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 정부는 인공지능(AI) 기술을 국가적 핵심 과제로 삼고 ‘AI 3대 강국’ 도약이라는 야심찬 목표를 제시했다.
하지만 세계는 AI를 둘러싼 지정학적 경쟁, 군사적 혁신, 그리고 경제적 헤게모니 싸움이 격렬하게 벌어지고 있다. 특히 우크라이나와 중동에서는 드론을 비롯한 AI 무기들이 전장의 판도를 바꾸고 있다. 앞으로 육상, 해상, 해저, 공중에서 드론을 비롯한 각종 지능형 로봇들과 자율형 무기들이 전쟁의 운명을 바꿀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AI가 단순한 기술을 넘어 국가의 안보와 직결된 지정학적, 전략적 핵심 자산임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미·중 양대 AI 강국을 제외한 다른 모든 나라들은 자국의 전략적 목표를 달성을 위해 스스로 역량을 효율적으로 개발하고 확산하고 있다. 이들은 또한 이합집산(離合集散)을 거듭하며 협력 파트너들을 찾아야만 할 것이다.
한국 역시 AI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선 미·중 양국에 비해 열세인 기술을 선진화해 AI를 경쟁국들보다 더 잘 활용해야만 한다. 또한 복잡한 국제 정세와 주요국들의 행보에 대한 면밀한 분석을 바탕으로 정교한 국제 협력 전략을 수립하고 추구해야 할 것이다.
최근 미국과 중국은 AI 기술 패권 경쟁을 더 가속화하고 있다. 미국은 AI 칩, 소프트웨어, 서비스 등 AI 스택 전반을 아우르는 공급망을 강화하고, 동맹국에 AI 솔루션을 제공하며 자국 중심의 기술 생태계를 구축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또한 인텔에 대한 정부 지분 확보, 엔비디아 및 AMD의 중국 수출액에 대한 15% 정부 수수료 부가 발표 등, 정부가 주요 AI 기업들에 대한 맞춤형 지원과 통제를 시작했다. 기업 간에도 오픈AI와 마이크로소프트의 협력 강화, 구글 및 오픈AI의 새로운 탑(Top) 모델들의 공개 등 기술적 우위를 점하기 위한 행보들이 이어지고 있다.
현재 한국은 특정 국가의 AI 생태계에 종속되는 것을 경계하면서도, 자칫 자국 기술의 진흥에 과하게 경도돼 기술의 갈라파고스화를 자초하는 위험 역시 회피해야만 하는, 쉽지 않은 도전을 맞이하고 있다.
먼저 단순한 기술 수입국이 아닌, 독자적인 인프라와 언어 모델을 갖춘 AI 주권을 확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한국형 파운데이션 모델을 고도화하고, AI 반도체 설계 및 제조 역량을 강화해 기술 자립도를 높여야 한다.
또한 AI 기술의 윤리적 사용과 국제 표준에 대한 논의에서 우리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내야 한다. 가령 영국이 주도해 온 ‘AI 안전 정상회의’ 등에서 볼 수 있듯, 기술 규범에 대한 국제적 논의는 이미 시작됐다. 여기에 뒤처지면 미래 기술 패권 경쟁에서 도덕적으로 그리고 정책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놓일 수밖에 없다.
세계 각국은 AI 기술을 산업 전반에 접목하는 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 중국은 제조업, 자동차, SNS, 금융 등 전통 산업 및 제품, 서비스에 AI를 다른 어떤 나라들보다 더 적극적으로 통합하고 있다. 휴머노이드 로봇 분야에서도 중국은 기술 종주국인 미국을 추월할 기세를 보이고 있다. 영국과 유럽연합(EU) 또한 AI 기술을 접목한 스타트업들이 빠르게 성장하며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하고 있다.
최근 MIT 리포트에 의하면 미국에서 AI 도입의 95%는 실패하고 있다는 회의적인 상황도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미국과 중국의 기업들은 각각 거대 자본과 국가의 전격적인 지원을 바탕으로 비즈니스 모델 혁신을 시도하거나, 과학, 헬스케어, 금융 등 특정 분야에 특화된 고도의 기술을 선보이는 등 산업 전반의 효율을 높이고 있다.
한국이 AI 강국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글로벌 흐름에 발맞춰 산업 전반의 ‘AI 대전환’을 가속해야만 한다. AI 도입에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이 시급하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추상적인 정책이 아니라, 데이터 확보, AI 전문가 인력의 공동 확보, 그리고 고가의 컴퓨팅 자원 활용을 위한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솔루션들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AI 바우처, 데이터 공유 플랫폼 구축 등을 통해 이들 기업이 AI 기술을 쉽게 도입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할 것이다. 더불어 ‘검증된 저비용 혁신 솔루션들의 소개 및 보급’을 적극 지원하는 정책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현장에서 효과가 입증됐으나 아직 전반적으로는 알려지지 않은 AI 솔루션들, 예를 들어 이메일 대신 산업별 거래 당사자 간의 커뮤니케이션을 한 자리에 모으고 AI가 챗봇 및 분석 기능을 제공하는 솔루션, AI 기반 재고 관리 시스템, 이미지 분석을 통한 품질 검사 솔루션 등을 선별해야 한다.
이를 중소기업들이 쉽게 접하고 도입할 수 있도록 정부 주도의 정보 허브 및 표준화를 구축하고 제공하거나 컨설팅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는 기업들로 하여금 막대한 초기 투자 비용을 절감할 수 있도록 돕는 동시에, 실패 위험을 최소화하여 중소기업의 AI 도입 문턱을 실질적으로 낮추는 데 기여할 것이다.
정책들의 효과적, 효율적 확산을 위해 정부는 가장 역량있고 양심적인 컨설팅 또는 운영서비스 기업들을 선별하고 이들이 대기업 서비스의 제공 주체로 활약할 수 있도록 제도를 보강할 수 있다. 이러한 아이디어들이 산업 전반으로 효과적, 비용 효율적으로 확산할 때, 한국 경제는 새로운 성장 동력 확보의 단초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AI 기술의 발전은 특정 국가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글로벌 협력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최근 자국의 데이터 주권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개도국들도 일방적인 데이터 개방을 요구하는 국제협력 제안에도 극도의 경계심을 보인다. 우리 정부나 기업들도 자칫 개도국인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리지 않고 기술이나 자본의 우위와 ODA 등 지원 사업 등을 빌미로 협력 상대 국가 내의 소중한 데이터들을 무상 또는 부당한 저가로 확보하려고 한다면 이는 약탈적, 신제국주의적 행동이라는 비난까지 살 수 있는 실수를 범하는 일이다.
이에 대한민국은 윤리적인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는 ‘상호 호혜적 협력 모델’을 제시해야 한다. 단순히 우리가 개발한 기술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개도국들이 스스로의 데이터를 활용해 자국의 AI 역량을 구축하도록 돕는 것이다. 또한 서로 역할을 공평하게 분담하며 그들과 함께 다국적 AI 모델과 서비스들을 개발하고 운영하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한국은 디지털 정부 시스템 구축 경험을 활용하여 개도국들의 행정 시스템 디지털화와 자체 AI 구축이나 도입을 지원할 수 있다. 이는 그들의 ‘AI 주권’ 확보를 돕는 동시에, 한국 기업들에게 새로운 시장 진출의 기회를 열어줄 것이다.
특히 베트남과 필리핀 등 성장 잠재력이 높은 동남아시아 국가들이나, 디지털 전환에 대한 의지와 자체 투자 역량이 매우 강한 UAE와 카타르,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중동 걸프만 국가들이 한국의 중요한 전략적 협력 파트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들과의 협력은 한국의 기술력을 전파하고 국제적 리더십을 강화하는 동시에, 미·중 기술 패권 경쟁 속에서 우리의 외교적 입지를 넓히는 중요한 전략이 될 것이다.
한국이 AI 3대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기술 개발을 넘어선 복합적인 전략이 필요하다. 국내의 자본과 기술 역량을 선별하고 집중적으로 지원해 AI 기술 주권을 확보하고 산업 전반의 전환을 가속화하며, 국제적으로는 상호 호혜적인 협력을 통해 기술과 가치를 공유하는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이 한국이 나아가야 할 길이다.
차인혁 광주과학기술원(GIST) 석학교수는 기업, 공공, 투자 분야를 아우르는 국내 AI 전문가이자 전략가이다. 펜실베니아대에서 AI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루슨트 벨 연구소에서 경력을 시작했다. 삼성SDS와 SK텔레콤 임원을 거쳐 CJ그룹의 CDO 및 CJ올리브네트웍스 대표를 역임했다. 현재는 AI 딥테크 전문 벤처캐피털인 Asia2G VC의 제너럴 파트너이자 경상북도 AI 전략 고문을 맡고 있다. AI 기술과 경영, 투자, 정책을 융합하는 경험을 쌓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