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과 LG AI연구원은 공통점이 있다. 인공지능(AI) 발전의 엔진 역할을 하는 파운데이션 모델을 개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구글은 제미나이로 글로벌 AI 시장을 선도하고 있고, LG AI연구원의 엑사원은 스탠퍼드대 AI 인덱스 보고서에 이름을 올리는 등 글로벌 성과를 내고 있다.
두 기업의 공통점은 여기서 더 나아간다. 파운데이션 모델을 넘어서 특정 분야에 성과를 내고 있다. 대표 사례가 의료 분야다. 구글 딥마인드의 알파폴드는 50년간 풀리지 않던 단백질 폴딩 문제를 해결했다. LG AI연구원의 엑사원 패스 2.0은 조직 병리 이미지만으로 유전자 변이를 예측하는 혁신을 이뤄냈다. 파운데이션 모델과 특화 전문성을 결합했을 때 실제 현장에서 가치있는 AI 서비스가 탄생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향후 AI 발전 방향을 가늠해볼 수 있는 사례이기도 하다.
◇ 의료 분야에서 입증된 특화 AI의 위력
구글 딥마인드의 알파폴드는 단백질 과학 분야의 혁명을 일으켰다. 50년간 해결되지 않았던 단백질 폴딩 문제를 해결해 2024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했다. 현재 190개국 200만 명 이상이 시용하고 있다. 알파폴드3는 단백질뿐만 아니라 DNA, RNA 등 모든 생체분자의 구조와 상호작용을 예측할 수 있게 진화했다.
구글 리서치가 최근 개발한 g-AMIE 시스템도 주목할 만하다. ‘AI는 청취, 의사는 진단’이라는 명확한 역할 분담을 통해 의료 워크플로우 혁신을 이루고 있다. 가상 임상시험에서 동일 조건의 의료진보다 우수한 평가를 받았다.
LG AI연구원은 AI 기술을 임상 분야에 적용했다. 엑사원을 기반으로 개발한 패스 2.0은 조직 병리 이미지만으로 유전자 변이를 예측해 기존 2주 걸리던 진단을 1분으로 단축했다. 폐암, 직장암, 유방암 등 주요 벤치마크에서 평균 0.784점의 예측 정확도를 기록하며 실제 의료 현장에서 활용 가능한 수준에 도달했다.
최근에는 미국 잭슨랩과 협력해 기존에 버려지던 ‘불완전한 의료 데이터’도 활용하는 MOIRA 모델을 개발했다. 특히 서울대 백민경 교수팀과 함께 진행하는 멀티스테이트 단백질 구조 예측 연구는 알파폴드도 해결하지 못한 문제에 도전하고 있다.
백민경 교수는 지난 7월 열린 LG AI 토크콘서트에서 화상으로 등장해 “알파폴드는 단백질의 정적인 단일 상태 구조밖에 예측하지 못하는데, 우리는 다중 상태 구조 예측을 통해 단백질을 더 명확히 이해하려 한다”며 “이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난제로, 질병 치료나 원하는 기능을 할 수 있는 산업적 가치가 있는 효소 설계 등에 접목하려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파운데이션 모델 기반의 산업 전반 확산
두 기업의 성과는 의료 분야에 국한하지 않는다. 파운데이션 모델을 기반으로 한 특화 AI가 다양한 산업 현장에서 구체적 성과를 내고 있다.
LG의 엑사원은 LG디스플레이에서 30년간 축적된 방대한 연구개발(R&D) 문서를 기반으로 20~30분 걸리던 문제 해결 시간을 30초 이내로 단축했다. LG유플러스에서는 통화 요약 및 응대형 AI 에이전트 서비스로 상용화되어 실제 고객 서비스에 활용되고 있다.
알츠하이머 연구 분야에서도 LG AI연구원은 실험 쥐부터 인간까지 포괄하는 통합 솔루션을 개발해 실제 치료제 개발로 이어지는 성과를 보였다. 암컷 쥐가 수컷보다 뚜렷한 행동 변화를 보인다는 발견이나, 기름지고 단 음식이 알츠하이머를 악화시킨다는 확인 등은 향후 치료법 개발의 중요한 단서가 되고 있다.
최정규 LG AI연구원 그룹장은 기자와 인터뷰에서 “우리는 산업 현장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복잡하고 고난도의 문제들을 AI로 해결해달라는 실질적인 요청을 받으며 엑사원을 발전시켰다”며 “그 과정에서 산업별로 매우 정교한 이해와 대응이 가능한 대형언어모델(LLM)을 만들 수 있었다”고 밝혔다.
◇ 한국 AI 정책에 던지는 시사점
구글과 LG의 사례는 한국 AI 정책 방향에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현재 한국은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프로젝트를 통해 파운데이션 모델 개발에 국가적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AI 산업은 파운데이션 모델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구글과 LG의 사례에서 보듯, AI의 진정한 가치는 파운데이션 모델을 특정 분야에 접목하고 응용했을 때 발생한다. AI 스타트업 대표는 “파운데이션 모델은 출발점일 뿐이고, 실제 혁신은 사람을 살리고 문제를 해결하는 특화된 응용에서 시작된다”며 “한국이 AI 강국이 되려면 파운데이션 모델 개발과 함께 의료, 제조, 교육 등 각 분야에서 구체적 문제를 해결하는 특화 AI 개발에도 균형 있게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구글 리서치의 g-AMIE는 의료진 부족이라는 현실적 문제에 구체적 해법을 제시했고, LG AI연구원의 엑사원 패스 2.0은 유전자 진단의 시간적 한계를 혁신적으로 개선했다. 이는 단순한 기술 과시가 아닌, 실제 현장의 효율성을 높이는 실용적 혁신이다.
AI 스타트업 대표는 “AI의 성공은 몇 개의 파라미터를 가졌는지, 얼마나 많은 데이터로 학습했는지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실생활에서 도움을 받는지가 진짜 척도”라며 “구글과 LG가 의료 분야에서 보여주는 성과는 파운데이션 모델과 특화 전문성을 결합한 AI 발전 방향의 모범 사례”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