 축이 함께 굴러가야 한다. 국가 AI 연구거점도 세계적 수준의 AI 인재를 육성하는 ‘AI 국가대표 선수촌’이 되겠다는 포부로 도전적인 연구와 국제 공동연구 교류에 매진하고 있다. 국가적 관심과 지원을 바탕으로 학생들이 ‘한국에서도 세계 최고 수준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할 때다.
김기응은 KAIST 김재철 AI대학원 석좌교수이자 국가AI연구거점 센터장이다. 인공지능과 기계학습, 특히 강화학습 분야에서 국내외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1995년 KAIST에서 학사 학위를 취득하고, 2001년 미국 브라운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삼성SDS와 삼성종합기술원에서 근무했다. 2020년 국제 AI 경진대회 ‘L2RPN 챌린지’에서 연구팀과 함께 1위를 차지했다. 2024년에는 자율 에이전트 및 다중 에이전트 시스템 국제재단(IFAAMAS)으로부터 ‘영향력 있는 논문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