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기본법, 규제 시행 유예 여부에 관심 쏠려
“유예는 불가피할 것” 관측… 과기정통부 “결정된 바 없어” 전문가들 “규제가 강한 게 아니라 불명확성 문제”
내년 1월 시행 예정인 인공지능(AI) 기본법이 유예될지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4일 업계에 따르면 국정기획위원회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정통부)가 AI 기본법의 규제 조항을 3년 유예하고 진흥 조항만 우선 시행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이에 대해 과기정통부는 "결정된 바 없다"며 즉각 반박했으나 업계에선 내년 1월 시행에 대해서는 유예 가능성이 여전히 있다는 관측이다.
AI 기본법은 지난해 12월 국회를 통과해 유럽연합(EU)의 AI법(AI Act)보다 7개월 빠른 2026년 1월 시행을 목표로 한다. 이 법은 기술 진흥과 규제의 균형을 내세우지만 고영향 AI의 정의가 불명확하고 규제 대상을 포괄적으로 규정한 점에서 업계 혼선을 야기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본지 취재에 따르면 AI 기본법 시행령 초안은 이미 만들어진 상태다. 지난 3월 중순 ‘AI기본법 개정연구위원회’를 공식 발족해 전문가 50명이 모여 고영향 AI, 생성형 AI 등 법 내 용어 정의를 명확히 하고 과태료·사실조사 등 제재 절차를 합리화하는 방향의 개정안을 추진해 왔다.
최경진 한국인공지능법학회장은 “AI기본법개정연구위원회 소위별 작업 초안은 이미 나왔고 조만간 총괄소위 논의를 거쳐 최종안을 발표할 예정”이라며 밝혔다.
AI 기본법에 대한 유예 논의가 나오는 것은 규제가 지나치게 강해서라기보다는 법령의 불명확성과 행정 집행의 준비 부족 등 구조적 요인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오정익 법무법인 원 변호사는 “시행령 초안은 이미 TF를 통해 만들어졌으나 현 정부 출범 이후 정책 기조가 바뀌고 장관 인선 등도 아직 진행 중인 상황에서 AI 기본법 시행 유예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고 본다”며 “AI 기본법은 과징금 없이 과태료만을 규정하고 있고 그 수준도 최대 3천만원에 불과해 법 자체를 ‘강한 규제’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최경진 학회장도 “과징금은 없고 과태료만 있으며 그마저도 최대 3천만원에 불과해 제재 측면에서의 규제 강도는 EU보다 확실히 낮다”며 “AI 기본법은 진흥을 함께 고려했고 규제 관점에서 미국·중국·EU와는 다른 독자적인 길을 선택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이처럼 현행 AI 기본법은 국제적 기준에 비해 규제 강도는 낮은 편이지만 개념의 모호함과 제도의 예측 불가능성이 산업 현장의 불안을 야기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유예 논의의 본질을 규제 완화가 아닌 제도 정비로 보는 시각이 보다 타당하다고 보고 있다.
애초 과기정통부는 이달 중 하위법령 초안에 대한 의견 수렴을 시작하고 6월 전후로 입법예고에 들어갈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재명 정부 출범과 함께 과기정통부 장관에 배경훈 LGAI연구원장이 지명되고, 하정우 AI미래기획수석(전 네이버클라우드 AI혁신센터장)이 임명되면서 정책 결정권자들이 바뀌어 시행령 재정비가 필요한 상황이다.
국내 AI 기업들의 법 이해도가 낮다는 점도 현장의 불안 요소다. 최근 AWS와 스트랜드 파트너스의 공동 보고서에 따르면 AI 기본법상의 의무를 정확히 이해한 기업은 전체의 29%에 불과했다.
최경진 학회장은 이에 대해 “하위법령이 예측 가능하고 합리적인 기준으로 마련될 필요가 있다”며 “정부나 공공 부문에서의 컨설팅, 교육, 홍보가 보다 적극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정익 변호사도 유사한 지적을 내놨다. 그는 “정부조차도 가이드라인을 어떻게 정할지 아직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기업 입장에서는 이를 따르지 않았다가 사고가 발생하면 책임을 회피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있다”며 “결과적으로 과태료 수준의 처벌 외에도 가이드라인 미준수에 따른 간접적 부담이 커서 기업들이 규제로 느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EU AI법도 시행이 지연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당초 2026년 8월 시행 예정이었으나 최근 유럽의 110여개 기업들이 2년 유예를 요청하고 나섰다. 세부 가이드라인 마련도 예상보다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EU AI법은 위반 시 기업 전체 매출의 최대 7% 또는 3500만 유로(약 505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