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은 있는데 예산이 없다... AI 리터러시 교육 “제도 지원 절실”

전문가들 “AI 리터러시는 사고력 재구성” 명확한 방향 제시 구독료 걱정하는 학교, 노트북 들고 다니는 농촌 교사들의 현실 조명 AI 시대 기회 재분배 가능성과 도농 간 인프라 격차의 딜레마 극복 요구

2025-11-11     서재창 기자
K-AI 리터러시 미래교육포럼 현장. /서재창 기자

AI 리터러시 교육을 향한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법적 토대가 마련되고, 전문가들은 “AI 리터러시는 기술 활용이 아닌 사고력 재구성”이라는 명확한 방향성을 제시한다. 하지만 ‘K-AI 리터러시 미래교육포럼’에서 나온 현장의 목소리는 달랐다. 교사 중 10%만이 AI를 수업에 잘 활용하고, 구독료 예산 확보조차 불투명하며, 농어촌 학교는 낙후된 인프라로 머신러닝 수업조차 버거운 실정이다. 정책 비전과 교육 현장 사이, 그 간극을 메우기 위한 제도적 지원이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포럼을 가득 채웠다. 

◇ 교육 현장의 혼란 ‘AI를 막을 것인가, 활용할 것인가’

AI가 일상을 넘어 교육 현장에 빠르게 침투하면서 새로운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11일 조인철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주최로 열린 ‘K-AI 리터러시 미래교육포럼’은 정책 담론이 아닌 현장의 목소리로 가득했다. AI 리터러시는 읽기, 쓰기와 같은 기본 문해력에 비견될 정도로 필수적인 역량이 됐다. 이날 포럼 참석자들은 “AI 리터러시는 기술 활용이 아닌 사고력 재구성”이라는 데 공감하며, 정책과 현실 사이의 골을 메우기 위한 제도 지원을 한 목소리로 촉구했다. 

조인철 의원은 개회사에서 “AI를 쓸 수 있는 사람과 쓸 수 없는 사람의 격차는 큰 문제”라고 말했다. 이 문장은 현재 대한민국 교육이 직면한 핵심 과제를 압축한다. AI 시대의 기술 빈부 격차는 기술 접근성 문제를 넘어 사고력, 경쟁력, 나아가 생존 능력의 차이로 이어진다. 발제자로 참석한 유재연 한양대학교 교수(대통령 직속 국가AI전략위원회 사회분과장)는 “과거 모든 기술 혁신 시기마다 양극화가 벌어졌는데, AI 시대에는 이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 하나의 쟁점은 AI 활용에 대한 가이드라인 부재다. 최근 연세대학교에서 비대면 시험에서 학생들이 AI를 활용했다고 인정한 사건은 교육 현장의 혼란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처럼, 학생들은 이미 AI를 일상적으로 사용하지만, 정작 교육 시스템은 이를 어떻게 평가하고 가르쳐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유재연 교수는 “기술을 막기보다 올바른 활용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어른들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교실과 가정에 이미 깊숙이 들어온 AI를 어떻게 교육에 녹여낼 것인가’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하면 격차는 벌어질 수밖에 없다. 

이날 AI 리터러시 교육 방향성에 대한 전문가들의 제안은 명확했다. 기술 활용 능력이 아닌 사고력 재구성이 핵심이라는 것이다. 유재연 교수는 위키피디아 사례를 들며 정보 생산과 소비 방식의 변화를 설명했다. 과거에는 위키피디아를 학술 자료로 인용하는 것이 금기였지만, 현재는 일부 학술지에서 허용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유 교수는 인간에게 한정된 자원인 시간 안에서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 현대 사회의 흐름이며, AI는 이를 가능하게 하는 도구임을 강조했다. 

뤼튼테크놀로지스(이하 뤼튼) 이세영 대표는 전 국민에게 AI 리터러시 교육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이 대표는 2000년대 인터넷 혁신 시기의 성공 모델을 예로 들었다. 김대중 정부의 정보화 3대 정책, 즉 국가 인프라 확충, 벤처 기업 지원, 전 국민 정보화 교육이 ICT 강국의 토대가 됐다는 것이다. 이에 뤼튼은 현재 월간 700만 명이 사용하는 무료 AI 서비스를 제공하며, 시니어부터 청소년까지 맞춤형 교육 콘텐츠를 개발하고 있다.

이세영 대표는 “AI 시대에는 1인 1 AI 환경 조성, AI 스타트업 지원, 전 국민 AI 리터러시 교육이라는 3대 축이 필요하다”며 “한 예로, 한국은 미국보다 업무에서 AI를 더 많이 쓰지만 업무 시간 단축 효과는 낮다는 조사 결과는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교육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 제한적인 AI, 교사 역량과 예산의 이중고

그러나 화려한 정책 비전과 달리 교육 현장의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육하윤 경북교육청 장학관은 “교사 중 10% 내외만 AI를 수업에 잘 활용하며, 기초 과정 연수는 신청자가 많지만 중급 과정은 참여가 저조하다”고 말했다. 육하윤 장학관은 “학생들이 정보를 꼼꼼히 씹어볼 시간과 능력을 잃어가고 있다”고 우려했다. 최근 논란이 됐던 ‘심심한 사과’를 ‘지루한 사과’로 이해하는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예산 문제도 심각하다. 유 장학관은 “구독형 서비스로 전환되면서 처음 1~2년은 무료지만 이후 지속적인 구독료를 내야 하는데, 예산이 없으면 당장 사용할 수 없다”며 “연구학교에서도 내년 예산 지원 여부를 묻는다”고 토로했다. 나아람 광주광역시교육청 나아람 장학사는 디지털포용법과 디지털역량교육 지원 조례 등 법적 토대는 마련됐지만 “여전히 체험 중심의 단기성 교육이 대부분”이라며 “정규 교과과정 속에서 단계적이고 지속적인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도시와 농촌의 격차는 더욱 극명하게 드러났다. 이용진 곡성군미래교육재단 팀장은 “전체 초중고생 1748명 전원에게 AI 교육을 제공하지만, 학교 무선 AP 성능이 낮아 머신러닝을 진행할 때 정확도가 떨어지고 서버가 다운된다”고 말했다. 이용진 팀장은 “작년에 AP를 최신으로 바꿨다고 하는데 AI 머신러닝 학습조차 할 수 없는 교육 기반이다”며 “노트북 50대를 직접 가지고 다니며 수업한다”고 말했다. 이 팀장은 “초등학생에게 학습, 추론, 예측 중심의 생성형 AI를 가르치는 것이 합리적인지 의문”이라며 “오히려 비판적 사고로 정보를 수용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농어촌 교사의 목소리는 더욱 절박했다. 오창석 삼척초등학교 교사는 발명교육센터 겸임교사로 14개 학교 700명을 순회 교육하며 경험한 현실을 전했다. 오창석 교사는 “AI는 공간적 제약을 넘어 세상과 소통하는 통로이자 기회의 재분배”라며 “개천에서 용이 나지 않는다는 말에 동의할 수 없다. AI 시대에는 다시 용이 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현실적 장애물은 많다. 오 교사는 “작은 학교일수록 교사의 행정 업무 부담이 크고, 새로운 교육이 들어올 때마다 행정 업무도 함께 늘어난다”며 “코로나 시기에 도입된 디지털 기기의 내용연수가 올해 끝나는데, 관심 있는 학교만 빠르게 도입하면 또 다른 격차가 벌어진다”고 우려했다. 

끝으로, 조인철 의원은 “오늘 논의된 내용들을 정책화, 법제화, 제도화하는 데 앞장서고 필요한 예산도 확보하겠다”고 약속하며 포럼을 마무리했다. AI 리터러시 교육이 단순한 기술 습득을 넘어 사고력 재구성, 비판적 판단력, 책임감을 키우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데 참석자 모두가 공감했지만, 정책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메우기 위한 제도적 지원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더 컸던 자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