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의 ‘초거대 인공지능(AI) 경쟁력 강화 방안’이 시작부터 뭇매를 맞고 있다. 실제 AI 개발과 상용화를 추진하는 기업과 연구자의 의견이 반영되지 못한 ‘반쪽짜리 정책’이라는 비난이 속출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초거대 AI를 개발하고 운영하는 네이버 같은 기업의 이야기만 듣고 너무 단정적으로 내려버린 정책이 아니냐”는 비난도 제기됐다.
정부의 초거대 AI 경쟁력 강화 방안은 ‘디지털플랫폼정부’ 실현을 위한 일환으로 만들어졌다. 민간에서 초거대 AI를 쉽게 개발하고 활용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것이 골자다. 중소기업과 대학 등이 막대한 양의 컴퓨팅 자원이 필요한 초거대 AI를 개발할 수 있도록 대용량 컴퓨팅 자원을 지원하고, 양질의 텍스트 데이터를 확충한다. 또 법률, 의료, 심리상담, 문화・예술, 학술・연구 등 민간 전문영역에 초거대 AI를 접목하고, 행정·공공기관의 업무와 대민서비스에도 초거대 AI 기반 응용서비스 개발 등을 추진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이 사업에 올해만 약 3910억 원의 예산을 투입하기로 했다.
◇“네이버 얘기만 들은 정책 같다”… 수요자 불만 제기
과기정통부는 이 사안을 지난 14일 정부서울청사 본관 브리핑실에서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 개인정보보호위원회와 공동으로 발표했다. 하지만 발표 이후 AI 실무에서 종사하는 일부 연구진과 개발자 사이에서는 사업 주체인 수요자의 이야기가 크게 반영되지 않은 정책이라는 비난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해당 사업으로 초거대 AI를 만들고 서비스를 이용하는 수요자의 얘기보단 초거대 AI 서비스의 공급사 이야기만 비중 있게 듣고 결정한 사안이라는 것이다. 정부출연연구기관 소속의 AI 연구자는 “사실 AI 개발과 사용에 초거대 모델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라며 “초거대 개발을 지원하거나 정부가 그 모델을 만든다 치더라도 GPT 등 이미 실효성을 인정받고 많은 기업과 연구자들이 사용하는 모델보다 경쟁력이 있을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결정은 네이버와 같은 초거대 AI를 공급하는 기업이 이야기만 비중 있게 듣고 결정한 내용 같아 아쉽다”며 “실제 서비스에 초거대 모델을 녹여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고 덧붙였다.
초거대 AI는 막대한 양의 컴퓨팅 자원을 구축한 후 여기에 대규모 데이터를 학습시킨 AI 모델이다. 엄청나게 큰 컴퓨터를 만들고 여기에 AI 연산에 필요한 파라미터 구조를 대량으로 설계한 뒤 많은 양의 데이터를 학습시켰다고 보면 된다. 이렇게 구축된 대형 모델은 데이터를 학습하는 것만으로도 추론 값을 나타내는 등의 성과를 낸다. 최근 인기인 대화형 AI 모델 ‘챗GPT’도 거대언어모델인 ‘GPT-3.5’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초거대 AI는 한계가 있다. 엄청난 양의 컴퓨팅 자원을 토대로 막대한 데이터를 학습하므로 추가 학습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학습에만 큰 비용이 소모되고 이로 인한 전력 소모도 심각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속적인 성능 업데이트가 필요한 비즈니스 분야에선 초거대 AI 활용이 쉽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 이창수 올거나이즈 대표는 “초거대 AI는 수능처럼 평생 한 번 보는 중요한 시험을 위해 최대한 많은 공부를 한 후 다음부턴 이 지식을 계속 사용하는 모델”이라며 “추가 학습을 하려면 또 다른 중요한 시험을 보듯 최대한 많은 양의 공부를 해야 해 유동성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이어 “초거대 AI는 운영 유지보수에 한계가 있어 B2B(기업 간 비즈니스 거래) 서비스에 필수인 실시간성이 제한된다”고 밝혔다.
◇“韓 초거대 AI, 실제로 기업에서 사용할까” 의문
굳이 초거대 AI만 고집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지적도 있다. AI는 오픈소스 등을 통해 서로 연구성과를 공유하며 상생하는 문화가 있다. AI 모델을 만들기 위해 제작한 데이터나 소스 등이 많이 공유된다. 실제로 AI 개발 플랫폼인 ‘코랩’에서 고양이와 강아지 얼굴을 구분하는 모델을 만든다고 가정하면, 간단한 입력을 통해 이미 누군가 만든 약 3000장의 강아지, 고양이 데이터를 쉽게 다운받아 사용할 수 있다. 여기서 사용되는 개발 플랫폼이나 소스 등은 정부가 주도해 지원하지 않는다. 그런데 굳이 초거대 AI만 정부가 나서서 신경 쓰는지 모르겠다는 지적이다. 중소기업에 종사하는 AI 개발자는 “국내에서 개발했다고 하는 많은 AI 모델은 사실 구글, 오픈AI에서 공개한 내용을 토대로 만들어졌고, 초거대 AI 역시 마찬가지”라며 “정부가 한 해에 3000억 원 이상의 금액을 지원한다 해도 많은 개발자와 연구자는 구글과 오픈AI의 모델을 이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네이버가 개발한 초거대 AI ‘하이퍼클로바’만 봐도 알 수 있다. 하이퍼클로바는 한국어에 특화된 초거대 AI로 만들어졌지만, 국내에서조차 GPT보다 사용이 적다. 최근 오픈AI가 출시한 GPT-4의 경우 한국어 성능이 높아 굳이 한국어 특화 초거대 AI가 필요하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국내 AI 스타트업 대표는 “GPT의 경우 가격도 저렴한 편이고 사용 자체가 하이퍼클로바보다 편해 GPT 기반 서비스를 출시, 제공하고 있다”며 “서비스 사용자가 국내보다 해외가 더 많고 많은 기업이 내수시장만 보고 있지 않기 때문에 한국어 특화 모델이 굳이 필요할까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정부 주도 사업이 추후 클라우드처럼 일종의 ‘국내 기업 살리기’ 정책으로 이어져선 안 된다는 주장도 나왔다. 공공분야에선 국내 클라우드 경쟁력 강화를 위해 ‘네이버클라우드’나 ‘삼성SDS’ 등 국내 기업 위주의 제품만 이용하고 있는데 이 같은 상황이 초거대 AI에 이어져선 안 된다는 목소리다. 정부출연연구기관 소속 관계자는 “공공기관에서 국산 클라우드를 이용해 아마존웹서비스(AWS), 마이크로소프트 애저 등 글로벌 제품을 이용하는 곳과의 업무가 어려운 단점이 있다”며 “국내 기업 경쟁력 제고를 위한 의도는 좋지만, 실무를 하는 입장에선 불편함이 많다”고 지적했다. 이어 “초거대 AI 지원 사업이 클라우드처럼 돼선 안 된다”면서 “정부 지원 사업이 국내 AI 공급자와 수요자에게 확실한 이익이 되는지부터 국민 공감이 형성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