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산을 들여와 (우리) 상표만 붙인다고 해서 소버린 AI가 되는 것은 아니다.”
KT를 겨냥한 김유원 네이버클라우드 대표의 말이다. 그는 23일 서울 강남구 네이버스퀘어 역삼점에서 열린 테크밋업 행사에서 KT가 마이크로소프트와 협력해 ‘한국형 AI’를 추진 중인 것을 두고 돌직구를 날렸다. “외국 기술을 들여와서 우리 상표를 붙여 우리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라고 생각한다”며 “미국 대통령의 지시로 국가 운명이 좌우되는 것을 소버린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했다. 또 “네이버도 엔비디아 등 글로벌 빅테크와 적극 협력하고 있지만 한국에서의 소버린은 우리나라에서 안정적으로 AI를 만들고 공급해 국내 사회와 안보, 보안을 지키는 것이 핵심”이라고 했다.
이번 발언은 KT와 마이크로소프트의 협력에 관한 질문에서 나왔지만, 실제로는 여러 기업을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KT뿐 아니라 글로벌 기업과 협력하는 사례는 많아서다. 대표 기업이 카카오다. 카카오는 챗GPT 개발사인 오픈AI와 협력을 이어가고 있다. 정신아 카카오 대표는 2월 4일 서울 중구 더 프라자호텔에서 열린 ‘카카오 미디어데이’에서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와 양사 협력을 발표하며 “오픈AI의 응용애플리케이션인터페이스(API) 등을 카나나 서비스를 포함한 다양한 AI 프로젝트 런칭에 이용하겠다”고 밝혔다. 샘 올트먼 오픈AI CEO는 “현재 (카카오와) 미션과 비전을 모두 공유하고 있다”며 “카카오가 정답을 찾아가며 새로운 시도를 가능케 할 여정을 응원해달라”고 당부했다.
이번 김 대표의 발언을 두고 AI 업계에선 찬반의 의견이 오갔다. 찬성 쪽에선 자체 개발한 기술을 오픈 모델로 공개하는 네이버를 응원하는 이들이 많았다. K대 AI대학원 교수는 “LG AI연구원이 엑사원을 오픈하면서 먼저 오픈소스 생태계에 기여했고 네이버가 그 길을 잘 이어갔다”며 “일부 상업용으로 오픈한 것은 좋은 자세”라고 평가했다. 한 AI 스타트업 대표는 “가슴으로는 김유원 네이버클라우드 대표의 말이 100% 맞지만, 머리로는 김영섭 KT 대표의 전략이 현명하다고 본다”며 “네이버클라우드의 접근이 맞다고 보지만 많은 어려움이 따를 것”이라고 염려했다.
하지만 비난의 목소리도 있었다. 해외와 협력하는 기업을 두고 소버린 AI가 아니라고 비난한 것은 시대에 뒤처진 발언이란 지적이다. 구글 출신 엔지니어는 “네이버를 비롯해 한국 정부는 왜 외국 기업과 경쟁하려고만 하는지 모르겠다”며 “협력하고 상생하는 것이 오히려 AI에 뒤처지지 않는 길”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AI 스타트업 대표는 “네이버가 늘 자랑하는 것은 세계에서 3번째로 초거대 AI를 만들었다는 것, 그리고 독거노인을 위한 클로바 케어콜 두 개”라며 “반대로 말하면 그 2개밖에 큰 성과가 없다는 것을 뜻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 오픈AI나 구글, 딥시크 등 해외 기업만 봐도 엄청난 성과가 많고 세계 3번째로 초거대 AI를 만들었다는 네이버는 순위가 많이 밀린 상태”라며 “이들 기업과 협력해 빠르게 AI 발전을 이루려는 기업을 네이버가 욕할 자격은 없다”고 했다.
네이버가 소버린 AI를 강조하는 이유는 기업의 생존을 위한 전략이란 해석도 있다. 네이버클라우드는 그동안 공공 클라우드 시장에서 높은 점유율을 이어 왔다. 외산 기업들이 들어오지 못하는 시장에서 수익을 창출했다. AI도 마찬가지다. 기업보단 공공시장에서 하이퍼클로바X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이 시장을 사수하는 것이 네이버엔 생존할 수 있는 길일 수 있다.
실제로 해외 클라우드와 기술을 사용해도 되는 민간 시장에선 네이버를 사용하는 경우가 적다. 클라우드는 마이크로소프트 ‘애저’와 AWS, 구글 클라우드를 선호하는 경향이 짙다. AI 역시 오픈AI를 이용하거나 AWS의 아마존 베드록을 이용해 여러 LLM을 비교한 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한 법무법인 AI 담당자는 “비교했을 때 아직 기술 차이가 크다”며 “굳이 네이버를 선택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AI에이전트 사업을 전개하는 한 기업의 AI 팀장은 “우리가 업무를 할 때 한글과컴퓨터 제품을 사용하지 않고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를 사용한다고 애국자가 아니라고 비난하진 않는다”면서 “기업들은 고객을 위한 서비스를 제공하므로 더 좋은 대형언어모델(LLM)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네이버에서도 열심히 하고 있지만 현재 기술력 차이가 워낙 큰 편”이라고 덧붙였다. 한 교육업체 AI 개발팀장은 “네이버에서 무료로 활용할 수 있는 크레딧을 제공하고 있지만, 개발자들이 거부하고 있다”면서 “실제로 LLM 기반으로 모델을 만드는 이들은 기술력 차이가 크다고 얘기한다”고 밝혔다.
이 같은 상황에서 네이버는 해외 제품을 견제하기 위해 소버린을 강조한다는 것이 일부 관계자들의 의견이다. 실제로 현재 AWS,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등 빅테크 기업은 나란히 국내 클라우드 보안인증(CSAP) 하등급을 취득하며 공공시장 진입을 본격화하고 있다. 이에 김유원 네이버클라우드 대표는 불편한 기색을 표했다. “CSAP는 안보나 보안, 국가 운영을 위한 최소한의 보호장치”라며 “외국 CSP들이 CSPA 규정을 완화하라는 요구를 하고 있는데 이는 도를 넘은 요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 AI 기업 리더는 “김 대표는 이번 발표에서 해외 기업들과 KT 등 국내 기업들을 비판하며 경쟁력을 과시했다”며 “그만큼 지금 네이버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들은 네이버 행보에 찬반 의견을 내놨지만, 공통적으로 한 이야기는 있다. 기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정부에 손을 너무 손을 벌려선 안 된다는 것. 이들은 “지금 여러 회의에 참여했을 때 네이버는 정부 투자를 원하는 느낌이 강하다”면서 “정부에 너무 손을 벌리기보단 해외 투자 유치를 이끌어 기업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또 “지금 정부 투자가 필요한 기업과 분야는 따로 있다”며 “네이버가 너무 자사 입장만 고집해선 안 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