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가 인공지능(AI) 인재 영입을 위해 최고 1억달러(약 1384억 원)의 파격적인 연봉을 제시하며 글로벌 AI 인재 시장에 충격파를 던졌다. 최고경영자(CEO)를 제외한 업계 최고 대우로, AI 연구자의 몸값이 글로벌 프로 스포츠 스타를 뛰어넘는 수준에 이른 것이다.
실제로 메타는 최근 오픈AI 출신 연구원들을 대거 영입하며 AI 슈퍼인텔리전스 연구소 구축에 사활을 걸고 있다. 알렉산더 왕(스케일AI 공동창업자), 루카스 바이어(전 오픈AI 연구원) 등 업계 최고 수준의 인재들이 메타로 이직하면서 AI 업계 지형도가 급변하고 있다.
AI 인재 전문 채용사 해리슨클라크가 2025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중견급 AI 엔지니어들의 급여 패키지는 2022년 40만90만 달러에서 최근 50만200만달러(약 6억9000만~27억7000만원)로 껑충 뛰었다. 미국 연봉비교 플랫폼 레벨스 조사에 따르면 메타 AI 엔지니어 연봉은 18만6000달러에서 최대 320만달러(44억4000만원)로 업계 최고 수준이다.
이런 파격적인 대우의 배경에 대해 라즐로 복 전 구글 HR 부사장은 “개별 인재에 막대한 돈을 투자하는 것이 수십억달러 규모의 기업을 인수하는 것보다 효율적”이라며 “(고액 연봉은) 빅테크엔 오히려 저렴한 투자”라고 분석했다.
◇ 글로벌 빅테크들의 인재 확보 전쟁
메타의 공격적인 인재 영입은 다른 빅테크 기업들에게도 연쇄 반응을 일으키고 있다. 오픈AI는 메타의 공격적인 스카우트 이후 급히 자체 보상 체계를 재검토하기 시작했으며, 다른 빅테크들도 핵심 인재 유출을 막기 위해 특별 인센티브를 마련하고 있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머서가 발표한 ‘2024~2025 인재 동향’ 자료에 따르면 응답 기업의 88%가 “AI 등 핵심 기술인재 확보를 위해 특별 보상 프로그램을 시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AI 업계에서는 AI 인재는 많지만, 높은 수준의 전문성을 갖춘 인재는 드물다고 주장한다. 이 때문에 극소수 인력은 몸값이 높아지고 있다고 밝혔다. 카일 랭워디 리비에라파트너스 파트너는 “최근 몇 년 사이 경쟁이 극도로 치열해지면서 일부 기업들이 원하는 인재 확보를 위해서라면 어떤 대가라도 치르겠다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김동환 포티투마루 대표는 기자와 통화에서 “뛰어난 인재 1명의 연구 결과가 1000억 이상의 그래픽처리장치(GPU) 비용 절감 효과를 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LLM 개발 과정을 보면, 데이터 확보하고 GPU만 구동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라며 “두 번 세 번 구동해서 한 번 성공하면 다행인데, 1000억 받고 개발 횟수를 한 번만 줄여도 남는 장사”라고 덧붙였다. 높은 금액으로 인재를 유치하는 것이 기업 입장에선 손해가 아니라는 설명이다.
◇ 한국, AI 인재 순유출국으로 전락
그렇다면 한국 인재 상황은 어떨까? 사실 우려스러운 상황이라는 게 AI 업계의 설명이다. 김동환 포티투마루 대표는 “OECD 통계에 따르면 한국은 3년 전만 해도 AI 인재 순유입 국가였지만, 지금은 순유출 국가가 됐다”며 “인재들이 실리콘밸리와 중국 등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이 2025년 발표한 ‘초격차 산업경쟁력 확보를 위한 글로벌 기술 협력 촉진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과학기술 연구인력의 예상 부족 인원은 2024~2028년 약 4만7000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불과 5년 전(2019~2023년) 800명 수준에서 무려 60배 급증한 수치다. AI, 클라우드, 빅데이터, 나노기술 등 4대 신기술 분야에서는 2027년까지 약 6만 명의 전문 인력이 부족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SDS가 2023년 실시한 ‘국내 AI 도입 및 활용 현황 조사’에서 국내 기업들은 AI 도입 과정에서 가장 큰 어려움으로 데이터 부족과 데이터 품질 문제(52.9%)를 1위로 꼽았고, 이어 숙련된 인력의 부족과 채용의 어려움(48.4%)을 2위로 꼽았다. 또한 미국 IT 인재 개발 기업 리베이처(Revature)가 2025년 230명의 IT 및 HR 의사결정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IT 기술 역량 설문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기업의 84%가 2025년 기술 인재 확보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으며, 특히 IT 부서 의사결정자의 88%가 이러한 우려를 공유했다.
보스턴컨설팅그룹이 2025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일본, 말레이시아 등과 함께 ‘AI 안정적 경쟁국가’로 분류됐다. AI 분야에서 미국, 중국, 영국, 캐나다, 싱가포르 등 ‘선도국’ 그룹에 속하지 못하고 한 단계 낮은 평가를 받은 것이다.
◇ 한국 정부, AI 인재 양성에 본격 투자
이런 위기감 속에서 한국 정부는 AI 인재 양성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장관 배경훈)는 최근 ‘생성AI 선도인재양성’ 사업과 ‘AI 최고급 신진연구자 지원’ 사업의 수행기관을 신규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생성AI 선도인재양성 사업은 생성형AI 선도기관이 주관기관으로서 산업현장의 기술수요를 바탕으로 연구주제를 발굴하고, 2개 이상 대학이 참여하는 산·학·연 컨소시엄을 구성해 고급인재를 양성하는 프로그램이다. 과제당 석·박사급 학생 24명 이상을 양성하며, 매년 우수연구자 3명 이상을 선발해 기업 파견 및 심화연구 기회도 제공한다.
LG AI연구원은 KAIST, 서울대, UNIST, DGIST와 함께 피지털AI 분야 거대 생성모델 기술 선도를 위한 ‘LG AI 스타 인재양성 사업’을 추진한다. NC AI는 서강대, KAIST, UNIST와 협력해 멀티모달 AI 에이전트 시대에 적합한 실무형 AI인재 육성에 나선다. 한국전자기술연구원(KETI)은 서울대, KAIST, 고려대, 연세대 등과 함께 인간 중심의 범용AI를 위한 ‘휴먼 파운데이션 모델’ 연구와 인력양성에 나선다.
‘AI 최고급 신진연구자 지원(AI 스타펠로우십) 사업’은 창의성과 도전성을 갖춘 우수 AI 신진연구자를 집중 지원해 우수 연구자들이 석박사 이후에 국내에서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중장기 R&D 프로그램이다.
울산과학기술원(UNIST)은 노타AI, SK에너지 등과 협력해 시각·언어·행동(VLA) 정보를 통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온디바이스 제조AI 개발을 추진한다. 서울대는 크래프톤, 네이버클라우드, 원익로보틱스와 함께 시공간 데이터(4D), 다감각 정보(5S), 6대 로봇 기술(6R)을 융합한 초지능형 AI 에이전트 개발 과제를 수행한다. 성균관대는 포티투마루, 아크릴, 에이딘로보틱스와 공동으로 사람과 AI의 협업을 위한 협력지능형 에이전트 연구개발을 진행한다.
김동환 포티투마루 대표는 AI 인재 양성 방향에 대해 “AI는 고급 인재 역할이 두드러지는 분야”라며 “양적 인재 양성도 중요하지만, 박사급 이상의 고급 인재를 얼마나 육성하고, 또 해외에서 유치해 올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해외 성공 사례로는 일본을 제시했다. 일본은 ‘특별고도인재제도(J-Skip)’ 등을 통해 해외 우수 인재에게 배우자 취업, 가사도우미 고용, 영주권 요건 완화 등 파격적 우대 조치를 시행하면서 최근 AI 인재 순 유입국으로 전환됐다.
송상훈 과기정통부 정보통신정책실장은 “이번 생성AI 선도인재양성 사업과 AI 최고급 신진연구자 지원 사업을 통해 산업계와 학계가 함께 현장의 문제를 해결하며 인재를 키우는 산학협력 기반 모델을 정착시키고, 이를 바탕으로 AI산업을 이끌 핵심인재 양성과 AI생태계 경쟁력 강화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