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마니쉬 쿠마 솔리드웍스 CEO “AI 인프라 숨은 주역 한국, 설계 단계가 승부처”

반도체 제조·테스팅·에너지까지… 한국이 AI 인프라 생태계 핵심 AI 아우라로 대화하듯 설계, 에러 해결·시뮬레이션도 자연어로 가능 설계 인텐트 자동 캡처로 지식 전승 “AI는 생산성 향상 도구”

2025-11-20     김동원 기자
마니쉬 쿠마 솔리드웍스 CEO는 ‘AI 인프라의 인프라’를 만드는 한국 제조업에 스마트 제조 접근이 특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동원 기자

“반도체부터 반도체를 만드는 기계, 반도체를 연결하는 기계, 반도체를 테스팅하는 기계, 반도체에 전력을 공급하는 기계까지 이 모든 것이 한국에 있습니다.”

마니쉬 쿠마 솔리드웍스 최고경영자(CEO)는 20일 서울 삼성동 다쏘시스템코리아 본사에서 가진 한국 기자단과의 인터뷰에서 AI 시대 한국 제조업의 위상을 높게 평가했다. AI 기술 발전을 위한 터전이 한국에서 발전하고 있다고 보았다.

그 이유는 AI 스케일 경쟁에 있다. AI 기술이 발전하면서 이를 뒷받침할 인프라와 에너지, 또 이를 활용할 로봇의 수요가 폭증하고 있다. 문제는 단순히 공장을 늘리는 것만으로는 이 수요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쿠마 CEO는 그 해법으로 ‘3D익스피리언스 플랫폼을 통한 스마트 제조’를 제시했다. 설계 단계에서 미리 문제를 발견해 생산 비용을 줄이는 방식이다.

그가 이번 한국 방문에서 효성중공업, 테스, 제너셈, 센서뷰 등을 만났다고 전했다. 이들은 반도체 제조 장비, 데이터센터 전력 인프라, 수소 저장 장비를 만드는 기업이다. 쿠마 CEO는 이런 ‘AI 인프라의 인프라’를 만드는 한국 제조업에 스마트 제조 접근이 특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솔리드웍스는 다쏘시스템의 3D CAD 소프트웨어 브랜드다. 전 세계 800만 명의 사용자를 보유하고 있다. 올해로 창립 30주년을 맞았다.

◇ 한국 제조업, AI 인프라의 숨은 주역

쿠마 CEO에 따르면, 한국 제조업은 AI 인프라 생태계에서 막중한 역할을 하고 있다. 효성중공업은 AI 데이터센터에 전력을 공급하는 대형 트랜스포머를 만든다. 테스와 제너셈은 반도체 제조 장비를, 센서뷰는 반도체 테스팅과 커넥팅 장비를 생산한다. 동화인텍은 천연가스 액화와 수소 저장 장비를 만든다. 모두 AI 발전에 필요한 부분들이다.

쿠마 CEO는 “현재 많은 사람이 반도체만 AI 제약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며 “진짜 제약은 에너지 자체”라고 말했다. 이어 “그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는 핵심 기업들이 한국에 있다”고 평가했다.

마니쉬 쿠마 솔리드웍스 CEO는 “콘셉트 단계에서 결함을 찾으면 비용이 거의 없다”며 “하지만 생산 이후나 고객에게 전달된 뒤 발견되면 비용이 막대하게 늘어나므로 설계 단계를 중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동원 기자

그는 이러한 한국이 AI 인프라 수요를 감당하기 위한 복안이 무엇이냐는 본 기자의 질문에 ‘레프트 시프트’(Left Shift) 전략을 제시했다. 문제를 생산 이후가 아닌 설계 단계에서 발견하고 해결하는 접근법이다. “콘셉트 단계에서 결함을 찾으면 비용이 거의 없다”며 “하지만 생산 이후나 고객에게 전달된 뒤 발견되면 비용이 막대하게 늘어나므로 설계 단계를 중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다쏘시스템의 3D익스피리언스 플랫폼은 컨셉-설계-시뮬레이션-제조-생산-사용자 피드백까지 제품의 전체 라이프사이클을 하나로 연결한다. 설계자가 설계 단계에서 ‘이 설계가 생산 단계에서 어떤 비용을 발생시킬지’를 예측할 수 있다. 쿠마 CEO는 “디자이너가 설계하면서 만약 결함이 만들어진다면 생산 단계에서 어떤 비용이 발생할지 미리 예측한다”며 “그것을 다시 설계 프로세스로 돌려서 거기서 해결하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전략은 피지컬AI 등장 이후 유망 산업으로 평가되는 로보틱스 분야에서도 통한다. 쿠마 CEO는 “로봇을 만들 때는 기계, 전기, 시뮬레이션 문제가 복합적으로 발생한다”면서 “1인당 로봇 사용량 세계 1위인 한국에서는 로보틱스에 대한 접근법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이런 모든 역량을 갖춘 솔루션이 3D익스피리언스 플랫폼이기 때문에 거의 모든 로보틱스 회사가 우리 소프트웨어를 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현재 전 세계 로봇 프로젝트의 66%, 휴머노이드 프로젝트의 70%가 다쏘시스템의 솔리드웍스와 카티아를 사용하고 있다. 로봇 기업으로 유명한 보스턴 다이내믹스도 다쏘시스템의 고객사다.

◇ 설계 업무에 들어선 AI의 활약은?

솔리드웍스가 제시하는 스마트 제조의 핵심은 AI다. 쿠마 CEO는 이날 인터뷰에서 AI가 제조업에서 하는 세 가지 역할을 제시했다. 자동화(Automate), 지원(Assist), 공동 창작(Co-create)이다. “클릭 수와 시간을 줄이고, 다음 작업을 예측하며, 존재하지 않던 것을 함께 만들어낸다”고 설명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올해 초 출시한 ‘아우라’(Aura)다. 아우라는 솔리드웍스 사용자를 위한 대형언어모델(LLM) 기반 가상 컴패니언이다. 사용자가 일상 언어로 대화하듯 명령하면 복잡한 설계 작업을 수행한다.

쿠마 CEO는 “어셈블리에 ‘몇 개의 부품이 있나요?’, ‘어떤 재질을 사용하고 있나요?’라고 물어볼 수 있다”며 “특정 부품의 재질을 변경하고 싶으면 명령어를 몰라도 그냥 ‘이 재질을 저것으로 바꿔줘’라고 말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솔리드웍스에 적용된 생성형 AI 사례. 오른쪽을 보면 챗GPT와 대화하듯 AI와 설계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김동원 기자

그는 쿼드콥터 설계를 예로 들었다. “AI한테 쿼드콥터를 만들고 싶다고 말하면 필요한 모든 부품 리스트를 제공한다”며 “‘배터리를 배터리 시스템으로 교체해 줘. 배터리 관리 시스템과 커넥터도 포함해서’라고 말하면 수정사항을 모두 보존하면서 여러 버전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AI는 문제 해결에도 활용된다. 과거에는 복잡한 에러 메시지를 보고 전문가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이제는 AI가 에러를 분석해 ‘스케치 7이 모든 문제를 일으키고 있습니다’처럼 단계별 해결 방법을 제시한다.

시뮬레이션 설정도 간단해졌다. 쿠마 CEO는 “시뮬레이션 프로세스에서 시뮬레이션 스터디를 설정하는 것이 가장 복잡한 작업”이라며 “복잡한 설정 없이 ‘이 두 면에 압력을 가해줘’, ‘이 두 표면은 서로 접촉해 있어’라고 말하면 시뮬레이션이 실행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AI를 활용하면 시뮬레이션 지식이나 노하우가 없는 사람도 시뮬레이션을 실행할 수 있게 된다”고 덧붙였다.

솔리드웍스는 지난해 프랑스 AI 기업 미스트랄과 파트너십을 맺고 이런 기능들을 개발해 왔다. 미스트랄의 LLM이 사용자의 의도를 파악하고 명령 순서를 만들면, 솔리드웍스 애플리케이션이 실제 작업을 수행하는 방식이다.

솔리드웍스에 적용된 생성형 AI의 또다른 사례. /김동원 기자

◇ 숙련 인력 은퇴 시대, AI가 ‘지식 전승’ 도구로

AI 도입이 활발해지면서 또 다른 우려도 제기된다. 숙련된 엔지니어들이 은퇴한 뒤, AI에 의존하던 차세대 엔지니어들의 역량이 떨어질 수 있는 우려다. 쿠마 CEO는 이와 관련된 본 기자의 질문에 “보잉조차 겪고 있는 문제”라고 인정했다. 이어 “많은 회사에 숙련된 분들이 은퇴를 앞두고 있다”며 “이전 세대와 다음 세대 간에 접점이 있고 오버랩되는 부분이 있으면 지식을 보존하고 전승하기 편한데, 그렇지 않으면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 문제의 해법도 3D익스피리언스 플랫폼에 있다고 설명했다. 핵심은 ‘설계 인텐트’(design intent) 자동 캡처다. 설계 인텐트는 설계자가 어떤 의도로 특정 설계를 했는지에 대한 정보를 말한다.

쿠마 CEO는 “솔리드웍스 사용자가 만든 디자인을 보면 기본적으로 설계 인텐트가 캡처된다”며 “설계자가 어떤 구상을 해서 이것을 만들었는지를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즉, 설계 파일 자체에 ‘왜 이렇게 설계했는지’에 대한 지식이 저장되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플랫폼은 제품의 전체 라이프사이클 데이터를 보존한다. 쿠마 CEO는 “데이터가 만들어지고 엔지니어링, 시뮬레이션을 거쳐 제조, 생산되고 사용자 데이터까지, 그 데이터의 완벽한 전체 라이프사이클을 아우른다”고 설명했다. 제품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떤 문제가 있었고, 어떻게 해결했는지에 대한 모든 기록이 남는다는 의미다.

마니쉬 쿠마 솔리드웍스 CEO는 숙련된 엔지니어의 은퇴 문제의 해법도  3D익스피리언스 플랫폼에 있다고 밝혔다. /김동원 기자

비정형 데이터도 AI로 처리한다. 위키나 블로그, 문서 등에 산재한 지식을 미스트랄 AI의 LLM으로 정형 데이터로 변환하는 방식이다. 쿠마 CEO는 “비정형 데이터를 정형 데이터로 변환해서 결과물이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처리된다”고 부연했다.

그는 의료기기 산업을 예로 들었다. “유럽연합 의료기기 규제 PDF를 AI로 처리하면 완전한 요구사항 명세서로 변환된다”며 “과거에는 요구사항 명세 엔지니어가 한 줄 한 줄 작성해야 했다. 이런 작업에 몇 달씩 걸렸다”고 말했다. 규제 문서라는 비정형 데이터를 AI가 읽고 이해해서, 설계에 필요한 구체적인 요구사항으로 만들어주는 것이다.

쿠마 CEO는 이번 인터뷰에서 “AI는 엔지니어를 대체하지 않고 생산성을 향상시킨다”고 거듭 강조했다. “도면 작성, 어셈블리 구현, PDF 분석 같은 작업은 자원이 많이 드는 동시에 사람들이 즐거워하지 않는 일”이라며 “엔지니어들은 아이디어가 풍부하고, 머릿속 그림을 현실로 만드는 게 그들의 열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AI로 시간을 절약해서 그들이 잘하고 좋아하는 일에 몰두할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