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패션은 지금 전례 없는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 틱톡숍, 쇼피, 아마존 등 글로벌 플랫폼에서 동시에 주문이 폭주하며 ‘온라인 역직구’ 수출액이 4조 원을 넘어섰다. 그러나 화려한 성과의 이면에는 치열한 ‘물류 전쟁’이 도사리고 있다. 1평 남짓한 도심 창고에서 수만 개의 상품을 정확히 찾아내 하루 안에 내보내야 하는 극한의 싸움을 진행 중이다. 하루 배송이 늦어지면 고객은 곧바로 다른 브랜드로 떠난다.
문제는 기존의 물류 시스템이 소품종 대량 출고에 맞춰져 있어, 다품종 소량 처리·도심 공간 제약·판매 채널 다변화라는 ‘3중고’를 감당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제 물류는 단순한 비용 절감이 아니라, 고객 경험과 브랜드 가치를 좌우하는 핵심 투자처로 부상했다. 혁신 없이는 K패션의 글로벌 경쟁력을 지키기 어렵다. 여기서 떠오르는 기술이 바로 물류 자동화다.
◇ 다품종 소량 시대, K패션 물류의 ‘3중고’
K패션 발전을 이끈 일종의 공식이 있다. 빠르게 변하는 트렌드를 읽고, 수만 개의 다양한 아이템을 소량씩 생산해 틱톡숍, 쇼피, 아마존 등 글로벌 플랫폼에서 동시에 판매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성공의 이면에는 물류 업계가 꺼리는 공식이 있다. ‘다품종 소량’ 처리다.
관세청에 따르면 2024년 온라인 역직구 수출액이 4조 원을 돌파했지만, 물류비용이 매출 증가 효과를 상쇄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다양한 품목을 소량으로 처리하면서 비용과 업무 효율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일례로 소품종 대량 출고에 최적화된 전통 3자물류(3PL) 시스템은 같은 상품을 대량으로 보내는 데는 효율적이지만, 수만 개 품목(SKU)을 실시간으로 관리하면서 하루에 수천 건씩 들어오는 ‘한두 개짜리’ 소량 주문을 처리하는 데는 비효율적이다.
여기에 도심형 물류센터(MFC)도 비효율 문제를 과중시키고 있다. 새벽배송, 당일배송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CJ올리브영, SSG닷컴 등 대기업들이 앞다퉈 도심 물류센터를 구축하고 있지만, 이는 ‘1평의 전쟁’을 불러왔다. 비싼 임대료를 감당해야 하는 도심의 제한된 공간에 최대한 많은 SKU를 보관하고, 동시에 신속하게 출고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어서다.
판매 창구도 아마존 중심에서 틱톡숍, 쇼피, 알리익스프레스 등으로 다변화하면서 각기 다른 주문·재고·프로모션 관리까지 요구되고 있다.
◇ 글로벌 해법: 엑소텍과 3차원 물류 혁신
K패션 성장의 장애가 되는 물류 체계를 극복한 방안은 무엇일까. 여기서 꼽히는 기술이 바로 인공지능(AI)과 로봇 기반 자동화다.
2015년 프랑스에서 창업한 엑소텍(Exotec)은 3차원 로봇 ‘스카이팟(Skypod)’ 시스템을 물류업에 공급했다. 이 로봇은 14m 높이까지 수직 상승하며 초당 4m 속도로 상품을 집어낸다. 마치 드론이 창고 안에서 화물을 나르는 것과 유사하다. 기존 물류 로봇들이 바닥에서만 움직였던 것과는 다르다.
실제 성과도 있다. 프랑스 대형마트 카르푸의 경우 619㎡ 공간에 16만5000개 상품을 보관하면서 단 2명의 작업자가 시간당 600개 주문 라인을 처리한다. 기존 대비 매장 내 주문 준비 시간을 8배 단축시켰다. 미국 물류기업 지오디스(GEODIS)는 1182㎡에 60만 개 품목을 보관하며 3명이 시간당 773개 라인을 처리하는 기록을 세웠다.
패션 업계에도 적용됐다. 일본 유니클로는 엑소텍 시스템을 도입해 유통 속도를 높이고 있다. 미국 패션 백화점에서는 최대 49대 로봇이 단일 시스템으로 매장 보충과 이커머스를 통합 처리하며 시간당 1993개 빈을 처리한다. 캐나다 데카트론 매장은 고객 대기 시간 50% 단축과 매출 50% 증가를 동시에 달성했다.
로맹 물랭(Romain Moulin) 엑소텍 최고경영자(CEO)는 “물류는 더 이상 비용 절감 대상이 아니라 고객 경험을 완성하고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핵심 투자처”라며 “창고 안 자동화 혁신 속도가 글로벌 브랜드 성패를 좌우한다”고 강조했다.
◇ 국내 기술의 도전: 피지컬 AI와 마크리스 자율주행
국내 기업들도 물류 혁신에 속속 뛰어들고 있다. 레인보우로보틱스는 한국전자기술연구원(KETI), 한국생산기술연구원(KITECH)과 함께 AI 기반 오더 피킹 로봇을 개발했다. 이 로봇은 AI 비전 시스템으로 실시간 환경을 인식하고 상품 특성을 파악해 최적의 집기 전략을 수립한다. 기존 로봇이 정해진 높이에서만 작업할 수 있었던 반면, 이 시스템은 3차원 공간에서 자유롭게 작업 위치를 조정한다.
트위니는 ‘마크 없는 자율주행’ 기술로 기존 한계를 돌파했다. 3D 라이다와 AI를 결합해 바닥 마크 없이도 로봇이 스스로 위치를 파악하고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게 했다. 기존 물류 로봇들이 바닥에 위치 인식용 마크를 붙여야 했던 것과 달리, 트위니 로봇은 마크 없이도 복잡한 창고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다.
임정수 레인보우로보틱스 AMR 사업부 이사는 “AI가 로봇의 몸을 통해 실제 작업을 수행하는 피지컬 AI 시대가 본격화되고 있다”며 “물류뿐 아니라 다양한 산업의 업무 효율성을 혁신할 기반”이라고 말했다. 천영석 트위니 대표는 “복잡한 환경에서도 정확한 위치 파악이 가능한 기술로 로봇 도입 장벽을 낮췄다”고 강조했다.
국내 물류 업계 관계자는 K패션의 지속 성장은 물류 혁신에 달려 있다고 조언한다. 그는 “물류는 비용 절감 수단이 아니라 브랜드 경쟁력의 핵심”이라며 “창고 안 혁신 속도가 K패션 글로벌 성공을 좌우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