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구기자] AI 디지털교과서 ‘교육자료’ 격하 이후 발행사들 외로운 싸움

“개발비 8000억 회수 불가” AI 디지털교과서 개발 업데이트 중단 발행사들, 1인 시위·헌법소원 등 총력

2025-11-14     구아현 기자

[편집자 주] 구아현 기자가 전하는 ‘AI 구기자’는 AI 소식을 쉽게 ‘구겨 넣자’라는 의미입니다. 마치 종이를 구겨 작게 만들 듯이 최신 인공지능(AI) 트렌드나 최신 이슈를 압축해서 전달합니다. 가장 뜨거운 AI 이슈를 선별해 꼭 알아야 할 소식과 직접 취재한 생생한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에듀테크 코리아 페어 2025’ 전시관 ‘한국교과서협회공동관’ 부스에서 교문사, 동아출판, 비상교육, 와이비엠, 지학사, 천재교육·교과서, 아이스크림미디어 등 업체의 교육자료로 지위가 변경된 AI 디지털교과서를 관람객들이 체험하고 있다. /구아현 기자

지난해부터 준비한 AI 디지털교과서(AIDT)가 올해 3월 학교에 도입됐지만 불과 4개월 만에 ‘교육자료’로 격하됐습니다. 이러한 여파로 주요 발행사들이 위기에 놓였고 구조조정의 피바람이 불기도 했습니다. 출판사 사장이 나서 매일 1인 시위를 하기도 했지만 결국 AI 디지털교과서는 사라지고 뒷감당은 출판사 몫이 됐습니다.

교육자료 격하 이후 출판사들은 조직을 다시 점검하고 손해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정부를 상대로한 법적 소송도 속도가 붙고 있습니다. AIDT 비상대책위원회를 교육자료로 격하시키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이 헌법에 위배된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했습니다.

◇ AI 디지털교과서에서 ‘교육자료’ 무슨 일이야?

지난 7월 10일 국회 교육위원회가 AI 디지털교과서의 법적 지위를 ‘교과서’에서 ‘교육자료’로 변경하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윤석열 정부에서 5300억 원을 투입해 추진한 핵심 교육정책이었지만 이재명 정부 이후 상황이 급변했습니다.

AI 디지털교과서는 지난 정부 교육부에서 AI 맞춤형 교육 혁신으로 세계 교육을 리드하겠다는 목표로 추진됐습니다. 지난해 9월 검정 심사를 마치고 76종의 AI 디지털교과서가 합격했습니다. 올해 3월부터 초등학교 3·4학년, 중학교 1학년, 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학, 영어, 정보 과목을 시작으로 교육을 도입해 2028년까지 대상 학년과 과목을 단계적으로 확대·실시할 계획이었습니다.

교육자료가 되면 학교에서 채택 의무가 없어집니다. 학교장 재량에 따라 학교운영위원회 심의를 거쳐 자율 선택하게 됩니다. 예산도 교육부가 아닌 학교 예산에서 부담해야 합니다. 이에 자연스럽게 채택률이 낮아질 것이고 그러면 업체들이 투자한 개발비를 회수하지 못하게 됩니다.

◇ “예산 없어 업데이트도 못해”

업체들이 투자한 개발비를 회수하지 못하면서 업데이트에 투입할 예산도 확보하지 못한 상황입니다. 발행사들은 한 교과서를 개발하기 위해 최소 40~80억 원을 투자했고, 총 개발비는 최대 8000억 원에 달합니다. 한 중학교 수학교사는 “1학기 초기 도입에서는 업데이트가 빨랐는데 AI 디지털교과서가 교육자료가 되면서 업체들이 업데이트를 더이상 해주고 있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교육자료로 격하되면서 법적 불확실성이 커지자 업체들은 추가 투자를 전면 중단했습니다. 현재 발행사들은 헌법소원과 행정소송, 민사소송 등 법적 대응에 나선 상태입니다. 한 업체 관계자는 “법적 공방이 어떻게 결론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추가로 개발 비용을 투입할 수 없다”며 “헌법소원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최소한의 유지보수만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교육자료로 된 AI 디지털교과서는 2학기 채택률이 19%로 급락했습니다. 1학기는 전국 1만1932개 초·중·고교 중 3870개교(32%)가 도입했는데, 2학기 개학 전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채택률이 더욱 떨어진 것입니다.

◇ 구조조정으로 개발 인력 대폭 감축

업체들이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하면서 업데이트를 담당할 개발 인력마저 크게 줄었습니다. 천재교과서는 디지털학습지사업부인 ‘밀크티’를 중심으로 700여명에 달하는 인력 감축을 단행했습니다. 비상교육도 AI 교과서 관련 사업부를 축소했고, 웅진씽크빅은 사업을 철회했습니다.

지난 10월 천재교과서, 비상교육, 동아출판, 아이스크림미디어, 씨마스, 엔이능률, 교문사 등 AI 교과서 주요 발행사와 한국교과서협회가 공동 기자담회를 개최해 “교육 현장의 목소리를 무시한 정치적 결정”이라며 “검증 없는 졸속 입법을 폐기해야 한다”고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이때 발행사들은 “AI 디지털교과서에 종사하는 인원은 모두 1만 명으로 추정한다”며 “개발비가 회수되지 않으면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다만 발행사들은 교육자료 격하 이전에 이미 구조조정을 한 차례 마친 이후이기에 더 이상의 인력 축소는 없었습니다. 한 발행사 관계자는 “교육자료 격하 이후 대규모의 구조조정이 이뤄지는 것 같지는 않다”면서 “다만 AI 교과서로의 손해와 전체적으로 교육 기업들이 어려워지면서 인력 효율화에 대한 부분은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한 발행사 대표는 “발행사들이 모여 매일 회의를 하면서 위기에 대응하고 있다”며 “AI 디지털교과서에 대한 관심을 지속적으로 가져줬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 법적 공방 “긴 싸움 될 것”

발행사들은 지난 10일 AIDT의 법적 지위를 교과서에서 교육자료로 격하시키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이 헌법에 위배된다며 천재교과서, 교사, 학생, 학부모 등 청구인 20인이 지난 7일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습니다.

위헌 주장 이유는 막대한 자원을 투입한 AIDT 발행사 영업에 심각한 차질을 초래해 생존을 위협하고, 학생의 맞춤형 교육 기회를 박탈하며, 사회적 약자의 교육평등권을 침해하고, 부모의 자녀교육권 및 교사의 수업권을 침해한다는 것입니다

업계 관계자는 “AIDT 비상대책위원회를 중심으로 소송이 진행되고 있다”며 “앞으로 긴 싸움이 될 것 같다”고 예상했습니다. 천재교과서 관계자는 “소송은 비상대책위를 통해 진행되고 있다”며 “각 출판사들이 모여 매일 회의를 하고 있고, 대응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 “앞으로 누가 정부 정책을 믿고 투자하나”

천재교육은 지난해 AI 디지털교과서 검정에서 총 27종(초등 영어-수학, 중학 영어-수학, 고등 영어-수학-정보)의 최다 합격을 기록했습니다. 초중고 수학, 영어 과목에서는 합격률 100%를 달성했습니다.

하지만 최다 합격이 오히려 최대 타격으로 돌아왔습니다. 전체 76종 중 27종을 차지한 천재교육은 다른 출판사보다 더 많은 개발비를 투자했습니다.올해 3월 처음 학교 현장에 도입된 지 4개월 만에 AIDT가 교과서 지위를 잃게 되자 가장 많은 투자 손실을 입게 된 것입니다.

박정과 천재교과서 대표는 “정부를 믿고 대규모 투자가 이뤄졌지만 정책 변경으로 인해 회수가 불가능하다”며 “단순한 재정 손실을 넘어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가 붕괴된 일”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업계는 “정부 정책을 믿고 개발에 나섰지만 정책 신뢰가 무너졌다”며 “앞으로 어떤 민간 기업이 정부 정책에 호응해 컨소시엄을 꾸리겠느냐”고 지적했습니다. 한 발행사 관계자는 “교육은 백년지대계라고 하는데, 정권이 바뀌자마자 수천억 원 규모의 국책사업이 하루아침에 폐기 수순을 밟는 것을 보며 정부 정책에 대한 민간의 신뢰는 완전히 무너졌다”고 토로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