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아방가르디스트를 위한 새로운 아지트, ‘AI 아트’
아방가르디스트(Avangardist)란, 기존의 전통적인 틀을 벗어나 실험적이고 급진적인 시도에 앞장서는 혁신적인 예술가, 선구자 또는 사회운동가‘를 의미하는 용어로 널리 회자해 왔다. 이전의 주류 패러다임에 안주하지 않고 한발 더 나아가 세상에 없던 혁신을 선보이며 자신만의 도메인을 추구해 온 이 아방가르디스트들 덕분에 세상은 떠들썩하면서도 유쾌한, 하지만 동시에 깊이 있는 사유와 철학을 동력 삼아 공진됐다.
이렇듯 현시대를 살아가는 아방가르디스트들이 최근 곁고 틀며 하나의 방향성으로 수렴되고 있는 지점이 있으니, 이는 다름 아닌 인공지능 AI 아트계(AI Art scene)이다. 필자는 미국 UCLA 유학 시절, 역량 있는 미디어 아티스트들과의 교류를 통해 ‘첨단 테크와 예술의 융합’에 눈을 떴으며, 이후 서울예술대 조교수로 임용되면서 상기 아젠다와 관련해 본격 창작·연구의 길을 걷게 됐다. 하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대중들에게 AI는 꽤 낯선 개념이었으며, AI를 예술과 접목하는 작품 활동은 사실상 몇몇 미디어 아티스트들 혹은 해당 영역 교수들에게만 국한되는 것으로 인식됐다.
하지만 2018년, 프랑스에 기반을 둔 아트 그룹 오비어스(Obvious)가 AI로 만든 초상화 ‘에드몽 드 벨아미(Edmond de Belamy)’가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예상가의 43배에 달하는 약 5억 원(43만 달러)에 낙찰되며 AI 아트 분야가 세계적인 주목을 받게 되었다.
이후 2022년, 드디어 챗GPT가 세상에 공개돼 AI 민주화가 본격적으로 시도되었으며, 같은 해 미국에서 열린 '콜로라도 주립 박람회 미술대회' 디지털아트 부문에서 게임 기획자인 제이슨 M. 앨런(Jason M. Allen)이 이미지 생성형 AI인 미드저니를 활용해 제작한 작품 ‘스페이스 오페라 극장(Theatre D'opera Spatial)’으로 1등을 차지, 예술계에 파란을 일으켰다. 이즈음에 이미지·영상 ·사운드 생성형 AI들이 기하급수적으로 쏟아지듯 시장에 선보이며 ‘AI 아티스트’라는 현대의 아방가르디스트들이 빠르게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 센세이셔널한 현상을 포착한 오픈AI 등 다수의 글로벌 AI 기업들은 AI 아티스트들과 협업하며 자사 제품을 홍보함은 물론, AI 아트계 만들어내는 ‘인간지능 X 인공지능’의 새로운 미감(美感)에 주목하기에 이르렀다.
필자는 올해 2월, 외교부와 함께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프랑스 AI 행동 정상회의(AI Action Summuit)의 공식 행사로서 ‘한국을 대표하는 12인의 AI 아티스트 전시인 ‘미래의 결, 한국성’의 총괄 큐레이터를 맡아 한국성(Koreanness)에 기반한 AI 아트 미학을 전 세계에 소개했다. 해당 전시에는 필자를 포함해 권한슬·김땡땡·김미라·도토리맛 우유·조은산·최돈현·최세훈·킵콴·헤서늬 · Elissa·Ruda 등 총 12명의 AI 아티스트들이 대거 참여, 문화예술·콘텐츠·엔터테인먼트 전방위 영역에서 활동 중인 한국인 AI Artist들의 위상을 널리 알렸다.
AI 아트계의 가장 큰 특징을 꼽으라면, 다자간 장르를 횡단하고 경계를 초월하는 창작 행위가 전문성의 약화가 아닌, 오히려 예술성의 확장이라는 미덕으로 해석된다는 데 있다. 즉 AI 아트에서는 미술가이면서 연출가, 소설가이면서 영화감독으로 스스로를 소개할 수 있는 다면적계 에고(Multifaceted Ego) 활동이 장려되는 동시에, AI와의 강력한 결합을 통해 시너지를 극대화하는 일련의 시도가 예술의 가장 대표적 본질 중 하나인 혁신의 이름으로 치환될 수 있다.
이러한 새로운 방식의 창조 활동은 단연 이미지·영상 ·사운드 등을 쉽고 빠르게 생성해내는 AI 기술 발전에서 기인하는 바, 태어날 때부터 AI를 모국어처럼 사용하는 ‘AI 네이티브’인 베타 세대(Beta Generation)가 성장함에 따라 더욱 고도화될 것으로 예측된다. 여기에 기존의 시각·청각은 물론, 미각·후각·촉각 등 인간의 감각을 데이터베이스화하고 전송할 수 있는 감각전송기술, 뇌와 컴퓨터를 연결해 서로 간 직접 상호작용을 가능토록 하는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rain-computer interface, BCI) 분야의 혁혁한 발전이 융합돼 그 진보의 진자 운동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현재 시점에서 AI 아트계는 뉴 폼 아트(New Form Art)의 탄생을 견인하는 새로운 아지트로 자리매김했다. 필자는 그간 작가, 큐레이터, 디자이너, 시노그래퍼, 감독으로서 미술, 뮤지컬, 오페라, 영화, 광고 영역을 넘나들며 AI와 협업한 결과물을 대중들에게 선보여왔다. 비단 문화예술·콘텐츠·엔터테인먼트 분야 전공자 혹은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AI를 활용해 누구나 자신만의 세계관과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창작 생태계가 이미 도래했다. 이러한 현장은 첨단 테크와 인류 간 상생의 디펙토 스탠다드(사실상의 표준)이자, 지속 가능한 신한류 창출을 위한 창조적 산실로 역할할 것이 자명하다.
인류는 AI로 인한 소외의 위험으로부터 AI로 인한 도약의 기회를 모색 중에 있다. AI 아트계는 AI + X에의 가장 대표적인 분야이자, 전도유망한 영역으로 각광받고 있다. 그 중심에 서 있는, 필자를 비롯한 많은 AI 아티스트들이 도전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1930년 영화 ‘황금시대(L'Age d'Or)’ 제작에 참여하며 영화 장르의 대중화에 기여한 초현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 ‘튜브 물감’이라는 당시의 최첨단 기술로부터 새로운 패러다임을 태동시킨 인상주의 작가들에 이르기까지. 예술의 역사는 언제나 시대를 대표하는 첨단 테크와 결을 함께 발전돼 온 바, 작금의 현상은 궁극적으로 ‘AI 아트’라는 새로운 사조를 확립시키며 또 한 번의 인류 대전환을 견인해 나갈 것이다.
AI 아티스트 인공(In-Gong)으로 활동 중인 박은지 교수는 AI·확장현실·메타버스 등 첨단 테크와 문화예술 ·콘텐츠·엔터테인먼트 전방위 분야 간 융합을 필두로 다년간 뉴 폼 아트(New Form Art) 장르를 발전시켜 온 한국의 아방가르디스트(Avangardist)이다. 서울시, 외교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국립중앙과학관, 인공지능 전문매체 ‘THE AI’ 등에서 개최하는 다수의 AI Art 전시, 페스티벌, 행사의 예술 총감독·총괄 큐레이터·총괄 아트 디렉터를 맡아왔다. 내년 3월 개원을 앞둔 태재대 AI융합전략대학원에서는 문화예술·콘텐츠·엔터테인먼트 영역과 AI를 접목하는 융합 전략 과목을 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