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에 양자컴퓨터가 들어섰다.
연세대와 IBM은 20일 국내에선 처음이자 대학으로선 전 세계 두 번째로 양자컴퓨터 ‘IBM 퀀텀 시스템 원(IBM Quantum System One)’을 대중에 공개했다. 연세대 송도 국제캠퍼스 퀀텀 컴퓨팅 센터에 설치된 이 양자컴퓨터는 연세대는 물론 대학과 협력하는 국내 학술 기관과 기업들이 양자컴퓨팅 기술을 연구하고 활용할 기회를 제공하고자 도입했다.
◇ AI 발전의 치트키 양자컴퓨터, 연대에 들어서다
이번 양자컴퓨팅 설치로 연세대와 협력기관은 인공지능(AI) 연구에 탄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AI는 지속적으로 몸집을 키우며 많은 전기와 물을 사용하고 있다. 초거대 AI라 불리는 파운데이션 모델 발전으로 모델을 학습하고 최적화하는 데 필요한 계산량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어서다. 실제로 구글이 2018년 33억 개 토큰을 학습하고 3억 4000만 개 파라미터를 보유한 ‘버트(BERT)’를 출시한 이후 파운데이션 모델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졌다. 구글에 2021년 10월 공개한 ‘패스웨이’는 당시 7800억 개 토큰을 학습하고 4300억 개 파라미터를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AI가 몸집이 커진다는 것은 그만큼 전력을 많이 소모하고 탄소를 많이 배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거인이 사람보다 더 많은 양의 밥을 먹고 노폐물을 배출하는 것과 비슷한 원리다. 엠마 스트루벨(Emma Strubell) 미국 매사추세츠대 교수 연구진이 2019년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구글이 초거대 언어모델 버트를 학습시키는 동안 438lb(약 652㎏)의 이산화탄소를 발생시켰다. 비행기가 뉴욕에서 샌프란시스코를 왕복으로 오갈 때 뿜어내는 이산화탄소 발생량이다. 미국 전국에서 달리는 자동차 평균 배출량의 약 5배에 해당하는 수치이기도 하다.
AI는 전기뿐 아니라 물 사용량 문제도 안고 있다. 캘리포니아대 연구에 따르면, 오픈AI의 챗GPT는 약 50개의 프롬프트를 사용할 때마다 0.5리터의 물로 시스템을 냉각해야 한다. 서버에서 과도하게 열을 발생시키면서 이를 식히기 위해 물을 지속 뿌려야 한다. AI가 전기와 물을 많이 사용하면서 환경오염의 주범이 되고 있는 것이다.
양자컴퓨팅은 이 문제를 풀 수 있는 실질적인 해결책으로 꼽힌다. 고전적인 컴퓨터는 정보 처리 최소 단위로 0과 1을 사용한 1비트를 사용한다. 데이터를 연산할 때 저장소의 상태가 0과 1중 한 가지만 존재해야 하는 방식이다. 양자 컴퓨팅은 다르다. 정보 처리 최소 단위로 0과 1 상태가 섞인 ‘큐비트(Quantum bit)’를 이용한다. 양자 역학에서 빛과 물질이 입자이자 파동인 상태로 존재할 수 있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0과 1의 상태가 동시에 나타날 수 있는 ‘양자 중첩현상’을 활용해서다. 이 때문에 양자 컴퓨팅은 고전적인 컴퓨터보다 훨씬 빠르게 데이터를 연산할 수 있다. AI 모델이 커져도 소화할 수 있는 것이다.
양자 오류 완화 기술 등을 개발하며 양자컴퓨팅 발전에 기여하고 있는 안도열 서울시립대 전자전기컴퓨터공학부 교수는 “대형언어모델(LLM) 기반 AI는 갈수록 연산량이 많아지고 있고, 그만큼 연산 처리에 발생하는 전력 소모도 늘어나고 있다”며 “양자컴퓨팅은 같은 연산을 더 적은 에너지로 수행할 수 있어, 전력 소비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윤동섭 연세대 총장은 “연세대는 국내 처음으로 IBM 퀀텀 시스템 원을 설치함으로써, 양자 컴퓨팅과 첨단 바이오 분야에서 세계적 수준의 연구와 교육을 수행할 견고한 기반을 마련했다”고 자평하며 “우수한 양자 분야 연구자들을 적극적으로 유치하고, 세계적인 양자 연구기관과 긴밀히 협력해 혁신적인 연구 성과를 창출하며, 인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공동 목표 달성에 매진하겠다”고 말했다.
◇ IBM 퀀텀 시스템 원이 들어선 의미
IBM 퀀텀 시스템 원은 127큐비트 IBM 퀀텀 이글 프로세서로 구동된다. 연세대 네트워크의 연구자, 학생, 조직 및 파트너들만이 전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유용성 단계의 컴퓨팅 자원을 제공한다. 이번 시스템으로 한국은 미국, 캐나다, 독일, 일본에 이어 IBM 퀀텀 시스템 원이 설치된 전 세계 5번째 국가가 됐다.
2023년 IBM은 IBM 이글 프로세서가 기존 컴퓨팅을 사용한 무차별 대입 시뮬레이션 방식으로는 불가능했던 정확한 계산을 수행할 수 있는 성능을 보유했음을 보여줬다. ‘(양자) 유용성 단계’로 알려진 이 성능은 양자 컴퓨터가 기존 컴퓨팅 방식을 능가하는 문제 해결 능력을 갖추게 되는 ‘양자 우위’에 도달하기 위해 화학, 물리학, 소재 과학 및 다양한 분야의 문제를 탐구하는 과학적 도구로 활용될 수 있는 시대가 열렸음을 의미한다. 양자 우위에 도달해 양자 연산이 무차별 대입이나 근사치 계산 방식을 뛰어넘는 실질적으로 중대한 이점을 제공하게 되면 기존 컴퓨팅보다 더 저렴하고 더 빠르며 더 정확한 방식으로 복잡한 문제의 답을 계산할 수 있게 된다.
제이 감베타(Jay Gambetta) IBM 퀀텀 부사장은 “연세대와 함께 유용성 단계의 양자 컴퓨터를 한국에 제공하게 되어 매우 기쁘다”며 “이를 통해 한국에 있는 더 많은 연구 기관과 단체, 기업 그리고 인재들이 양자 알고리즘의 한계를 넘어 과학적·사업적 가치를 모색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또 “IBM 퀀텀 시스템 원이 한국의 미래 양자 인재 양성과 양자 생태계 확장의 중요한 기반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 양자로 나아가는 인천, 연구 협력 강화 예정
연세대는 2025년 3월 연세대 창립 140주년 및 유네스코 ‘국제 양자과학기술의 해’를 맞아 송도 국제 캠퍼스에서 IBM 퀀텀 시스템 원이 설치된 양자 연구동을 포함한 ‘양자컴퓨팅콤플렉스’ 개소식을 개최할 예정이다.
송도 국제캠퍼스는 바이오 분야의 국가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의 핵심 거점으로서 연세대는 세계 첫 양자·바이오 융합 첨단 산업 클러스터 구축을 목표로 인천광역시와 협력하고 있다. 이 클러스터 개발의 일환으로 2024년 7월, 연세대와 IBM은 국내 양자 생태계 발전을 위한 바이오-퀀텀 이니셔티브에 협력하는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연세대는 또한 양자 연구 및 생태계 조성을 본격화하기 위해 양자생태계운영센터, 양자컴퓨팅기술지원센터, 양자컴퓨팅센터를 포함하는 ‘양자사업단’을 신설했다. 양자 사업단은 향후 △글로벌 협력기관 유치를 위한 연구 시설 확충 △IBM 자원을 활용한 양자 알고리즘 개발 지원 및 기술 프로젝트 자문 △양자 인재 양성을 위한 교육 및 자료 개발 △워크숍, 세미나, 콘퍼런스 개최 등을 통해 지식 교류 활성화 및 양자기술 발전에 기여할 계획이다.
정재호 연세대 양자사업단장은 “양자컴퓨팅 분야는 2023년부터 2030년까지 55억 달러(약 7조 6000억 원) 이상의 성장이 예상되는 만큼, 국내 최초로 도입된 양자컴퓨터의 공동 활용 생태계 구축을 통해 산업 전반의 ‘양자 문해력’을 증진하고 상생 협력의 기반을 제공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향후 정부 기관, 지자체, 연구기관, 대학, 기업, 병원 등에서 양자컴퓨팅 활용 사업을 준비하는 다양한 기관 및 연구 협력에 관심 있는 기관은 언제든지 연세대 양자사업단으로 문의해 주시기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