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학생을 대상으로 발생한 디지털 성범죄 소식이 전해지자 “성범죄 대상인 걸 영광으로 알아라”는 식의 글이 커뮤니티에 나돌고 있다. 익명이란 그늘에 숨어 피해자를 향한 2차 가해가 여전히 발생 중이다. 영국에선 딥페이크로 음란물을 만들기만 해도 처벌 대상이다. 성범죄 대상인 걸 영광으로 알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행위를 범죄라고 알아야 하는 개념 정립이 시급한 것으로 분석된다.
THE AI 취재 결과, 인공지능(AI)으로 가짜 영상과 이미지를 만드는 딥페이크(딥너링과 페이크의 합성어) 성범죄는 텔레그램 외 여러 커뮤니티에서도 발생했다. 커뮤니티에서는 피해자들에 대한 2차 가해가 발생하고 있었다. 최근 대학가에서 시간표 공유 등으로 많이 사용되는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는 차마 입에 올리기도 민망한 말이 오고 갔다.
성균관대 커뮤니티에는 ‘텔레그램 아니어도 다 할 수 있는데’란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이 글에는 “요새 널린 게 AI 합성인데, X감으로 쓰였다는 거에 만족하고 살아라. 그만큼 너가 매력적이라는 거다. 그리고 실제로 하지도 않았는데 무슨 범죄냐”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남성들의 자위 행동에 이용된 것을 영광으로 알라는 내용이다. 이 글에는 좋아요가 7개 달렸고, 댓글도 14개가 존재했다.
이 사례는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는 이들이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 정부와 지자체가 나서 딥페이크 범죄 예방에 나서는 분위기지만, 익명이라는 이름 뒤에선 정부의 행동을 비웃듯 여전히 디지털 성범죄가 자행됐다.
영국은 딥페이크 범죄 예방에 적극 나서고 있다. 영국 법무부는 지난 4월 딥페이크로 음란물을 만들면 공유·유포 여부와 관계없이 처벌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자 유명 딥페이크 포르노 사이트 두 곳은 영국에서의 접속을 자진 차단했다. 미국에서도 처벌 수위는 높다. 텍사스주와 사우스다코타주는 2022년부터 딥페이크 음란물을 제작하는 사람을 징역형이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했다. 지난달 미국 상원 의회에선 딥페이크 피해자들이 음란물로 본 피해를 보상하는 법안이 통과됐다. 국내에서 딥페이크 성범죄를 일으킨 이들이 만약 영국과 미국에 살았다면, 이들은 제작과 동시에 처벌 대상이 됐다.
현재 국내에서 딥페이크를 처벌할 수 있는 법률 조항은 ‘성폭력 범죄 처벌에 관한 특례법(성폭력처벌법) 14조의2’가 있다. 양진영 법무법인 민후 대표변호사와 오정익 법무법인 원 변호사(인공지능대응팀장)는 딥페이크를 활용해 여학생들의 의견에 반하여 사진을 유포하는 경우 이 조항 제1항에 따라 징역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영리를 목적으로 여학생들의 의사에 반하여 정보통신망을 이용, 반포 등을 한 경우에는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 조항엔 함정이 있다. 딥페이크 사진 제작과는 상관없이 유포할 목적을 입증해야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다. 양진영 변호사는 “현행 성폭력처벌법은 반포목적을 요구하고 있어, 개인소장 목적인 경우 처벌이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딥페이크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처벌을 강화하는 것이 필요한데, 특히 성폭력처벌법에서 목적 조항을 삭제해 처벌 대상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실제로 지난 5월 딥페이크 범죄를 일으킨 서울대 졸업생들은 영리 목적이 아닌 성적 욕망 해소를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주장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