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버린 AI vs 오케스트레이션. 현재 네이버와 카카오의 대표 인공지능(AI) 전략이다. 국내 대표 플랫폼 기업인 네이버와 카카오는 초기엔 유사한 AI 전략을 추진하다가 지금은 다른 노선으로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두 길은 서로 다른 곳을 향한다. 한 길은 국내 AI 모델을 통한 경쟁력 향상이고, 다른 길은 이미 검증된 해외 AI 활용을 통한 경쟁력 제고다.
네이버와 카카오의 AI 전략은 최근 AI 업계의 전략과 맞닿아 있다. 자체 AI 역량을 키우거나, 검증된 AI를 활용해 AI 서비스를 확대하는 것이다. 네이버와 카카오는 본래 유사한 길을 걸었었다. 모두 초거대 AI를 구축하는 방향을 내세웠지만, 네이버는 그 길을 고수하는 반면 카카오는 타 기업 AI를 활용하는 방향으로 노선을 갈아탔다. 최근 오픈AI와 전략적 제휴를 발표한 것이 대표 사례다.
네이버의 AI 전략은 ‘소버린 AI’로 요약된다. 세계에서 3번째로 자체 대형언어모델(LLM) ‘하이퍼클로바’를 공개한 기업답게 AI 주권을 강조하는 전략을 추구한다. 소버린 AI는 국가가 자국 데이터와 인프라를 활용해 그 국가 제도와 문화, 역사, 가치관을 이해하는 AI를 개발하고 운영한다는 개념이다. 특정 국가 AI 모델에 의존하는 경우 기술과 문화가 종속될 수 있고 추후 가격 상승 문제 등에 자유롭지 않아 자체 모델을 고도화하는 것을 강조한다.
카카오의 전략은 ‘AI 모델 오케스트레이션’이다. 지난해 10월 개발자 컨퍼런스 if(kakaoAI)에서 처음 공개한 이 전략은 카카오가 자체 개발한 AI 모델뿐 아니라 외부의 우수한 응용프로그램인터페이스(API)를 적재적소에 활용해 사용자에게 최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잘 이해하는 소형언어모델(sLM)을 자체 개발하면서도 성능이 입증된 타사 AI 모델을 적극 이용하는 전략이다. 정신아 카카오 대표는 지난 4일 열린 ‘카카오 미디어데이’에서 “우리는 최고의 사용자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내부 모델에만 국한하지 않고 서비스별로 다른 AI 모델이 사용될 수 있다”면서 “시중에는 다양한 멀티모달 모델을 사용자가 선택해 사용하는 것이 있지만, 우리는 모델별 특성을 이용해 사용자 스스로 선택하지 않아도 오케스트레이션을 통해 사용할 수 있게 한다”고 밝혔다.
◇ 대문 활짝 연 카카오, 협업 기반 AI 활용 강조
카카오의 전략은 현재 글로벌 AI 현실을 수용한 결과로 해석된다. 최근 미국과 중국 등 AI 양대 강국과 나머지 국가의 AI 격차는 벌어지고 있다. 토양에서부터 차이가 난다. 쥐고 있는 자본부터 다르다. 정부와 민간의 AI 투자 역량, 그래픽처리장치(GPU) 등 보유하고 있는 컴퓨팅 능력에서부터 차이 난다. 배경훈 LG AI연구원장은 6일 서울 중구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국가인공지능위원회, 초거대AI추진협의회가 주최한 국가인공지능위원회 회의실에서 “딥시크 R1(중국 모델)보다 추론 수준이 높은 것이 오픈AI ‘o3 mini(미국 모델)’”라면서 “이 수준을 만들기 위해 H200 2000장 정도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기업에 최소한 그 정도는 투자해달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체 AI 기술을 확보하기까진 시간이 걸린다. 네이버가 세계에서 3번째로 개발했다는 LLM ‘하이퍼클로바’도 이미 미국, 중국 후발주자들이 내놓은 일부 AI 모델에 추격을 허용했다. 이에 카카오는 진행하던 초거대 AI 개발 사업을 접고 오픈AI 등 선행 주자들이 만들어 놓은 LLM을 활용하는 노선을 채택했다. 과거 카카오브레인이 ‘코지피티(KoGPT)’ 등 LLM 구축을 시도했지만, 성과가 나오진 못했다. 2022년 기자가 단독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카카오브레인은 2021년 11월 깃허브에 KoGPT 성능평가를 잘못 기재해 AI 업계에 뭇매를 맞기도 했다. 이후 카카오는 카나나 등 한국어와 문화를 잘 이해하는 sLM은 만들지만, LLM은 다른 기업들의 모델을 활용하는 전략을 채택하고 카카오브레인을 IT 개발 자회사 디케이테크인에 인수합병 했다.
카카오 전략은 사실 많은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이 채택한 방식이다. 지금도 많은 기업들이 오픈AI, 메타 등 타사 파운데이션 모델을 활용해 AI를 구축하고 있다. 한 중견기업의 AI 팀장은 “우리가 사용하는 오피스프로그램은 대부분이 미국 기업인 마이크로소프트(MS)가 만든 오피스”라면서 “한글과컴퓨터 제품을 사용하지 않고 해외 제품을 이용한다고 문제 삼진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AI도 어떤 파운데이션을 사용하는 것보다 어떤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해질 것이기 때문에 어느 나라 제품이든 잘 만든 LLM을 이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정신아 카카오 대표는 “우리는 최고의 사용자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내부 모델에만 국한하지 않고 서비스별로 다른 AI 모델이 사용될 수 있다”면서 “시중에는 다양한 멀티모달 모델을 사용자가 선택해 사용하는 것이 있지만, 우리는 모델별 특성을 이용해 사용자 스스로 선택하지 않아도 오케스트레이션을 통해 사용할 수 있게 한다”고 밝혔다.
◇ 韓 AI 자주권 무게 견디는 네이버, 기술 공유 검토
네이버는 카카오와 달리 자체 파운데이션 모델 강화에 힘쓰고 있다. 미국, 중국 기업과 자본과 컴퓨팅에서 차이가 나지만, 할 수 있는 역량 내에서 최선의 발전을 이루고 있다. KAIST 등 기업과 협력해 AI 인재 양성에도 분주하다. 한국 AI 경쟁력 향상을 위한 전초기지 역할을 네이버가 하는 셈이다.
AI 전문가들은 네이버가 소버린 AI를 강조하는 것은 AI 종속을 막을 방안이자 자체 생태계 강화를 위한 전략이라고 설명한다. 이미 글로벌 AI 모델들이 다양한 영역에서 시장을 잠식해 가고 있는 가운데 AI 기술 격차가 경제적·사회적 문제를 초래한다는 것을 들며 자사 AI를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세우고 있단 것이다.
최근 네이버는 여기서 더 나아가 자체 개발한 하이퍼클로바를 오픈 모델로 공개하는 것도 검토 중이다. 딥시크가 자체 개발한 AI를 오픈하면서 경쟁력 도모를 위한 방안으로 풀이된다. 내부에선 찬반 의견이 격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모델을 오픈한다는 논의가 본격 이뤄졌다는 점에서 의미는 크다. 모델을 오픈하면 당장의 금전적 이득은 없어도 오픈 생태계를 통해 모델 성능과 사용성 향상을 도모할 수 있어서다. 이미 LG AI연구원은 엑사원 일부 모델을 오픈 모델로 공개한 바 있다. 당시 LG AI연구원은 블로그를 통해 “현재까지 LG 내부용으로만 사용되던 엑사원을 오픈 모델로 전환하는 것에 대해서 기술적 이점과 사업적 이점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있었다”면서 “AI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는 상황에서, 지금의 모델을 공개하는 것이 AI 생태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판단해 엑사원 모델을 공개하기로 한 것”이라고 밝혔다. 량원펑 딥시크 창업자는 중국 언론 인터뷰에서 R1 모델을 오픈한 이유에 대해 더 많은 인재를 끌어들일 수 있으며, 개발자의 위상을 높일 수 있다고 설명한 바 있다.
하지만 네이버의 전략이 쇄국적으로 이뤄지는 경우 오히려 경쟁력을 낮출 수 있단 지적도 있다. 해외 AI 이용을 견제하고 방어하며 쇄국적인 태도를 취하게 되면 AI 서비스 측면에선 뒤처질 수 있단 지적이다. 실제로 딥시크가 R1 모델을 출시하자 일부 네이버 관계자들은 견제 하는 입장을 내비쳤다. 이에 네이버 관계자는 “소버린 AI는 다른 AI 모델을 배척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쇄국 정책과는 거리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네이버의 소버린 AI 철학은 특정 문화권에 편향된 AI가 세계에서 통용되는 것보다 여러 문화권의 언어를 학습한 각각의 모델들이 공존하는 상태가 옳다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설명했다.
AI 업계에선 네이버와 카카오 두 전략 모두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해외 AI를 적극 이용해 킬러 애플리케이션(앱)과 서비스를 만들어 AI 시장을 선점해야 하고, 이와 더불어 자체 기술력 강화에도 힘써야 한다고 조언한다.
서영주 포항공대 인공지능대학원장은 “해외 파운데이션 모델을 활용해 많은 AI 서비스를 발굴하고 제공하는 것도 물론 필요하지만 당연히 독자 기술은 있어야 한다”며 “해외에서 갑자기 가격을 올리거나 기술을 제공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기에 당연히 우리만의 기술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가 무기를 수입만 하게 되면 해외에서 수출을 안 할 시 문제가 되고, 식량 역시 수입에 의존하면 식량 위기가 발생하는 것처럼 AI도 자주권이 필요하기 때문에 특화한 기술과 이를 활용할 수 있는 인재가 중요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