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업계 ‘뜨거운 감자’로 부상한 AI, 왜 반대하나
국내외 게임개발사들, 개발 전반에 생성형 AI 도입↑ 韓·美 등 개발자 615명 중 90% “워크플로서 AI 사용” 일러스트·성우 디지털 보이스 등 분야 AI 도입 ‘부정적’ “이용자 신뢰성 확보와 창작자 보호 등 과제 산적”
게임업계에 인공지능(AI)가 여러 분야서 활용되며 찬성의 목소리와 반대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최근 유비소프트의 AI NPC 도입 등 게임업계 내에서 AI를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계속해서 확인되고 있지만, 업계 내부의 반응은 부정적인 견해가 적지않게 나오는 것으로 파악된다.
◇ 게임업계 내에서 AI 도입 관측
21일(현지시간) ‘어쌔신 크리드(Assassins Creed)’와 ‘파 크라이(Far Cry)’ 등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게임개발사 유비소프트가 3분기 실적 발표를 통해 음성으로 제어하는 AI 게임 캐릭터를 공개했다. 이날 유비소프트에 따르면 ‘팀메이트(Teammates)’라는 연구 프로젝트를 통해 공개한 AI 비플레이어 캐릭터(NPC) 3명은 플레이어의 자연어 명령에 실시간으로 반응한다. 3명의 NPC는 △개인비서 역할의 ‘재스퍼(Jaspar)’ △전투 분대원 ‘파블로(Pablo)’와 △‘소피아(Sofia)’ 등이다. 재스퍼는 게임 설정을 수정하고 목표를 강조하며, 파블로와 소피아는 "왼쪽 판 위에 서" 같은 일상적 지시를 이해하고 수행한다는 것이 유비소프트의 설명이다.
앞서 스마일게이트는 ‘로스트아크 모바일’에 AI NPC ‘헤리리크’의 도입을 예고했다. 지난 13일부터 진행된 클로즈베타테스트(CBT)에서는 헤리리크를 포함한 AI 용병 시스템 등을 체험이 가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헤리리크는 게임 내 질문사항을 자유롭게 질문하고 답변을 받을 수 있는 챗봇 기능을 한다.
엔비디아와 국내 게임사가 협업해 게임내 AI 시스템을 도입하려는 움직임도 관측된다. 위메이드는 자사의 게임 ‘미르 5’에 AI 보스몬스터 ‘아스테리온’을 개발하고 있다. 플레이어의 전투 스타일, 패턴, 약점을 실시간으로 분석해 전술을 변화시키는 ‘적응형 AI’로 매번 새로운 전투 경험을 제공하여 PvE 콘텐츠의 반복 피로도를 낮추는 역할을 할 예정이다.
크래프톤은 지난달 30일, 서울 코엑스 K-POP 광장에서 엔비디아와 공동 개발한 AI 협업모델 CPC(Co-Playable Character)인 ‘PUBG 앨라이’를 공개했다. 엔비디아 에이스(ACE) 기술로 구축된 온디바이스 소형언어모델(On-device SLM)’을 기반으로, 게임이용자들과 상호작용 할 수 있다. 이강욱 크래프톤 AI 본부장은 이날 “대화를 통해 전략을 논의하고, 그에 맞춰 플레이 스타일을 바꾼다”면서 “이용자가 부탁하면 아이템을 찾아주고, 기절했을 때 도와준다”고 설명했다. 이어 “파밍·교전·생존 중 어떤 행동을 취할지 스스로 판단하고 계획하며, 상황에 따라 전략을 유연하게 수정하고 보완한다”고 덧붙였다.
◇ 게임업계, AI 활용 늘지만 부정적 견해 많아
게임업계에서 생성형 AI 도입이 이미 주류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구글 클라우드가 미국·한국·북유럽 등 주요 지역의 게임 개발자 61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90%가 “이미 개발 워크플로우에 AI를 사용하고 있다”고 답했다. 97%는 “AI가 게임 산업 전반을 재편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반복 업무 자동화부터 코드·대사 생성, 플레이테스트 보조, 현지화 지원까지 실무 적용 범위도 넓어지고 있다. 특히 개발자들은 AI를 활용해 더 빠르게 프로토타입을 만들고, NPC의 행동을 정교하게 설계하며, 플레이어 행동에 반응하는 ‘살아있는 게임 세계’를 구현하는 데 도움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이처럼 생성형 AI가 게임 제작 효율을 끌어올리고 창작 가능성을 확장시키면서, 업계 전반에서 AI는 선택이 아닌 필수 도구로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일각에서는 부정적인 시선이 늘고 있다. 지난달 말 출시한 스마일게이트의 ‘카오스 제로 나이트메어(이하 카제나)’에서는 일부 아트 리소스에 AI를 사용해 논란이 된 바 있다. 캐릭터 일러스트나 배경 등에서 손가락, 배경의 구도, 소품의 디테일 등이 중구난방이거나 비정상적인 형태를 띠는 등 AI 생성 이미지의 특징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에 김탁곤 아트 실장은 해당 의혹에 대해 “AI 사용 때문이 아니라 기획안과 달라진 설정이 반영되지 않았거나, 일러스트 검수가 미흡해서 발생한 일”이라고 해명했지만, 논란은 여전하다. 특히 AI가 일러스트 부문에서 활용되는 점에 대해 사전 미디어 프리뷰에서 “다른 게임의 5~10배에 달하는 아트 리소스를 쏟아부었다”면서 “양과 퀄리티로 승부하겠다”고 호언장담한 바 있어 ‘이용자 기만’이라는 인식을 심어줬다. 해당 게임의 커뮤니티에서는 ‘아트 퀄리티와 독창성’이라는 이용자 기대치와 ‘AI를 활용한 리소스·시간·비용 절감’의 상충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이용자뿐 아니라 창작자와 노동자 사이에서도 생성형 AI를 둘러싼 부정적 시각이 적지 않다. 지난 1월 게임개발자회의(GDC)가 실시한 ‘State of the Game Industry’ 보고서에 따르면, 개발자의 30%가 생성형 AI가 게임 산업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답했다. 전년 대비 12%포인트나 늘어난 수치다. 지적재산권 침해 가능성, 게임 품질 저하, 일자리 대체 등이 주요 우려로 꼽혔다.
현장 반발도 이어지고 있다. 미국 배우조합(SAG-AFTRA) 회원들은 지난 7월 AI 관련 보호 조항이 포함된 새로운 ‘인터랙티브 미디어 협약’을 비준했다. 성우의 음성·외형을 본떠 만든 디지털 복제본을 사용할 때에는 사전 동의를 받도록 하고, 창작 과정에서 AI를 어떤 방식으로 활용했는지 모든 연기자·예술 노동자(performers)에게 명확히 알리도록 한 규정이 핵심이다.
게임 유통 플랫폼 ‘스팀(Steam)’을 운영하는 밸브도 같은 흐름에 발맞추고 있다. 밸브는 개발자들에게 게임 내에서 AI를 어떻게 사용했는지 반드시 공개하도록 의무화했다. 사전에 생성한 AI 콘텐츠인지, 플레이 중 실시간으로 생성되는 AI 요소인지, 관련 안전장치는 갖췄는지 등을 명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소비자가 보다 정확한 정보를 기반으로 구매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 ‘검증 중’인 창작 생태계… “신뢰와 보호 앞세워야”
AI는 이미 게임 개발의 효율성과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핵심 기술로 자리 잡았지만, 창작 생태계와 노동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여전히 ‘검증 중’이다. 기술 도입 속도가 빨라질수록 이용자 신뢰 확보와 창작자 보호라는 또 다른 숙제가 함께 부각되고 있는 이유다. 일러스트 논란과 성우 보호 요구, 개발자들의 우려 역시 결국 ‘어떻게 책임 있게 AI를 쓰느냐’라는 문제로 귀결된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결국 게임업계가 AI 시대에 마주한 핵심 문제는 ‘AI를 도입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투명성을 확보하고 어떤 기준으로 창작자와 소비자의 신뢰를 지킬 것인가’로 분석된다. 업계 한 관계자는 “기술 혁신과 창작 생태계 보호의 균형을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AI가 게임 산업의 성장 동력이 될지, 새로운 갈등 요인이 될지가 갈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AI가 산업 전반에 빠르게 스며드는 흐름은 되돌리기 어렵다”며 “저작권·노동권·품질 관리 전반에서 현실적인 안전장치를 제도적으로 보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