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은 개발비로 오픈AI 챗GPT와 경쟁할 수 있는 ‘R1’를 만들어낸 딥시크 성공 요인으로 꼽히는 게 우수한 자국 인력들이다. 해외 유학파 출신이 아닌 토종 인재들로 구성된 딥시크는 하드웨어 투자가 부족한 국가에서도 글로벌 빅테크에 맞서 모델 경쟁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전 세계에 보여줬다.
AI 업계에 따르면 딥시크 내부에는 200명이 넘는 AI 고급인재들이 있다. 이번 딥시크 ‘R1’ 모델 개발 핵심 인물로 알려진 엔지니어 뤄푸리도 중국 국내파 인재다. 창업자 량원펑을 비롯한 구성원 대부분이 자국에서 공부한 인력들이라는 점에서 더욱 주목받고 있다.
프랑스 스타트업 미스트랄이 급격히 성장할 수 있는 배경에도 우수한 인력이 있었다. 최홍섭 마음AI 기술총괄대표는 4일 열린 ‘딥시크 쇼크 대응과 AI 발전 전략 긴급 간담회’에서 “프랑스 정부 지원도 있겠지만 구글 딥마인드, 메타 연구원 출신들이 파리에 모여들었기 때문에 미스트랄이 성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국내 AI 인재양성 현주소는 어떨까. 한국은 2023년 회원국별 AI 인재 국가 이동 현황에서 AI 인재 유출국으로 분리됐다. 국내 AI 고급 인재 비율은 2022년 기준 2%대이며, 활동 비율도 1~2% 수준이다.
국내 AI 고급 인재 양성은 크게 AI대학원 10곳과 AI융합혁신대학원 9곳에서 맡고 있다. 정부가 2019년부터 국책사업으로 AI 인력양성을 위한 대학원을 선정해 왔다. THE AI가 지난해 5월 AI 대학원과 AI 융합대학원 원장들을 만나 취재했을 때 원장들은 우수한 AI 인재 확보하는 게 AI 국가 경쟁력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AI 교육계에서는 지난해 연구개발(R&D) 삭감이 AI 인재 격차를 심화시킨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미국·중국 등이 막대한 정부 예산을 쏟아부어 달릴 때 우리나라는 오히려 속도를 낮추고 걷고 있었다는 것이다. 한 AI 교수는 “정부가 몇 년 전에도 디지털 인재 100만 양성을 약속했지만 지난해 오히려 예산을 줄였다”며 “AI가 국가 경쟁력이라고 말하면서 계획과 행동은 따로 가고 있었다”고 비판했다.
지난해 AI 인재 양성에도 예산 감축은 영향을 미쳤다. 연구개발비 예산 감축과 AI융합혁신대학원에 편성된 예산 규모를 갑자기 축소하면서 대학들은 신입생들을 더 적게 뽑고 대외 활동비를 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I 대학원과 AI 융합혁신대학원이 운영되면서 국내 AI 인재 양성의 기반이 마련된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산업계와 연구기관의 협력을 바탕으로 AI 고급 인재를 배출하고 있다.
대학원 과정설립 초기부터 현재까지 인공지능·인공지능융합혁신대학원장들은 전폭적이고 지속적인 투자가 뒷받침돼야 인력양성이 원활하게 된다고 강조해왔다. 고급 인재는 최소 5년을 바라보고 인재를 키워야 하기 때문이다.
정송 KAIST 김재철AI대학원장도 본지와 인터뷰에서 “AI 인재 양성은 대한민국 전체 AI 경쟁력 가운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며 “정부 AI대학원 사업이 국내 AI 교육 기반을 만들었고, 이제는 지속적인 투자로 나아가야 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하지만 지난해 인력 양성과 연구 환경은 더욱 악화됐다. 서영주 포항공대 AI대학원장은 “미국과 중국은 오랫동안 꾸준히 투자해 왔지만 우리는 격차가 더 벌어지고 있다”며 “지난해 연구 예산 축소로 격차가 더 벌어졌다”고 말했다. 이어 “올해 주요 기업들이 경영난을 이유로 산학협력 예산을 줄이고 있다”며 “기존 산학 협력도 줄고 연구 장비도 부족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딥시크 등장 이후 AI 인재양성 방향에 대해 묻자 서 원장은 “딥시크가 내놓은 R1이 오픈소스로 공개되면서 이를 활용한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이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이라며 “AI 모델 개발자뿐 아니라 이를 활용할 수 있는 인재양성도 대폭 확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인공지능대학원·인공지능융합대학원 등 AI 고급인재 양성 늘려야 하지만 매년 똑같은 예산이 발목을 잡고 있다. 서 원장은 “해가 지날수록 신입생이 들어오고 학생 수가 늘고 있지만 매년 예산은 똑같다”며 “학생들이 많아짐에 따라 정부가 예산을 더 부여해 양질의 교육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성환 고려대 인공지능대학원장도 AI 인재 확보에는 전폭적인 투자가 있어야 한다고 동의했다. 그는 “결국 AI 인재양성을 위해 예산을 늘려야 한다”며 “퍼스트 무버가 돼야 AI 시대를 선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속적인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국내 AI 대학원에는 △KAIST △고려대 △성균관대 △광주과기원(GIST) △포항공대 △연세대 △울산과기원(UNIST) △한양대 △서울대와 △중앙대 등 10곳이 선정돼 운영되고 있다. AI융합혁신대학원에는 △이화여대 △인하대 △충남대 △한양대 ERICA △동국대 △부산대 △전남대 △아주대 △경희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