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韓, 피지컬 AI 선도할 전략 고민해야”

2025-10-28     신진우 KAIST 교수
신진우 KAIST 교수.

최근 초거대 생성형 인공지능(Generative AI)의 급격한 발전은 언어와 이미지를 넘어, 실제 세상과 상호작용을 하는 지능형 로봇의 등장을 앞당기고 있다. AI가 단순히 텍스트를 생성하는 수준을 넘어 물리적 세계를 이해하고 행동하는 단계로 나아가면서, 이른바 ‘피지컬 AI(Physical AI)’ 시대가 열리고 있다. 이는 로봇과 AI가 융합돼 현실 세계에서 스스로 인식하고 판단하며 행동하는 ‘체화된 지능(embodied intelligence)’을 의미한다.

지금까지의 AI 발전은 거대한 데이터와 막대한 컴퓨팅 자원 위에서 이루어졌다. 챗GPT, 클로드(Claude), 제미나이(Gemini) 등 초거대 언어모델을 학습시키기 위해서는 인터넷 전역의 데이터를 수집하고 수천억 개의 파라미터를 학습시키는 데 수만 개의 그래픽처리장치(GPU)가 투입됐다.

하지만 피지컬 AI 파운데이션 모델은 근본적으로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로봇이 실제 환경에서 움직이고 조작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언어 텍스트가 아니라, ‘행동(action)’과 ‘감각(sensor)’이 결합한 데이터가 필요하다. 이러한 데이터는 인터넷에 존재하지 않는다. 로봇이 스스로 환경과 상호작용을 하며 수집해야 한다.

이 점이 바로 대한민국의 새로운 기회다. 초거대 언어모델 경쟁에서는 미국과 중국이 막대한 자본과 데이터, 클라우드 인프라를 바탕으로 이미 앞서가고 있다. 그러나 피지컬 AI는 상대적으로 적은 자원으로도 경쟁이 가능한 영역이다. 행동 데이터는 대규모 수집보다는 고품질의 시뮬레이션, 실제 실험 환경, 그리고 창의적인 데이터 증강 기술을 통해 효율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 즉, ‘GPU 수천 장’보다 중요한 것은 현장에서 데이터를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과 로봇 하드웨어 기술력이다.

이 분야에서는 소프트웨어 못지않게 기계·전자·제조 기술의 역량이 중요하다. 로봇은 단순한 코드로 구현되지 않는다. 정밀한 모터 제어, 센서 융합, 내구성 있는 재료와 조립 기술이 결합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대한민국은 독보적인 강점을 지닌다. 반도체·자동차·디스플레이 등 세계 최고 수준의 제조 기술을 축적해 왔고, 정밀한 기계 설계와 대규모 생산이 가능한 산업 기반을 보유하고 있다. ‘제조 강국’의 DNA가 곧 피지컬 AI의 경쟁력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또한 피지컬 AI는 기술적 필요뿐 아니라 사회적 요구와도 맞닿아 있다. 저출산과 고령화로 인한 노동력 부족은 이미 산업 현장의 큰 과제가 되고 있다. 특히 제조업, 물류, 의료, 돌봄 등 고난도 행동을 요구하는 영역에서 지능형 로봇의 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한국의 산업 현장은 실제 로봇이 학습하고 시험하기에 매우 풍부한 ‘리얼월드 데이터의 보고’다. 공장, 병원, 물류창고, 요양시설 등 곳곳에서 로봇이 사람과 협업하는 환경을 구축한다면, 이는 곧 세계에서 가장 현실적인 피지컬 AI 훈련장이 될 수 있다.

물론 이 분야는 아직 초기 단계에 불과하다. 현재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도 로봇 행동 데이터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했고, 로봇 하드웨어의 복잡성과 안전성 문제로 진입 장벽이 높다.

지금부터 피지컬 AI 연구개발에 대한 국가적 지원을 강화하고, 산학연이 함께 참여하는 실험 플랫폼을 구축하며, 로봇-AI 융합 인재를 양성한다면 미국이나 중국과도 충분히 경쟁할 수 있다. 지금이 대한민국이 선도할 절호의 시기다.

AI의 새로운 패러다임은 더 이상 ‘가상 지능(Virtual Intelligence)’이 아니라, ‘현실 지능(Physical Intelligence)’으로 옮겨가고 있다. 데이터와 연산력에서 출발한 경쟁이 이제는 ‘행동과 경험’의 경쟁으로 진화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이 전환점에서 기술력, 산업 기반, 사회적 필요의 세 박자를 모두 갖춘 거의 유일한 나라다. 이제는 따라가는 AI가 아니라, 현실 세계에서 움직이는 AI를 주도하는 나라, 피지컬 AI 시대의 개척자로서 대한민국의 역할을 고민해야 할 때다.

신진우는 KAIST 김재철 AI 대학원 ICT 석좌 교수이다. 현재 로봇 파운데이션 모델 스타트업 리얼월드의 수석 과학자이자 국가 AI 전략위원회 기술혁신·인프라 분과장도 맡고 있다. 서울대 수학과를 졸업하고 메사추세츠공과대학(MIT)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5년 미국 컴퓨터 협회(ACM) 시그매트릭스 소사이어티가 주관하는 젊은 과학자상(Rising Star Award)을 수상했다. AI 및 컴퓨터 과학 분야 저명한 국제 학회에 최근 10년간 가장 많은 논문을 게재한 국내 연구자로 꼽힌다. 초거대 AI와 피지컬 AI의 융합, 차세대 AI 인재 양성, 대한민국의 AI 주권과 기술 경쟁력 확보를 위한 정책 자문에 힘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