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주권 확보’ 정부 드라이브... 민간 비전 파운데이션 모델 등장

슈퍼브에이아이 비전 AI ‘ZERO’ 공개, 글로벌 빅테크 모델 48% 압도

2025-06-24     김동원 기자
슈퍼브에이아이가 산업용 비전 파운데이션 모델 ‘제로(ZERO)’를 공개했다. (왼쪽부터) 슈퍼브에이아이 김현수 대표, 차문수 CTO, 김진회 CBO. /김동원 기자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국산 대형언어모델(LLM) 개발을 목표로 하는 ‘독자 인공지능 기초 모형 사업(AI 파운데이션 모델 프로젝트)’을 본격 추진하는 가운데, 국내 스타트업이 산업 특화 비전 파운데이션 모델을 선보였다. ‘공교로운 타이밍’이라고 선을 그었지만, 정부 정책 방향과 민간 기술력이 맞물리며 한국 AI 생태계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24일 슈퍼브에이아이는 서울 여의도 콘래드 서울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산업용 비전 파운데이션 모델 ‘제로(ZERO)’를 공개했다. 과기정통부가 지난 23일부터 7월 21일까지 국산 파운데이션 모델 개발을 위한 데이터 공급기관을 공개 모집한다고 발표한 직후 나온 결과물이어서 주목됐다.

파운데이션 모델은 대규모 데이터로 사전 훈련된 범용 AI 모델로, 별도 학습 없이도 다양한 작업에 활용할 수 있는 차세대 AI 기술이다. 기존에는 작업마다 개별 AI 모델을 만들어야 했지만, 파운데이션 모델은 하나로 여러 기능을 수행할 수 있어 ‘AI의 윈도우’로 불린다.

◇ 정부 LLM vs 민간 비전 AI, “방어형과 공격형”

정부는 올해부터 본격 추진하는 ‘AI 파운데이션 모델 프로젝트’를 통해 향후 공모로 선발될 정예팀에 GPU, 데이터, 인재 등 필수 자원을 집중 지원하고 있다. 김경만 과기정통부 인공지능기반정책관은 “고품질 데이터는 AI 성능을 좌우하는 핵심 자산으로, 공공과 민간이 함께 만드는 데이터 협력체계가 세계적 수준의 한국형 LLM 개발을 위한 초석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김현수 슈퍼브에이아이 대표는 정부의 국산 AI 파운데이션 모델 프로젝트를 의식한 발표가 아니었냐는 본 기자의 질문에 “타이밍은 의도적이지 않았다”면서도 “정부의 대형언어모델(LLM) 중심 소버린 AI와는 성격이 다르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개인적으로 소버린 AI는 외산 서비스의 편향성 등 리스크를 방지하는 방어적 기술로 보고 있다”면서 “반면 산업용 비전 파운데이션 모델은 제조 강국 한국이 세계 무대에서 수출할 수 있는 공격적 기술”이라고 구분했다.

주목할 점은 AI 기술이 텍스트 중심 LLM을 넘어 텍스트, 이미지, 오디오, 비디오 등 다양한 형태의 데이터를 처리하고 통합할 수 있는 멀티모달 AI로 진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멀티모달 AI는 여러 유형의 인풋 및 아웃풋을 허용하여 생성형 AI를 더욱 강력하고 유용하게 만든다. 이런 맥락에서 슈퍼브에이아이의 비전 파운데이션 모델은 단순한 영상 처리를 넘어 멀티모달 AI 시대의 핵심 구성요소로 평가된다.

김 대표는 비전 파운데이션 모델 ‘제로’ 공개 배경에 대해 “기업들의 산업 AI 전환을 돕기 위한 것”이라며 “앞으로 피지컬 AI, LLM과 함께 더 큰 비전을 달성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슈퍼브에이아이가 출시한 비전 파운데이션 모델 ‘제로’ 이미지. /슈퍼브에이아이

◇ 6개월 → 즉시, AI 개발 패러다임 바꾼 ‘제로’

실제로 제로는 기존 AI 개발 방식의 패러다임을 바꿨다. 지금까지는 AI를 도입할 때마다 데이터 수집 → 라벨링 → 모델 학습이라는 6개월짜리 과정을 반복해야 했다. 제로는 이 과정 없이 텍스트나 이미지 프롬프트만 입력하면 즉시 AI가 작동한다.

차문수 최고기술책임자(CTO)는 “과거 오픈소스 이상탐지 기술로 비전 AI 기업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가 대부분 사라진 이유가 매번 새로운 제품이나 공정에 맞춰 재학습해야 하는 한계 때문”이라며 “제로는 이런 근본적 문제를 해결했다”고 설명했다.

성능도 입증했다. 자체 구축한 37개 산업 분야 벤치마크에서 구글 OWLv2, 마이크로소프트 Florence-2 등 글로벌 빅테크 모델을 48% 차이로 앞섰다. 특히 A100 GPU 8장만 사용해 경쟁사 대비 10분의 1 자원으로 개발한 점도 주목할 부분이다.

슈퍼브에이아이의 비전 파운데이션 모델 ‘제로’ 성능지표. /슈퍼브에이아이

특히 경량화 기술에서의 노하우를 경쟁력으로 내세웠다. 차 CTO는 “경량화를 하기 위해서 저희가 갖고 있었던 지식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며 “1억 개의 데이터가 아닌 더 적은 데이터로도 높은 성능을 낼 수 있는 환경을 구축했다”고 설명했다.

◇ 20조 → 200조 시장 확장 기대, 수익성 우려도

김진회 최고비즈니스책임자(CBO)는 제로를 토대로 충분히 매출 확대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봤다. “기존 20조 원의 전 세계 컴퓨터 비전 시장은 10년 안에 200조 원으로 확장할 수 있다”며 “100조원 영상관제 시장, 290조원 스마트팩토리 시장의 진입장벽을 허물어 새로운 기회를 창출하겠다”고 말했다.

슈퍼브에이아이는 아마존웹서비스(AWS) 마켓플레이스에서 제로를 상용화할 계획이다. 추후 아마존 베드록에도 제로를 탑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하지만 업계에는 회의적 시각도 존재한다. 파운데이션 모델은 인력, 비용, 자본의 투자가 필요하고 현재는 수익과 연결할 마땅한 방법이 없어서다. 김 CBO도 제로의 매출 계획에 대해 “현재 제로는 매출에 반영할 계획이 없다”고 솔직히 밝혔다.

제조 현장과의 실질적 통합도 과제다. 산업 현장에서는 자바나 파이썬 대신 PLC 언어를 주로 사용하는데, 이런 시스템과의 연동이 관건이다. 이와 관련 질문을 하자 차 CTO는 “1B 파라미터 이하로 경량화해 엣지 디바이스에 배포하고 API 서버로 기존 시스템과 연동할 수 있다”고 답했다.

인텔리빅스, SIA 등 비전 파운데이션 모델을 구축하고 있는 경쟁사와의 경쟁 우위 확보 방안에 관한 질문에 김 CBO는 차별화된 전략을 제시했다. 그는 “우리가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 자체가 다른 기업들과는 차이가 있다”며 “데이터를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능력이 제로 파운데이션 모델뿐만 아니라 고객의 현장 문제 해결에서도 핵심 경쟁력이 된다”고 강조했다.

김 CBO는 제로 파운데이션 모델이 현재 기능만으로는 모든 문제를 풀 수 없다고 솔직히 인정했다. 하지만 그는 빠른 기술 개발 역량을 강조하며 “굉장히 빠른 속도로 저희는 문제를 풀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특히 “우리는 파운데이션 모델을 경량화하면서 쌓은 경험이 있다”며 “파운데이션 모델 자체의 태스크 수행력을 굉장히 빠른 속도로 늘릴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