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엔비디아의 최신 인공지능(AI) 반도체 ‘블랙웰’ 시리즈의 대외 수출을 전면 차단하겠다고 밝히면서 한국 기업들 그래픽처리장치(GPU) 공급도 불투명해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지난달 31일, 엔비디아가 삼성전자와 현대차그룹 등 국내 기업에 26만개 이상의 블랙웰 칩을 공급하기로 한 직후 나온 발언이어서 파장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 中 수출 질문에 “미국 외 국가 판매 금지”
트럼프 대통령은 2일(현지시간) CBS 시사 프로그램 ‘60분’에 출연해 “엔비디아 최첨단 칩을 중국에 판매할 것이냐”는 질문에 “절대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최첨단 칩은 미국 외에는 누구도 갖지 못하게 하겠다”며 중국뿐 아니라 모든 국가에 대한 수출 제한 가능성을 시사했다.
그는 다만 “중국 기업에 최첨단 블랙웰 칩 판매는 허용하지 않겠지만, 성능이 낮은 버전의 칩을 획득하는 것은 상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번 인터뷰는 지난달 31일 사전 녹화됐으며,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플로리다에서 백악관으로 복귀하는 에어포스원 기내 브리핑에서도 같은 입장을 재확인했다.
블랙웰은 엔비디아가 개발한 차세대 AI 칩으로, 대규모언어모델(LLM) 등 생성형 AI 학습과 실행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AI 칩 분야는 현재 미국과 중국 간 첨단 기술 패권 경쟁의 최전선으로 꼽힌다.
◇ 한국에도 직격탄 우려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발언은 한국 기업들에게 직격탄이 될 전망이 나오고 있다. 엔비디아는 지난주 한국 기업들에 26만장 이상의 블랙웰 칩을 공급하기로 합의했다. 4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한국이 공급받기로 한 GPU는 블랙웰 아키텍처 기반의 ‘GB200’과 전문가용 워크스테이션 GPU ‘RTX 프로 6000’이다.
GB200은 1조 파라미터 이상 대형언어모델(LLM)과 초대형 AI 모델의 학습·추론을 지원하는 데이터센터 전용 칩으로, 가격은 개당 6만~7만달러(약 8700만~1억 원)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RTX 프로 6000은 최신 AI, 3D, 영상, 과학 그래픽 작업에 최적화된 전문가용 GPU로, 블랙웰 아키텍처와 96GB GDDR7 RAM, 2만4064개의 CUDA 코어를 탑재했다. 가격은 8565달러(약 1230만원) 수준이다.
엔비디아의 칩은 삼성전자, SK그룹, 현대차그룹 등에 보급될 예정이었다. 삼성전자와 SK그룹은 AI 데이터센터를 구축하고 구축하고, 생성형 AI 학습 및 반도체 설계 고도화를 추진 중이다. 두 그룹 모두 미국의 수출 규제 강화 시 AI 연산력 확보에 차질을 빚게 되고, 자사 AI 반도체(삼성 ‘Gauss’, SK ‘SAPEON’)의 개발 로드맵에도 변수가 될 전망이다. 현대차그룹은 엔비디아로부터 블랙웰 GPU 5만 개를 공급받아 자율주행 및 소프트웨어 중심 차량(SDV) 개발에 활용할 계획이었다. IT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자율주행 상용화 일정에 차질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 “블랙웰, 전 세계 차단될 수 있다는 암시”
로이터통신 등 외신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당국이 이전에 시사했던 것보다 훨씬 강력한 제재를 가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며 “중국은 물론 전 세계가 첨단 반도체 칩에 접근하는 것이 차단될 수 있음을 암시한다”고 내다봤다.
블랙웰 칩은 어떤 버전이라도 중국 기업에 판매하는 것은 미국 대중국 강경파 정치인들로부터 거센 비판을 받아왔다. 존 무레나 하원 미중전략경쟁특별위원회 위원장은 블랙웰의 중국 판매에 대해 “이란에 무기급 우라늄을 주는 것과 다름없다”며 강하게 비판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주 한국 방문 당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앞두고 칩 문제를 논의할 가능성을 시사했으나, 실제 회담에서 해당 주제는 거론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외신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정치적 수사인지, 실제 정책으로 이어질지 두고 봐야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