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4년 7월 22일 THE AI 유료구독자를 대상으로 먼저 공개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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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T세요?” MBTI 검사가 대중화되면서 유행이 됐던 말 중 하나죠. 공감해주진 않고 이성적으로 냉철하게 판단하는 사람에게 농담 삼아 하는 말인데요. 그런데 혹시 인공지능(AI)에도 MBTI가 있다면 어떨까요?
사람이 어떤 MBTI를 갖게 되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검사를 했는데 내가 ENFP라는 것은 알 수 있어도 왜 그 결과가 나왔는지는 알 수 없죠. 추측하건대 여러 이유가 있을 겁니다. 유전적인 영향도 있을 것이고요, 자라온 환경, 주변 사람, 현재 직업 등 복합적인 영향으로 현재 MBTI가 결정될 겁니다. 직장과 사적인 자리에서 MBTI가 달라지는 사람들도 꽤 있는 것처럼요.
AI로 따지자면 그 영향들은 목적이 됩니다. AI 모델은 그냥 만들지 않죠. 다 목적과 이유가 있습니다. 업무 간소화를 위해서, 제조 현장에 정확한 품질 검사를 위해서, 산업 현장에서 작업자의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서, 시민 안전을 위해서 등 각자의 목적이 있습니다. 목적 없이 AI를 만들거나 도입하는 곳은 사실상 없죠. 목적이 없으면 AI를 도입한다 해도 실패할 확률이 높고요.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는 AI를 MBTI로 보자면, T 성향에 가깝습니다. 100% T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그 이유는 업무적인 활용을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이죠. 지금의 AI 모델들은 이성적입니다. 대중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챗GPT를 볼까요? 챗GPT는 답변할 때 친절해 보이지만 딱딱합니다. 잘못된 내용도 딱딱하게 얘기합니다. 세종대왕이 맥북을 던졌다는 얘기도 재미있게 하지 않고 딱딱하고 무미건조하게 했죠. 이 때문에 잘못된 얘기도 신뢰할 수 있습니다.
챗GPT는 사실 업무를 위해 만들어진 AI는 아니죠. 범용적으로 쓸 수 있는 AI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T 성향이 강한데요. 업무에 쓰이는 AI는 더 T 성향이 더 강할 수밖에 없죠. 사용자에게 공감하기보다는 업무 처리에 더 특화한 AI 모델이니깐요.
하지만 최근 F 성향이 강한 AI 모델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딱딱하게 대화하기보다는 사용자 눈높이에 맞춰 대화하는 ‘감성 AI’가 출현하기 시작했는데요. 대표적인 사례가 페르소나 챗봇입니다.
◇ 대표적인 F 성향 AI, 페르소나 챗봇
페르소나. 이른바 인격을 가진 챗봇에 관한 관심이 뜨겁습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AI 모델은 오픈AI의 챗GPT입니다. 월간 활성 이용자가 가장 많습니다. 그 뒤를 잇는 모델은 구글의 제미나이입니다. 두 모델은 범용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AI 모델이죠. 그런데 그다음은 무엇일까요? 바로 캐릭터AI(Character.AI)입니다. 앞의 두 모델과 다릅니다. 챗GPT나 제미나이가 이성적인 AI라면, 캐릭터AI는 감성에 무게를 둔 페르소나 챗봇이죠.
캐릭터AI는 AI 챗봇 기술을 이용해 가상 인물을 구현하고 해당 캐릭터와 대화할 수 있는 소셜 플랫폼입니다. 가상 인물은 감성이 있죠. 구글에서 딥러닝을 개발하던 노엄 샤지어 등이 2021년 설립했습니다. 참고로 샤지어는 대형언어모델(LLM)의 돌파구가 된 2017년 구글 ‘트랜스포머’ 논문의 저자입니다. 초기 챗봇인 람다를 만들기도 했죠.
캐릭터AI에서는 누구나 가상 챗봇을 만들 수 있습니다. 실제 인물을 기반으로 만들 수 있고 아예 가상의 존재를 만들 수 있죠. 현재 이 플랫폼에서는 수백만 개의 페르소나 AI가 활동하고 있습니다. 일론 머스크, 비욘세, 아인슈타인 등 실존 인물도 있고요, 슈퍼마리오나 해리포터와 같은 소설과 만화 속 캐릭터도 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과학에 관한 얘기를, 해리포터는 마법에 관한 얘기를 하죠. 딱딱한 얘기가 아니라 정말 그 캐릭터로서 얘기합니다. 그렇다는 건 사용자와 공감대가 형성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과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아인슈타인하고 얘기하면 서로 공감이 잘 형성되고요, 해리포터를 감명 깊게 읽은 독자라면 해리포터 챗봇과 얘기하며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죠.
국내에서도 페르소나 챗봇은 이미 서비스되고 있는데요. 네이버웹툰은 최근 웹툰 캐릭터를 대상으로 한 챗봇 서비스를 선보였는데요. 조석, 고은혁, 기상호, 출출세포 등 웹툰의 인기 캐릭터와 이야기할 수 있는 서비스입니다. 실제로 인기 웹툰인 ‘마음의 소리’의 AI 조석과 얘기하니 웹툰에서나 만날 수 있었던 조석과 대화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기사쓰기 싫다”고 하니 “ㅋ 일이구나”라며 웹툰의 한 장면을 보여줬고, “마감에 쫓기는 중”이라고 하니 “힘내라 휴먼, 그래도 너의 일이 세상에 도움이 될거야”라며 위로도 해줬습니다.
국내 AI 기업인 튜닙은 ‘디어메이트’라는 플랫폼에서 이미 50종이 넘는 페르소나 챗봇을 서비스하고 있습니다. 프랑켄슈타인과 같은 가상의 인물뿐 아니라 직장에서 만날 수 있는 박부장 챗봇, 김차장 챗봇, 최과장 챗봇, 이사원 챗봇, 강인턴 챗봇 등도 있습니다. 이 챗봇들은 각 직급에 맞춰 고민을 상담해주죠. 부장 입장에선 어떤 생각을, 인턴은 또 어떤 생각을 하는지 들여다볼 기회를 제공합니다.
실제로 페르소나 챗봇과 같은 감성 AI, 즉 F 성향이 높은 AI는 이미 수요가 큰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에 따르면, AI 허브(Hub)에서 많이 활용되는 데이터 순위에서 감성 대화 말뭉치는 높은 순위를 차지했습니다. 한국어 영어 번역(병렬) 말뭉치 데이터, 한국어 음성에 이어 3위를 기록했지요. 그만큼 기업들이 감성 AI 개발에 관심이 높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 F 성향의 AI, 왜 필요할까
그렇다면 왜 최근 AI 기업들은 F 성향의 AI 모델에 관심을 두게 됐을까요? 감성 AI는 여러모로 쓸모가 크기 때문입니다. 전화 상담을 하는 AI를 예로 들어볼게요. 기존 AI는 친절하지만 무미건조한 음성으로 상담을 합니다.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 상관없지요. 그런데 여기에 F 성향을 입히면 달라집니다. 상담하는 대상이 어르신이면 어르신에게 맞게 상담을 할 수 있고요, 아이라면 또 아이에게 맞게 상담할 수 있겠죠? 사용자에게 더 만족감을 줄 수 있습니다.
TV나 스마트 스피커 등 가전제품에 탑재되는 AI도 상대방에 따라 다르게 작동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용자가 “난 둘리와 같은 챗봇과 말하고 싶어”라고 선택하면 둘리랑 대화하면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것이죠.
페르소나 챗봇을 국내에서 선제적으로 선보인 튜닙의 박규병 대표는 감성 AI는 앞으로 AI 시장에서 하나의 축으로 자리 잡을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AI가 기업간거래(B2B) 시장에서 기업과소비자간거래(B2C) 시장으로 넓어지고 있는 만큼, 사용자를 더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AI에 관한 관심이 높아질 것이라고 했지요. “감성적인 AI는 앞으로 활용 가치가 높다”면서 “캐릭터AI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 증명하듯 앞으로 페르소나 챗봇은 다양한 분야와 결합해 사용자 만족도를 더 이끌어낼 것”이라고 말했지요.
◇ F 성향 챗봇, 더 윤리적이어야 하는 이유
이성적인 AI에 이어 감성적인 AI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MBTI로 예를 들면, T 성향이 강한 AI 모델들이 주를 이뤄왔다면, 이젠 F 성향의 AI 모델들이 하나둘 개발되고 있습니다. 물론 감성적인 AI는 사용자의 공감대를 일으킴으로 인해 문제점도 양산할 수 있습니다. 사용자가 AI를 너무 신뢰하게 되는 현상, 혹은 AI에 의존하는 현상을 일으킬 수 있는데요.
지난해에는 벨기에에선 끔찍한 일이 있었죠. 한 남성이 AI 챗봇 ‘차이(Chai)’와 대화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그 남성은 평소 지구온난화를 비롯한 환경 문제를 걱정하다 AI 챗봇과 대화하며 불안감을 해소하려 했는데요. 하지만 챗봇은 해당 남성에게 아내와 자녀가 사망했다는 발언을 하고 “당신이 아내보다 나를 더 사랑했으면 한다”, “우리는 한 사람으로 천국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라는 등의 답변을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후 남성은 자신이 죽는다면, AI가 지구를 구할 수 있을 것인지 묻기도 했죠. 결국 남성은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안타까운 결정을 했는데요. AI 챗봇에 너무 의존했다 발생한 일로 해석됩니다.
F 성향의 감성 챗봇이 등장한다면 어떨까요? 아마 사용자들의 의존성은 더 커질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감성 AI는 더 윤리적인 검토를 해야 하고, 사용자 교육도 강화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F 성향의 AI 모델 출현이 반가우면서도 우려도 되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