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추얼 트윈 라이프⑦] 침수·화재·감염병… 도시 재난, 가상 도시서 대비

한국·싱가포르, 침수 예측부터 도시 설계까지 버추얼 트윈 활용 우한 음압병동 10일 완공… “가상 검증, 현실 실행” 정운성 다쏘시스템코리아 대표이사 “현실 그대로 구현이 핵심”

2025-11-21     김동원 기자

[편집자 주] 아침에 신은 운동화, 출근길에 탄 자동차, 집에 새로 들인 소파. 이 모든 제품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버추얼 트윈(Virtual Twin)’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버추얼 트윈은 실제 제품을 가상 환경에 그대로 구현한 기술입니다. 전 세계 주요 제조사들이 활용하고 있지만, B2B 기술의 특성상 일반 대중에게는 생소합니다. 알려지지 않았을 뿐, 이미 우리 일상 곳곳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THE AI는 ‘버추얼 트윈 라이프’ 시리즈를 통해 보이지 않던 이 기술을 조명합니다. 신발부터 심장까지, 분자부터 도시까지. 당신이 몰랐던 버추얼 트윈의 세계로 안내합니다.

다쏘시스템의 3D익스피리언스 플랫폼에서 도시 계획 프로젝트를 시뮬레이션하는 모습. 지속가능성, 탄소 배출 등 다양한 데이터를 통합 관리할 수 있다. /다쏘시스템 유튜브 캡처

집중호우가 쏟아진다. 도로는 순식간에 물에 잠기고, 지하주차장으로 물이 밀려든다. 지난 여름 한국 곳곳에서 벌어진 일이다. 매년 반복되는 침수 피해. 그런데 이런 재난을 미리 막을 수는 없을까? 답은 가상 도시에 있다.

버추얼 트윈 기술은 이제 도시 전체를 대상으로 한다. 신발 한 켤레에서 시작해 자동차, 비행기, 공장을 거쳐 도시 단위로 확장된 것이다. 분자부터 도시까지. 다쏘시스템이 강조하는 버추얼 트윈의 확장성이 현실이 됐다.

◇ 침수 예측부터 재난 대응까지… 가상으로 구현하는 스마트시티

“한국에서도 최근 여름철 집중호우로 침수 피해가 늘면서 많은 지자체가 침수를 예측하고 방지하기 위한 스마트시티 솔루션을 도입하고 있습니다.” 김현진 다쏘시스템코리아 3D익스피리언스센터장의 설명이다.

버추얼 트윈으로 구현된 가상 도시는 실제 도시의 지형, 건물, 도로, 하천을 그대로 담는다. 여기에 강수량 데이터를 입력하면 물이 어디로 흐르고, 어느 지역이 먼저 침수되는지 시뮬레이션할 수 있다.

싱가포르는 이미 도시 전체를 버추얼 트윈으로 구현해 활용 중이다. 횡단보도를 추가했을 때 시민들의 접근성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육교를 추가해야 하는지 등을 가상 환경에서 먼저 테스트한다. 걷기 좋은 도시로 유명한 싱가포르의 비결이다.

파리 라 데팡스 지역에서는 재난 대응 시뮬레이션이 진행됐다. 프랑스의 주요 기업들이 모여 있는 이 지역에서 화재가 발생하거나 유해가스가 유출될 경우를 대비해 다쏘시스템은 이 지역을 버추얼 트윈으로 구현했다.

파리 라 데팡스 지역에서 재난 대응 시뮬레이션을 하는 모습. 이 지역에서 화재가 발생하거나 유해가스가 유출될 경우를 대비해 다쏘시스템은 이 지역을 버추얼 트윈으로 구현했다. /김동원 기자

가상 환경에서는 여름 오후 2시에 화재가 발생했을 때, 바람이 어느 방향으로 불고, 연기와 가스가 어떻게 확산되는지 정밀하게 예측할 수 있다. 시민들의 대피 동선은 어떻게 설계해야 하는지, 어느 지역을 우선 통제해야 하는지도 사전에 파악된다. 김 센터장은 “실제로 불을 내면서 대비책을 만들 수는 없지만 가상 환경 안에서 다양한 시나리오로 시뮬레이션해 미리 대응책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도시 계획에서 시행착오는 곧 막대한 비용이다. 도로를 뚫고, 건물을 짓고, 인프라를 설치한 뒤 문제가 발견되면 되돌리기 어렵다. 버추얼 트윈은 이런 리스크를 제거한다. 가상에서 수백 가지 시나리오를 테스트하고, 최적의 방안을 찾아낸 뒤 현실에 적용하는 것이다.

◇ 우한 음압병동 10일 완공, 위기 속 빛난 버추얼 트윈

2020년 초 코로나19가 중국 우한에서 확산되자 중국 정부는 긴급하게 음압병동을 짓기로 결정했다. 문제는 시간이었다. 감염병 확산 속도를 고려하면 빠르게 완공해야 했다.

다쏘시스템의 버추얼 트윈 기술이 투입됐다. 먼저 가상 환경에서 병실 설계안 4가지를 만들고, 각각의 환기 효율을 시뮬레이션했다. 환자가 침대에 누워 있을 때 오염된 공기가 어떻게 배출되는지, 환기 시설을 어디에 설치해야 가장 효율적인지 비교 분석했다.

동시에 오염된 공기가 외부로 배출될 때 주변 민가에 피해를 주지 않는지도 검증했다. 레고 블록처럼 쌓아 올리는 모듈러 건축 방식으로 설계해 신속한 시공이 가능하도록 했다.

코로나19가 중국 우한에서 확산되자 중국 정부는 버추얼 트윈을 활용해 음압병동을 설계했다. 김현진 다쏘시스템코리아 3D익스피리언스센터장은 “코로나 당시 많은 기업 임원들이 이 사례를 보러 센터에 방문했다”고 밝혔다. /김동원 기자

음압병동은 10일 만에 완공됐다. 우한시 정부는 다쏘시스템에 공식 감사 공문을 보냈다. 가상에서 모든 것을 검증하고, 현실에서는 완벽하게 실행하는 방식이 입증된 사례다.

김 센터장은 “코로나 당시 많은 기업 임원들이 이 사례를 보러 센터에 방문했다”며 “기업들이 디지털 혁신의 필요성을 절감했던 시기”라고 회상했다.

버추얼 트윈이 구현하는 것은 단순한 3D 지도가 아니다. 건물의 높이, 재질, 바람의 방향, 기온, 습도 등 모든 변수가 반영된다. 현실과 똑같은 물리 법칙이 적용되는 완전한 가상 공간인 것이다.

◇ 확장되는 버추얼 트윈의 세계, 인류의 안전과 행복이 목표

다쏘시스템은 40년 전 기계 부품 설계에서 시작했다. 비행기 전체로, 그다음 도시로 확장했다. 이제는 분자 단위부터 도시 단위까지 모두 버추얼 트윈으로 구현할 수 있다.

김 센터장은 “작게는 분자 단위까지, 크게는 도시 단위까지 모델링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신소재 개발을 위한 분자 시뮬레이션부터 도시 전체의 재난 대응까지, 버추얼 트윈의 활용 범위는 끝없이 넓어지고 있다.

버추얼 트윈이 분자부터 도시까지 적용할 수 있는 비결은 현실과 똑같은 가상 공간에 있다. 정운성 다쏘시스템코리아 대표이사는 “버추얼 트윈은 단순히 보기 좋은 3D 모델이 아니라 정확하고 정교한 데이터 기반으로 현실을 그대로 구현한다”며 “이것이 실제 현장에서 활용 가능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정운성 다쏘시스템코리아 대표이사는 “가상에서 모든 테스트를 완벽히 끝내고, 실물은 한 번만 만들어 바로 시장에 내놓는 것이 버추얼 트윈이 추구하는 방향”이라며 “리얼(현실)과 버추얼(가상)의 간극을 제로로 만드는 것이 우리 철학”이라고 강조했다. /김동원 기자

그는 자동차를 예로 들었다. “사실적으로 구현한 3D 자동차 모델은 마케팅용으로 가치가 있지만 제조업이 진짜로 원하는 건 충돌 시뮬레이션, 취약 부위 분석, 공기역학 기반 연비 개선까지 포함된 데이터”라고 말했다.

다쏘시스템이 추구하는 방향은 명확하다. 그는 “가상에서 모든 테스트를 완벽히 끝내고, 실물은 한 번만 만들어 바로 시장에 내놓는 것”이라며 “리얼(현실)과 버추얼(가상)의 간극을 제로로 만드는 것이 우리 철학”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이사는 버추얼 트윈 기술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인류의 안전과 행복’이라고 밝혔다. 제조업 효율화에서 출발했지만, 이제는 도시를 더 안전하고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데 기여하는 등 인류를 위한 방향으로 솔루션을 확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후변화로 인해 집중호우, 가뭄, 폭설 등이 예상된다. 하지만 가상 도시에서 미리 시뮬레이션하고 대비한 지역이라면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 보이지 않는 기술이 만드는 안전한 도시. 버추얼 트윈의 미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