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AI 인재 유출 OECD 최하위권... “산업·연구 생태계 전면 개선 필요”
두뇌수지 적자 폭 확대… “유능할수록 떠난다” 전문가들 "단순 처우 개선 넘어 체계적 육성 전략 필요"
국내 인공지능(AI) 분야 고급인력의 해외 유출 현상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단순한 처우 개선을 넘어 AI 인재 생태계 전반의 근본적 개선이 필요하다는 전문가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 OECD 38개국 중 35위... 심각한 AI 인재 순유출
한국 AI 인재 유출 규모가 OECD 국가 중 최하위권으로 나타났다. 대한상공회의소 지속성장이니셔티브(SGI)가 17일 발표한 ‘한국의 고급인력 해외 유출 현상의 경제적 영향과 대응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인구 1만명당 AI 인재 순유출이 -0.36명으로 OECD 38개국 중 35위로 최하위를 기록했다. 이는 룩셈부르크(+8.92명), 독일(+2.13명), 미국(+1.07명) 등 주요 선진국과 극명한 대조를 보인다.
국내 과학자의 해외 이직률(2.85%)은 외국 과학자의 국내 유입률(2.64%)보다 0.21%포인트 높아 전반적으로 순유출 상태다. 순유출입 순위는 조사대상 43개국 중 33위로 하위권에 해당한다. 우리나라 과학 학술 연구자의 유입과 유출 비중 차이(-0.21%p)는 독일(+0.35%p), 중국(+0.24%p), 미국(0%p), 일본(-0.14%p) 등 주요국과 비교해도 크게 뒤처진 수준이다.
◇ 두뇌수지 적자 폭 확대… “유능할수록 떠난다”
SGI 이 보고서에서 두뇌수지 적자 폭이 확대됐다고 분석했다. 두뇌수지는 대한상의 SGI가 새롭게 제안한 개념으로 국내 전문인력의 해외 유출과 외국인 전문인력의 국내 유입 간의 차이를 나타내는 인재 흐름의 순수지 개념이다.
보고서는 인재 유출 원인으로 △단기 실적 중심의 평가체계 △연공서열식 보상 시스템 △부족한 연구 인프라 △국제협력 기회의 부족 등을 지목했다. SGI는 “상위 성과자일수록 해외 이주 비중이 높아 유능할수록 떠나는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 산업계 흡수력 부족이 핵심 문제
이에 대학에서 AI를 가르치는 교수들은 AI 인재가 국내에서 활약할 수 있도록 AI 생태계 전반을 개선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이지형 성균관대 인공지능대학원장은 AI 인재 유출 현상에 대해 이렇게 사업계 흡수력 부족이 핵심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학교는 인재를 양성해 산업에 밀어 넣어주는 역할을 하지만 국내는 그 인재를 빨아들이는 산업계와 자율적인 연구소가 현재 부족하다”며 “인재들이 졸업 이후 연구를 이어갈 수 있는 생태계가 부족해 인재들이 자꾸 다음 단계로 외국 기업이나 연구소로 눈을 돌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원장은 캐나다의 AI 생태계를 사례로 들며 “요슈아 벤지오, 제프리 힌튼 등과 같은 세계적인 AI 석학들이 활약한 배경에는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연구 환경이 있었다”며 “캐나다는 AI 연구를 지원하는 고등연구소(CIFAR)를 중심으로 대학·연구소·기업이 긴밀히 협력하고 정부가 전략적으로 AI를 지원하는 체계를 갖췄다”고 설명했다. 또 “국내에도 인재들이 졸업 후 자율적으로 연구를 이어갈 수 있는 혁신 놀이터 같은 연구소가 필요하다”며 “좋은 인재들이 가고 싶은 플레이 그라운드를 국내에 만들어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 “AI 연구 생태계 전면 개선해야”
연구 지원 제도 개선 필요성도 강조됐다. 김기응 국가AI연구거점센터장(KAIST 교수)은 “대학원생들의 학술 역량은 세계적인 수준이지만 이들이 졸업 후 뿌리내릴 수 있는 산업 및 창업 생태계는 취약하다”며 “연구성과가 산업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졸업생들이 2~3년간 연구를 이어가며 실생활에 맞게 발전시킬 수 있는 제도적 기반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센터장은 “현재처럼 창업 환경이 위축되고 연구 자금 확보가 어려운 구조에서는 우수한 인재들이 국내에 머무르기 힘들다”며 “이는 곧 인력 유출로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우수한 인재들이 유학을 떠나고 졸업 후에는 해외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며 “국내 생태계에 인재가 정착할 수 있는 기반이 부족하고, 특히 중소기업과 대기업 모두 인재 부족을 호소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AI 생태계 개선과 함께 평가 체계의 근본적 변화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연공서열 중심의 경직된 인사·보상 시스템이 젊은 연구자들의 창의성 발휘를 제약하고 있다. 유능할수록 떠나는 구조가 고착화되면서 상위 성과자일수록 해외 이주 비중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지형 원장은 “국내는 교육 시스템이나 제도는 잘 돼 있는 편이지만 너무 양적 평가에 치우쳐 있다”며 “창의적인 시도보다 형식적인 지표 채우기에 몰두하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제는 질적인 평가 신뢰 기반 자유로운 연구 환경이 절실하다”며 “과감한 시도와 실험이 인정받을 수 있는 분위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