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개발을 위해 저작권 보호 자료를 무단 사용했다는 이유로 AI 기업들을 상대로 한 집단소송이 잇따르고 있다. 앤트로픽이 사상 최대 규모인 15억달러(2조812억원) 합의에 도달한 가운데, 애플도 새로운 소송에 휘말렸다.
◇ 일반 자료 사용은 ‘공정 이용’… 출처가 중요
미국 법원은 AI 모델 훈련을 위한 데이터 활용에 대해 일정 부분 ‘공정 이용(Fair Use)’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지난 2023년 미국의 작가 리처드 캐드리(Richard Kadrey) 등 13명은 메타가 자신들의 작품을 무단으로 수집해 학습에 활용했다고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지난 6월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연방지방법원은 메타가 대형언어모델(LLM) ‘라마(LLaMA)’ 개발 과정에서 다수의 저작물을 학습 데이터로 사용한 행위가 저작권 침해가 아닌 공정 이용에 해당한다고 1심 판결했다. 같은 달 앤트로픽 역시 같은 법원으로부터 유사한 판결을 받았다. 엔트로픽은 안드레아 바츠, 찰스 그래이버, 커크 월리스 존슨 등 작가들과의 집단소송에 휘말렸다. 재판부는 앤트로픽의 LLM 훈련을 위한 저작물 활용을 공정 이용으로 인정했다.
완전한 해결은 아니었다. 앤트로픽은 해적(불법복제) 사이트를 통해 약 700만권에 달하는 책을 불법 다운로드해 AI 모델을 학습시켰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법원은 앤트로픽이 해적 사이트의 자료를 자사의 AI 모델 학습 데이터로 활용한 정황에 대해서는 위법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 앤트로픽, 사상 최대 합의… AI 기업의 승리
앤트로픽은 700만권에 달하는 책에 대해 저작권법상 고의적 침해 시 작품당 최대 15만달러(2억800만원)까지의 벌금을 부과할 위기에 처했다. 이에 앤트로픽은 지난달 작가들과 합의를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8일 테크크런치 등 외신에 따르면 앤트로픽은 50만명의 작가들에 대해 15억달러(2조812억원)에 달하는 합의금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합의안이 승인되면 작가들인 인당 최소 3000달러(416만원)에 해당하는 합의금을 받게 됐다.
다만 외신들은 이 합의에 대해 ‘작가들의 승리가 아닌 기술 기업들의 또 다른 승리’라고 평가했다. 이 같은 평가의 배경에는 AI 모델 개발에 최대한 많은 자료를 수집하기 위한 경쟁이 깔려 있다는 것이 이들의 판단이다. 최근 AI 기업들이 인터넷 전체를 스크래핑해 새로운 정보의 가치가 크게 올라 불법복제까지 감행했다는 것이다.
앤트로픽이 합의한 이날 애플 또한 저작권 소송에 휘말렸다. 작가 그래디 헨드릭스와 제니퍼 로버슨은 캘리포니아 북부 연방법원에 애플이 자사의 OpenELM 대형언어모델(LLM) 훈련을 위해 자신들의 작품을 무단으로 사용했다며 집단소송을 제기했다.
작가들 측은 “애플이 이 수익성 있는 사업에 대한 작가들의 기여에 대해 대가를 지불하려 하지 않았다”며 애플이 머신러닝 연구계에서 널리 알려진 불법 복제 도서 데이터셋을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다만 애플의 경우 ‘프라이버시 우선, 사용자 중심’ 기술 제공업체로 자리매김해왔기 때문에, 법원이 자사 AI 모델이 도난당한 데이터로 훈련됐다고 판단한다면 재정적 처벌보다 평판 손상이 더욱 클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 공정 이용과 저작권 침해 기준은
미국 내 소송을 선례로 볼 때 공정 이용의 조건을 충족한 사용 내에서는 큰 문제는 없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미국 저작권법은 공정이용 여부를 판단할 때 △이용 목적과 성격 △저작물의 성격 △이용된 부분의 양과 중요성 △시장 가치에 미치는 영향 등 네 가지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이번 앤트로픽 합의는 AI 업계에 중요한 선례를 남겼다는 평가다. 거액의 합의금에도 불구하고 투자 유치 규모와 비교하면 부담은 제한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에 다른 AI 기업들도 비용과 평판 리스크를 고려해 유사한 전략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흐름이 반복된다면 창작자 권리 보호와 산업 발전 사이의 갈등은 더욱 첨예해질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아파르나 스리다르 엔트로픽 부총괄 법률고문은 성명을 통해 “이번 합의는 과거 유산(claim legacy)을 정리하는 절차”라며 “앤트로픽은 여전히 안전하고 유용한 AI를 개발하는 데 전념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