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AI 인재 미스매치, 양성만으로는 답이 없다

2025-09-03     구아현 기자
구아현 THE AI 기자. 

정부는 2019년부터 KAIST·포항공대·고려대·성균관대 등을을 비롯한 10개 대학의 AI 대학원에 예산을 지원해왔다. 2023년까지 총 760억 원을 투입했다. 석·박사급 졸업생도 893명을 배출했다. 매년 AI대학원과 AI융합혁신대학원에서 500명의 AI 인재가 배출되고 있다.

취지는 분명했다. 챗GPT가 전부터 미래를 대비해 고급 인재 양성에 나섰던 셈이다. 초기 대응을 잘해 국내 AI 인재 배출은 안정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AI대학원협의회에 따르면 현재 매년 500명 안팎의 석·박사급 인재들이 나오고 있다. 세계 수준의 연구 역량을 갖춘 교수진과 학생들이 성장했고 국제 학회 논문·대회 성과를 내며 경쟁력을 키워왔다.

하지만 취업률은 기대와 달리 떨어지고 있다. 정부 지원 AI 대학원 졸업생 취업률은 초기 100%에 가깝던 수준에서 2023년에는 63.5%로 낮아졌다. 산업 현장에서는 여전히 “인재가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커지지만 정작 훈련된 인재들은 갈 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인재 배출을 성공했지만 산업·연구계에서 이를 흡수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최근 연세대 AI대학원을 졸업해 글로벌 빅테크로 간 허미란 메타 연구원도 ‘2025 AI대학원 심포지엄’에서 “국내 AI 인재풀이 많아져 국내 취업 시장도 녹록지 않다”며 “해외 시장에 더 많은 기회가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언급했다.

이런 상황에서 우수한 AI 인재들의 해외 유출은 가속화되고 있다. 10개 AI대학원 졸업생들 중 상당수가 구글, 메타, 오픈AI, 마이크로소프트 등 해외 기업으로 향하고 있다. 한 AI대학원 교수는 “국내에서 키운 인재가 해외로 나가는 것을 강제로 막을 순 없지만 국내로 우수 인재가 돌아올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채용 시장 미스매치에는 여러 요인이 작용한다. 국내 취업 시장 전반의 위축, AI 고급 인재를 흡수할 만한 산업 생태계의 협소함, 인재들의 취업 기업 선호도, 기업의 경력직 선호도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그 가운데 가장 크게 지적되는 원인은 바로 산업 수요와 교육 사이의 괴리, ‘미스매치’다.

실리콘밸리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나타난다. 최근 미국 새너제이주립대는 역대 최다 입학생을 기록했는데, 그 이면에는 AI 확산으로 초급 개발자 일자리가 줄자 다시 학교로 돌아온 졸업생들의 사정이 있었다. 구글·MS 등 빅테크가 수만 명을 해고하는 한편 뛰어난 AI 인재는 수천억 원을 들여 스카우트하는 양극화도 심화되고 있다.

국내 AI 경쟁력을 높이려면 이러한 흐름과 경고를 잘 파악해야 한다. 현재 AI가 초급 인력을 대체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지만 곧이어 ‘초급 인력+AI’ 조합이 중간급 인력의 일부 영역까지 빠르게 대체할 수 있다. 기업들의 AX(AI로의 전환)를 돕는 심규현 렛서 대표는 “AI로 인해 기업의 사업 프로세스가 완전히 변화하고 있다”며 “값싼 초급 인력이 AI와 힘을 합쳐 성과를 내면 기업들은 초급 인력을 더 많이 채용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지형 AI대학원협의회장 겸 성균관대 AI대학원 원장도 THE AI와 인터뷰에서 “졸업 후 이들이 연구자로 성장하며 머물 수 있는 혁신적인 연구 환경과 산업계의 흡입력이 부족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는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연구소, 대학·기업·정부 간 긴밀한 협력이 뒷받침돼야 인재가 국내에 머문다”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술이 아니라 자신감과 과감한 투자”라고 강조했다.

결국 인재 미스매치는 단순히 채용 시장의 수급 불균형으로만 볼 수 없다. 산업 구조의 근본적 변화가 겹쳐 나타나고 있다. 정부 정책은 이런 변화를 가장 민감하게 포착하고 대응해야 한다. 인재 양성과 동시에 기업 AI 생태계를 키우고 산업의 AX를 가속화하지 않으면 ‘인재는 남는데 일자리는 사라지는’ 상황이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이에 재교육을 통해 기존 산업 인력을 AI 인재로 전환하고 연구소·산학 협력 플랫폼을 확충해 인재들이 국내에서 경력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기업에는 AX 전환 인센티브를 제공해 인재와 산업이 맞물려 성장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