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검색창으로 모든 답을 찾는다’는 검색의 기본 전제가 무너지고 있다. 의료진은 구글 대신 전문 의학 데이터베이스에서, 부동산 투자자는 네이버 대신 전문 플랫폼에서 답을 찾는다. 각 분야 전문가들이 축적한 데이터와 인공지능(AI)이 결합한 ‘초정밀 검색’ 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구글의 20년 독점 체제에 균열이 생긴 배경에는 범용 검색의 태생적 한계가 있다. 아무리 방대한 정보를 크롤링해도 각 분야 깊이 있는 전문 지식과 실사용자 경험 데이터를 따라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전문적인 데이터를 축적한 기업들은 AI를 활용한 새로운 초정밀 검색 시장을 열고 있다.
◇ 국내 플랫폼, 전문 데이터로 구글에 도전장
이런 변화의 선두에는 국내 전문 플랫폼들이 서 있다. 이들은 각자의 영역에서 축적한 고유 데이터를 바탕으로 구글이 제공할 수 없는 정밀한 답변을 내놓으며 사용자들을 끌어모으고 있다.
바비톡은 350만 건의 실제 시술 후기라는 ‘살아있는 데이터’를 앞세워 성형·시술 분야 검색 독점을 노리고 있다. “쌍커풀 수술 후 멍이 오래 가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요?”와 같은 질문에 구글과 네이버는 광고성 블로그나 일반적인 의학 정보만 제공하지만, 바비톡 AI 검색은 실제 같은 수술을 받은 수백 명의 생생한 후기와 구체적 해결책을 요약해 제공한다.
바비톡 관계자에 따르면, 회사의 AI 검색 기능은 사용자가 일상적인 문장이나 대화체로 질문을 입력하면 AI가 이를 정밀하게 이해하고 최적화된 맞춤 정보를 제공하도록 설계됐다. 일례로 쌍커풀 수술 뒤 붓기를 빨리 빼고 싶어 하는 이가 바비톡 AI 검색창에 이 같은 고민을 입력하면 관련 해결책과 시술 후기를 손쉽게 확인할 수 있다. 전문 성형·시술 용어를 모르더라도 간편하게 맞춤형 솔루션을 얻을 수 있다.
AI 검색 기능에는 바비톡이 지난 10년간 축적해 온 약 350만 건 규모의 사용자 후기, 커뮤니티 글, 병원 정보, 배너 이미지 속 텍스트 등 자체 데이터가 축적됐다. 여기에 검색증강생성(RAG) 기술을 더해 정확한 정보를 제공한다. 회사 관계자는 “다양한 콘텐츠를 정교하게 분석하고 이를 연결함으로써 전문가와 대화하는 듯한 심층적인 검색도 가능해졌다”며 “동시에 사용자들이 작성한 방대한 양의 콘텐츠를 문맥 기반으로 데이터베이스화해 관련도가 높은 게시글을 추천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부동산 분야에서도 비슷한 도전이 펼쳐지고 있다. 다방의 ‘AI 추천 매물’은 구글의 단순 검색 결과를 넘어선 서비스를 선보인다. ‘신림동 원룸’ 검색 시 구글은 부동산 사이트 링크만 나열하지만, 다방 AI는 사용자 나이, 직업, 라이프스타일을 분석해 개인에게 맞는 매물을 큐레이션한다. 다방은 특히 2030세대의 정보 과잉 피로도 해결에 초점을 맞췄다. 개인화 추천과 함께 재치 있는 설명으로 매물 탐색의 재미까지 더했다는 평가다.
로컬 검색 분야에서는 카카오맵이 주목받고 있다. 카카오맵의 ‘AI메이트 로컬’은 글로벌 검색 엔진과 차별화된 결과를 보여준다. ‘30대 직장인 데이트 코스로 좋은 한식당’ 검색 시 구글맵은 단순 평점 높은 리스트를 보여주지만, 카카오맵 AI는 사용자 위치, 연령대, 상황을 종합 고려해 실제 데이트하기 좋은 분위기 매장들을 선별해 추천한다.
카카오맵의 강점은 국내 상권에 대한 방대한 로컬 데이터와 한국인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이해도다. 주차 가능성, 룸 여부, 소음 정도 등 외국계 플랫폼이 놓치기 쉬운 세부 정보까지 AI가 반영해 추천 정확도를 높이고 있다.
◇ 해외 의료·연구 분야, 전문 AI 검색 플랫폼 부상
해외에서는 의료 분야 전문 인공지능(AI) 검색 플랫폼들의 도전이 활발하다.
컨센서스 AI(Consensus AI)는 의료진을 위한 전문 검색 엔진으로 일반 검색으로는 찾기 어려운 최신 의학 연구 결과와 임상 데이터를 전문적으로 제공한다. 의사가 ‘당뇨병 신약의 최신 임상 시험 결과’를 검색하면, 구글은 뉴스 기사나 일반 정보를 보여주지만 컨센서스 AI는 관련 논문 수십 편을 분석해 핵심 임상 데이터와 부작용, 효능을 요약해 제시한다.
오픈에비던스(OpenEvidence)는 미국 의료진용 무료 플랫폼으로 더욱 구체적인 차별화를 보여준다. 자마(JAMA), 뉴잉글랜드 의학저널 등 최고 권위 의학 저널과 콘텐츠 계약을 체결해 일반인이 접근하기 어려운 전문 의학 정보를 AI가 실시간으로 검색하고 요약한다. ‘코로나19 중증 환자 치료법’을 물으면 최신 치료 가이드라인과 함께 근거 논문을 함께 제시한다. 세쿼이아, 구글 벤처스 등 유명 벤처캐피털 투자를 받으며 의료 정보 검색의 새 시장을 만들고 있다.
연구 분야에서도 전문 플랫폼들의 도전이 이어지고 있다. 퍼플렉시티AI(Perplexity AI)는 단순한 질문 답변을 넘어 쇼핑 허브 출시, 금융 기능 추가 등 전문 분야별 특화 서비스를 확대한다. ‘올해 반도체 주식 전망’을 질문하면 관련 분석 보고서와 시장 데이터를 종합해 투자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식이다.
에이치레프스(Ahrefs)가 개발한 옙(Yep)은 기술적 규모에서도 구글에 도전한다. 전용 검색 엔진 옙봇(YepBot)으로 매일 3천만 개 웹페이지를 찾아내며 총 100억 개 웹페이지를 인덱싱했다. SEO와 마케팅 분야에서 축적한 10년간의 웹 분석 노하우를 바탕으로 더 정확한 검색 결과를 제공한다는 전략이다.
◇ 검색 광고의 탈중앙화… 골든타임 맞은 전문 업체들
이런 변화는 단순히 기술적 혁신을 넘어 거대한 경제적 파급효과를 가져오고 있다. 구글과 네이버가 독점하던 검색 광고 시장이 각 전문 플랫폼으로 분산되면서 새로운 수익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전문 플랫폼들은 이제 글로벌 확장과 로컬 특화 사이에서 전략적 선택을 해야 하는 시점에 서 있다. 바비톡은 동남아시아 진출을 검토하고 있으며, 카카오맵은 일본 시장 진출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AI 검색 기술 자체는 글로벌 빅테크들이 앞서는 경향이 있지만, 로컬 데이터와 문화적 이해를 바탕으로 한 전문성에서는 각국의 전문 플랫폼들이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며 “앞으로 2~3년이 이들에게는 골든타임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른 관계자도 “범용 검색 엔진들이 모든 분야를 다 잘할 수는 없다는 한계가 명확해지고 있다”며 “분야별로 10년 이상 쌓인 전문 데이터와 AI가 결합하면 구글도 따라오기 어려운 영역이 생긴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