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머노이드 시대에 데이터는 금입니다. 휴머노이드가 행동하며 축적되는 데이터는 어느 정도 축적되면 휴머노이드가 다음부터는 자율적으로 작동합니다.”
데니스 홍 UCLA(캘리포니아 대학교, 로스엔젤레스 캠퍼스) 기계·항공우주공학과 교수의 말이다. 그는 20일 서울 코엑스 아셈볼룸에서 진행된 피지컬AI 인터내셔널 포럼 기조 강연에서 피지컬 AI 시대 휴머노이드 산업의 승부처는 데이터라고 강조했다.
◇ 전통 방식서 데이터 중심으로 변모
홍 교수는 이날 기조강연에서 “지난 1~2년 사이 로보틱스 아키텍처가 근본적으로 바뀌기 시작했다”며 “이는 로봇공학 분야에서 매우 큰 변화”라고 설명했다. 홍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기존에 센서 중심 방식의 전통 방식이 주류였다면, 현재는 센서에서 액추에이터까지 모든 과정이 통합되는 엔드투엔드(End-to-End)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 액추에이터는 로봇을 실제로 움직이게 만드는 장치로, 모터나 유압 장치, 인공 근육 등이 이에 해당한다.
홍 교수는 로봇의 3대 구성요소로 △센서 △컴퓨터 △액추에이터를 제시했다. 전통적으로 로봇은 센서에서 정보를 받아 인식(perception)하고, 이를 바탕으로 판단(planning)한 뒤, 제어(control)를 통해 움직이는 단계적 구조였다. 연구자들이 직접 알고리즘을 코딩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 구조가 엔드투엔드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다. 센서에서 액추에이터까지 모든 과정이 하나로 통합되는 것이다. 그는 “이제는 직접 코딩하는 대신 데이터를 대량으로 학습시키는 방식”이라고 홍 교수는 설명했다.
문제는 이해가능성이다. “예전에는 프로세스별로 무엇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면서 “데이터 학습 방식은 작동은 하지만 근본적으로 어떻게 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큰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 로봇 데이터 수집의 난제
미국 오픈AI의 ‘챗GPT’나 앤트로픽의 ‘클로드’, 구글의 제미나이 등 인공지능(AI) 모델들은 텍스트, 이미지 생성 AI는 사진, 동영상 생성 AI는 영상을 학습 데이터로 사용한다. 모두 인터넷에 풍부하게 존재하는 데이터들이다.
하지만 로봇은 다르다. 홍 교수는 “이족 보행 로봇에게 필요한 데이터는 다양하다”면서 “각 관절의 센서 데이터, 액추에이터 정보, 접촉력, 관성 등 물리적 상호작용을 담은 데이터가 필요한데, 이런 데이터는 인터넷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현재 업계에서는 시뮬레이션을 통해 데이터를 생성한다. 가상공간에서 수천 대의 로봇을 동시에 구현해 합성 데이터를 얻는 방식이다. 하지만 홍 교수는 “시뮬레이션은 현실과 완전히 같지 않다”면서 “특히 큰 로봇이 빠르게 보행하거나 복잡한 접촉이 있을 경우 문제가 많다”고 했다.
텔레오퍼레이션(원격조종)을 통한 데이터 수집도 시도되고 있다. 사람이 VR 기기를 착용하고 장갑을 끼고 로봇을 조종하면서 데이터를 수집하는 방식이다. 테슬라의 옵티머스가 이 방식을 사용한다. 하지만 사람이 로봇이 느끼는 힘을 느끼지 못한다는 한계가 존재한다. 실제 로봇을 대량으로 운용하는 방법도 있지만 엄청나게 많은 로봇이 필요하고, 넘어지면 부서지는 문제를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 홍 교수의 설명이다.
◇ 휴머노이드 구현에 노력하는 이유는
홍 교수는 휴머노이드 로봇의 필요성을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건축가 루이스 설리번의 말을 인용해 설명했다. 예를 들어 사람이 하는 집안일을 하려면 사람의 형태와 크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계단, 문손잡이 높이 등 모든 환경이 사람을 위해 설계됐기 때문에 로봇도 사람 형태가 아니면 계단도 못 올라가고 문도 못 열고 사람용 도구도 쓸 수 없다”고 설명했다.
꼭 휴머노이드일 필요는 있을까 하는 질문에 대해 홍 교수는 로봇청소기를 예시로 들었다. 그는 “로봇청소기의 생김새는 청소부의 모양이 아닌, 원반의 형태를 갖고 있다”면서 “그게 청소라는 단일 작업에 최적화된 형태”라고 설명했다. 이어 “하지만 로봇청소기가 다른 여러 가지 일을 해야 하는 범용적인 용도가 아니다”며 “범용적인 용도로는 휴머노이드 로봇이 필요한 이유”라고 강조했다.
특히 제조 공장에서도 휴머노이드 활용이 늘고 있다. 피겨AI(Figure AI), 테슬라 등의 휴머노이드 로봇이 이미 공장에서 사용되고 있다.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아틀라스도 BMW 공장에서 쓰인다고 홍 교수는 설명했다.
이날 홍 교수는 “우리는 우리가 개발한 휴머노이드 ‘아르테미스(ARTEMIS)’의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오픈소스로 공개했다”며 “휴머노이드 경쟁이 치열한데 미국, 중국뿐 아니라 우리나라도 따라잡아야 한다. 아이디어는 공유할수록 더 커진다”고 당부했다.
한편, 데니스 홍 UCLA 기계·항공우주공학과 교수는 로봇 메커니즘 연구실 ‘로멜라(RoMeLa)’를 이끌며 찰리-2(CHARLI-2), 아르테미스 등 로봇을 선보여왔다. 메커니즘 중심의 공학적 접근과 실제 구현 능력을 겸비해 미국 로봇공학계에서 기술적 영향력과 대중적 인지도를 동시에 확보한 학자로 평가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