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5주년 특집] 최정규 LG AI연구원 그룹장 “산업형 LLM의 교과서, 엑사원”
단순 응답을 넘어, 실제 문제를 푸는 LLM 오픈소스 공개, 단순한 개방 아닌 생태계 확장 신호탄 복잡한 업무 해결하는 실전형 에이전트로 진화 디스플레이·로봇 제어까지… ‘실행하는 멀티모달 AI’ 시대 연다
산업 현장 특화 대형언어모델(LLM), LG AI연구원의 ‘엑사원(EXAONE)’이 산업의 판을 바꾸고 있다.
잘 훈련된 AI 비서는 단지 말을 잘하는 존재가 아니다. 눈앞의 데이터를 읽고, 수십 년간 축적된 기술 문서를 빠르게 파악하며, 반복 실험 없이도 최적의 조건을 제시해야 한다. LG AI연구원이 독자 개발한 엑사원은 지금 이 역할을 실현하고 있다. 단순히 텍스트를 이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산업 생산 라인, 연구소, 통신 상담센터, 복잡한 제조현장까지 침투해 실제 문제를 해결한다.
최정규 LG AI연구원 AI에이전트 그룹장 겸 언어랩장은 기자와 인터뷰에서 “우리는 산업 현장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복잡하고 고난도의 문제들을 AI로 해결해달라는 실질적인 요청을 받으며 엑사원을 발전시켰다”며 “그 과정에서 산업별로 매우 정교한 이해와 대응이 가능한 LLM을 만들 수 있었다”고 밝혔다.
실제로 엑사원은 LG디스플레이, LG이노텍, LG생활건강, LG유플러스 등 그룹 전 계열사에 실제 적용돼 있다. 품질검사 자동화, 연구개발 실험 효율화, 고객 대응 에이전트 고도화 등으로 실질적 성과를 내고 있다. 오픈AI의 챗GPT가 범용 모델로 시작해 산업에 확장되는 흐름을 따라가고 있다면, 엑사원은 애초부터 산업 현장을 겨냥해 탄생한 셈이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경량화’ 성과다. 엑사원 2.4B 모델은 세계 최대 오픈소스 개발자 플랫폼인 깃허브 기준, 온디바이스 AI 부문 글로벌 1위를 기록했다. 중국 딥시크의 모델과 비교해 파라미터는 5%, 자원 사용은 10분의 1 수준이지만, 성능은 대등하거나 앞선다. 고성능이면서도 빠르고, 가볍다. 이는 고품질 학습 데이터 구성과 효율적인 학습 파이프라인 설계 등 2년에 걸친 집요한 연구 결과다.
이러한 경량화는 단순한 기술적 성과를 넘는다. 초거대 AI 모델은 학습과 추론 과정에서 막대한 전력과 인프라 비용이 발생한다. 이 때문에 경량화는 선택이 아닌 필수로 꼽힌다. 산업 현장에 AI를 실제로 적용하기 위해서는 비용과 ESG 관점의 에너지 사용량이 중요해 경량화는 AI 활용의 필수조건이 되고 있다.
엑사원의 기술 진화는 멈추지 않고 있다. 이제는 텍스트뿐만 아니라 이미지, 음성, 센서 데이터를 동시에 이해하는 ‘멀티모달 AI’로 확장하고 있다. 예컨대 디스플레이 제조 현장에서는 이미지와 센서 데이터가 핵심이다. 이를 통합 분석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멀티모달 액션 모델’을 개발 중이다.
또 다른 핵심 축은 ‘AI 에이전트’다. 단순히 응답만 하는 챗봇이 아니라, 복잡한 업무를 계획하고 실행하며 결과를 재조정하는 자율형 AI다. LG AI연구원은 현재 R&D, 마케팅, 생산 등 부서별 맞춤형 AI 에이전트 개발을 추진하며 산업 현장의 AI 에이전트 적용을 지원할 계획이다.
생태계 확장 전략도 빼놓을 수 없다. LG AI연구원은 지난해 자체 개발한 엑사원 모델을 오픈소스로 공개하며 수만 건의 다운로드를 기록했다. 이 전략은 기술력 입증은 물론, 글로벌 개발자 생태계와의 연결, 실력 있는 인재 유입까지 이어지고 있다.
한국이 전 세계에서 AI 존재감을 뽐낼 수 있도록 실질적인 성과를 창출해 나가겠다고 밝힌 최정규 그룹장. 그와 자세한 얘기를 나눴다.
- LG AI연구원은 내부에서 활용하던 파운데이션 모델 ‘엑사원’을 오픈소스로 공개했다. 어려운 결정이었을 것 같은데.
“정말 많은 고민이 있었다. 내부에서도 ‘괜찮은 거냐, 다 공개하면 큰일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었고, 실제로 그룹 차원의 지원을 받는 상황에서 무료로 공개하는 게 맞느냐는 시선도 있었다. 하지만 오픈소스를 공개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점이 분명했고, 결국 잘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엑사원을 오픈하게 된 배경은 크게 세 가지가 있다. 하나는 ‘홍보 효과’다. 당시 대형언어모델(LLM)에 대해 글로벌 빅테크들은 활발히 움직이고 있었고, 국내에서는 상대적으로 조용했다. 우리는 엑사원을 만들었지만, 그룹 내부에서만 사용하다 보니 ‘실체가 있는 모델이냐’는 의문이 있었다. 이 때문에 우리가 실제로 어떤 수준의 모델을 개발하고 있는지 보여주기 위해 오픈을 결심했다. 두 번째는 ‘생태계 기여와 기술 확장성’이다. 모델을 오픈소스로 공개하면 학계나 산업계의 다양한 프레임워크와 함께 사용되며, 개발자들이 직접 버그를 찾아내거나 새로운 형태로 재활용하는 등 여러 피드백이 들어온다. 이러한 과정은 우리가 직접 하지 않아도 모델의 완성도나 활용 범위를 자연스럽게 넓혀주는 효과가 있다. 세 번째는 ‘인재 유입’이다. 공개 이후 이 모델을 직접 활용해 본 실력 있는 개발자들이 ‘모델을 활용해 이런 것을 해봤다’, ‘이런 경험을 쌓았다’는 피드백과 함께 지원한다. 우리 모델의 글로벌 경쟁력을 보고 지원하는 경우도 많다. 실력 있는 인재와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구조가 된 것이다. 물론 상업적 활용은 따로 라이선스를 받고 진행해야 하고, 현재는 연구 목적에 한 해 제한적으로 오픈하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균형을 잘 맞춘 결정이었다고 본다. 시기도 적절했다.”
- 최근 출시된 LG AI연구원의 엑사원 시리즈를 보면 경량화 쪽에서 높은 경쟁력은 보인다. 글로벌 빅테크 모델들과 비교해서도 앞선다.
“엑사원 시리즈는 특히 경량화 모델(SLM,) 부문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현재 우리는 2.4B, 7.8B, 32B 세 가지 사이즈의 모델을 운영 중인데, 이 가운데 2.4B 모델은 온디바이스 환경에서 글로벌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는다. 이건 우리 주장이 아니라 세계 최대 오픈소스 개발자 플랫폼 깃허브 기반의 글로벌 오픈소스 벤치마크 결과에서 입증된 성과다. 다운로드 수, 활용도 모두 세계 최상위권을 기록했고, 7.8B 모델도 글로벌 톱 수준, 32B 모델도 높은 경쟁력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성과를 내기까진 상당한 연구와 노력이 있었다. 사실 초거대 모델을 학습시키려면 막대한 자원이 필요하다. 일례로 메타는 1만 개 이상의 GPU를 동시에 사용해 실험을 돌린다. 하지만 우리는 그만큼의 여력이 없다보니 상대적으로 제한된 자원으로 같은 수준의 성능을 달성하기 위해, 2년에 걸쳐 효율적인 학습 파이프라인과 최적화 전략을 고도화해 왔다. 고품질의 성능을 작고 가벼운 모델에서도 낼 수 있도록, 데이터 구성부터 학습 방식, 실험 설계까지 체계적인 최적화를 진행했다. 결과적으로, 중국의 딥시크 대비 약 5% 수준의 파라미터, 자원은 10분의 1밖에 쓰지 않으면서도 유사한 성능을 내는 경량화 모델을 만들어냈다. 이는 단순히 가볍기만 한 모델이 아니라, 실제로 산업 현장이나 온디바이스 AI 환경에서 바로 적용 가능한 수준의 고성능 모델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 당연한 질문일 수 있지만, AI 경량화는 왜 중요한가. 전문가 의견을 듣고 싶다.
“AI 경량화는 현재 AI 산업 전반에서 가장 중요한 기술적 과제 중 하나다. 그 이유는 크게 비용 절감과 환경 지속 가능성, 그리고 현실 적용성 확대라는 세 가지 측면에서 설명할 수 있다.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비용’이다. 초거대 모델을 학습하거나 운영할 때는 막대한 컴퓨팅 자원이 필요하다. 학습 단계에서는 수백~수천 개의 GPU가 동원돼야 하고, 서비스 운영 단계, 즉 ‘추론’ 단계에서도 대규모 인프라를 지속 유지해야 한다. 이로 인해 전력 사용량과 인프라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챗GPT만 보아도 전 세계 수억 명이 사용하지만, 막대한 운영비용으로 인해 아직 수익을 내지 못하는 구조다. 이런 구조에서는 AI를 기업 내부에 적용하거나 실사용 서비스로 확대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기 때문에, 경량화가 곧 실용화를 위한 핵심 요건이 된다. ‘환경’도 중요한 이유다. 고성능 AI 모델을 운영하기 위한 에너지 소비는 곧 탄소 배출과 직결된다. 따라서 학습 및 추론에 필요한 에너지 사용량을 줄이는 것 자체가 ESG 관점에서도 매우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 또 경량화는 AI의 ‘적용 가능성’을 넓히는 데에도 필수다. 가벼울수록 특히 온디바이스 등에서 활용도가 높다. 이처럼 경량화는 단순히 모델을 작게 만드는 문제가 아니라, AI의 실질적 확산과 지속 가능성을 좌우하는 핵심 기술 전략이다.”
- LG AI연구원의 LLM ‘엑사원’은 높은 전문성과 경량화를 토대로 각 산업에 특화해 사용하기 적합한 LLM으로 평가된다.
“엑사원이 산업 특화형 LLM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LG AI연구원의 독특한 위치와 역할이 크게 작용했다. 우리는 LG그룹 산하로 독립적인 연구조직으로 운영된다. 이 구조 덕분에 기존 계열사 안에서는 시도하기 어려운 새로운 도전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환경이 잘 갖춰져 있었고, 그것이 곧 도전과 혁신을 장려하는 문화로 이어졌다. 실제로 LG AI연구원에는 각 계열사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복잡하고 고난도의 문제들이 모인다. ‘AI로 이런 문제를 풀 수 있겠느냐’는 요청이 자연스럽게 쌓이게 되고, 그 과정에서 산업별로 매우 정교한 이해와 대응이 가능한 LLM이 발전하게 된 것이다. 일례로 LG이노텍에서는 원래 수백명의 사람이 눈으로 진행하던 카메라 모듈 비전 품질 검사를 AI로 완전히 자동화하는 데 성공했다. LG생활건강에서는 화장품이나 신소재 분야에서도 AI를 활용해 연구원들이 수백 번 반복해야 했던 실험 과정을 크게 단축시켜 새로운 소재 개발 속도를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었다. 이처럼 각 산업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부딪히는 문제들을 AI로 해결해 나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엑사원은 산업 현장의 복잡성과 전문성에 특화된 모델로 진화하게 됐다. 이처럼 엑사원의 경쟁력은 단지 기술 수준만이 아니라, 현장의 난제를 풀며 축적된 문제 해결력과 도전 정신에서 비롯된다.”
- 챗GPT가 범용 AI로 시작해 현재 각 산업에 적용되고 있다면, LG의 엑사원은 애초부터 산업 특화에 집중한 모습이다. 각 산업에 상용화된 구체적인 사례가 궁금하다.
“맞다. 엑사원은 처음부터 산업 현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초점을 맞춘 전문가 AI로써 지금도 다양한 계열사 및 외부 기업에서 활발히 상용화되고 있다. 일례로 LG디스플레이에서는 엑사원이 이미 핵심 업무에 활용되고 있다. 디스플레이 산업 특성상 대형 OLED부터 차량용까지 다양한 프로토콜과 수많은 기술 문서가 존재하는데, LG디스플레이는 지난 30년간 축적된 방대한 R&D 이슈 해결 문서들을 모두 디지털화해 보관하고 있었다. 엑사원은 이 문서들을 기반으로, 특정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과거 유사 사례에서 찾아 제시하는 검색형 QA 서비스로 상용화됐고, 실제로 20~30분 걸리던 문제 해결 시간이 30초 이내로 단축했다. 최근에는 단순 검색을 넘어 생산 데이터 분석, 이메일 작성, 통번역, 업무 보조 등으로 기능이 확장되며 업무 생산성 30% 향상을 목표로 ‘AI 업무 어시스턴트’로 진화 중이다.
LG유플러스의 경우에는 통신회사 특성에 맞춰 엑사원을 기반으로 한 통화 요약 및 응대형 AI 에이전트 서비스를 작년에 출시했고, 현재는 이를 더 고도화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LG CNS나 유플러스 기업간거래(B2B) 부문에서는 엑사원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산업형 AI 솔루션이 실제 상용화되고 있고, LG전자의 노트북 그램에는 온디바이스 형태의 엑사원이 탑재돼 ‘AI PC’ 형태로도 제품화됐다. 이외에도 엘스비어 등 글로벌 기업과 협업하고 있고, 특히 미국의 ‘잭슨랩’과 함께 알츠하이머 및 암 관련 유전체 분석과 예측, 개인화된 치료 솔루션 개발에 엑사원을 사용하고 있다.”
- 그런데 산업 특화형으로 제공되다 보니 일반인, 즉 국민이 사용하기는 어렵다고 평가된다. 그동안 LG그룹 내부에서만 사용했던 것도 이러한 인식을 강하게 만들었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지적이다. 실제로 엑사원이 산업 현장의 복잡한 문제들을 푸는 데 집중해 오다 보니, 일반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형태로 접하기는 다소 어려웠던 면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도 더 범국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AI 모델을 만들고 싶다는 열망이 있다. 이를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최근에는 국가 주도의 여러 AI 정책과 프로젝트, 일례로 월드베스트LLM(WBL) 프로젝트 등 여러 무대가 만들어지고 있다. 이러한 프로젝트에 적극 참여해 정부와 협력하며 LG AI연구원이 보유한 기술과 전문성을 공유해 한국도 정말 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한다. 이를 통해 일반 국민도 쉽게 체감하고 활용할 수 있는 모델로 확장해 나가겠다.”
- 정부 주도 WBL에 우려가 많다. 과거 월드베스트소프트웨어 프로젝트도 실패하지 않았는가. 소프트웨어 쪽에서 서로 다른 기업들이 협력해 어떤 성과를 이룬 전례가 없다.
“맞다. 과거 정부 주도 프로젝트들이 기대만큼 성과를 내지 못한 사례들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한다. LLM을 비롯한 AI 기술이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기술로 부상했고, 일본만 해도 최근 소프트뱅크에 1조 원 규모의 투자를 단행하며 국가 차원의 전략적 대응에 나섰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이제는 단순히 기업 단위의 경쟁이 아니라, 국가 간 기술 주도권 경쟁으로 확장된 시대라고 본다. LG그룹도 이런 인식 아래, 제조 분야를 포함해 전통적인 산업에서도 AI가 제품 경쟁력 자체를 좌우할 수 있다는 판단을 내리고 있다. 이 때문에 우리는 WBL 프로젝트를 단순한 정부 지원 사업으로 보지 않고, 대한민국 전체의 AI 경쟁력 강화라는 관점에서 적극적으로 협력하려고 한다. 서로 다른 기업 간 협업이 쉽지 않다는 점도 물론 알고 있지만, 지금은 민간과 정부가 함께하지 않으면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는 상황이다. 정부에서도 여러 정책이 나오는 만큼, 우리도 대한민국 전체의 기술력 강화에 기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 그런데 WBL이 완성된다고 해도 수요가 있을까? 실제 산업계나 중요한 프로젝트는 빅테크 기업이 만든 LLM을 선호할 것 같은데.
“LLM을 단순히 ‘한국형’을 만들면 큰 의미가 없을 것이다. 실제 글로벌 시장에서 통할 수 있는 경쟁력과 차별성이 있어야 실질적인 수요와 영향력을 가질 수 있다. 이 때문에 정부 주도 LLM도 한국에서만 쓰는 모델이 아니라, 해외에서도 충분히 선택받을 수 있는 수준의 기술력과 완성도를 갖춰야 한다. 사실 LG AI연구원은 애초부터 이 목표를 가지고 움직였다. 처음부터 글로벌을 겨냥한 모델을 만들기 위해 연구해왔고, 지금도 그 방향성을 유지하고 있다. 물론 미국 등 해외 빅테크 기업들의 투자는 막대하고, 그 격차를 단기간에 따라잡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LG그룹은 국내 기업 중에서도 가장 공격적인 투자와 실행력을 보여주고 있고, 여기에 정부의 전략적 지원이 더해진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이 프로젝트는 ‘국내용 모델’이 아니라, 글로벌에서 통할 수 있는 국가 대표 AI 모델을 만들어내기 위한 공동 도전이라고 봐주시면 좋겠다.”
- LLM, 즉 파운데이션 모델을 보유하는 것이 왜 중요한가.
“파운데이션 모델을 직접 보유하는 것은 단순한 기술 확보를 넘어, 산업 전체의 주도권을 확보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일각에서는 ‘이미 잘 만든 외산 모델을 가져다 서비스만 잘하면 된다’는 시각도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GPT 사례를 보면,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많은 기능이 하나의 서비스 안으로 흡수되고 있다. 검색, 문서 작성, 통번역 등 수많은 기능이 LLM 안에 내장되면서, 기존의 다양한 소프트웨어들이 위협받고 대체되고 있다. 통번역 시장만 보더라도 과거에는 전문 번역 업체들이 경쟁력을 갖고 있었지만, 지금은 챗GPT나 구글 번역만으로도 동등하거나 오히려 더 나은 결과를 제공할 수 있게 됐다. 이러한 변화는 기술을 보유하지 못한 기업, 특히 스타트업들에게는 생존의 위협으로 다가올 수 있다. 그만큼 파운데이션 모델의 흡수력과 파급력은 크다. 특히 최근 LLM은 단순한 문장 생성에서 벗어나 수학, 과학, 영어 등 고차원적 추론 능력까지 확장되고 있다. 우리 엑사원 32B 모델만 해도 수능 수학 영역에서 1등급(94.5점)을 기록했다. 이른바 ‘킬러문항’까지도 맞출 정도로 발전했다. 지금은 이런 기술이 제조, 산업 전반으로 확장되는 단계에 있다. 중국도 딥시크 등의 LLM을 제조 영역에 적극 도입하는 등 지금 각 국가가 파운데이션 모델을 중심으로 산업 경쟁력을 재편하려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결국 파운데이션 모델을 보유한다는 건, 기술적 독립성과 시장 주도권을 확보하는 핵심 전략이다. 단순히 쓰는 것이 아니라, 직접 만들고 발전시켜야 산업 전체가 흡수당하지 않고 오히려 이끌어갈 수 있는 위치에 설 수 있다.”
- 최근 국회와 정부에선 너무 GPU만 강조하는 느낌도 든다. 사실 AI에서 GPU만 중요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최근 GPU 인프라 확보에 정책적 우선순위를 두고 있는 건, 현실적으로 가장 시급하고 눈에 띄는 병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외의 핵심 요소들에 대해서도 정부 내부에서는 생각보다 폭넓은 고민과 준비가 진행 중이다. 지금 정부는 AI 전략을 구성할 때 반도체, 데이터센터(AIDC), 파운데이션 모델, 애플리케이션 등 크게 네 가지 축으로 각각 정책과 지원 방안을 마련하는 분위기다. 현재 GPU가 강조되는 것은 당장 예산이 투입되고, 눈에 보이는 성과가 빠르게 필요한 긴급 대응 성격의 이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인재 양성 문제, 범용인공지능(AGI)과 같은 LLM 이후의 기술 전환에 대한 중장기적 대응도 함께 추진되고 있다. 일례로 1조 원 규모의 ‘포스트 LLM’ 기술 개발 예타 사업 등이 기획되고 있다. 사실 작년까지만 해도 정부 차원의 전략이 부족하다는 인식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올해 초 중국 딥시크가 적은 자원과 인재로도 경쟁력 있는 LLM을 만들어내면서 우리도 인식이 바뀌었다. ‘미국은 넘을 수 없는 산’이라는 고정관념이 깨지면서, 우리도 자체 기술로 충분히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열렸고, 그 후 정책 논의도 급속히 진전되고 있는 모습이다. 앞으로 더 균형 잡힌 정책이 구체화 될 것으로 기대한다.”
- LG AI연구원은 경량화, 산업 특화에 강점이 있다는 것은 충분히 검증됐다. 앞으로 전략은 또 무엇인가.
“지금까지는 경량화된 모델과 산업 특화형 AI에서 성과를 보여드릴 수 있었다. 글로벌 오픈소스 생태계에서도 성능과 활용도 측면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여러 전략을 구상하고 있다. 하나는 초거대 모델 영역으로의 확장이다. 현재는 2.4B, 7.8B, 32B 모델까지는 자체 개발했지만, 70B 이상의 초거대 모델 영역은 아직 본격적으로 진입하지 않은 상태다. 글로벌 빅테크들은 이 분야에 막대한 자원을 투입하고 있고, 우리도 이제는 그 영역에도 도전하려는 준비를 시작하고 있다. 또 하나의 전략은 ‘멀티모달 AI와 AI 에이전트’ 강화다. 지금까지는 텍스트 기반의 LLM이 중심이었지만, 앞으로는 멀티모달 모델 개발에 힘쓸 계획이다. 특히, 단순히 콘텐츠를 생성하는 수준을 넘어서, 복잡한 작업을 스스로 계획하고 실행하며 결과를 평가하고 반복 수행할 수 있는 ‘AI 에이전트’ 시대에 대비하고 있다. 이러한 에이전트는 단순한 챗봇을 넘어, 사용자의 요청을 해석하고, 외부 도구와 연동하며, 목표 달성까지 자율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구조를 갖추고 있어 산업 현장에서도 매우 유용할 것으로 기대한다.”
- AI 에이전트라고 하면 마이크로소프트나 세일즈포스처럼 사용자가 에이전트를 구축하기 편한 환경을 지원해 주는 것인가, 아니면 자체 에이전트를 만들어 주는 것인가.
“ 두 가지 방향을 모두 추진하고 있다. 우선, 우리는 각 계열사에서 필요로 하는 특정 업무에 맞춤화된 AI 에이전트를 직접 개발하고 있다. 예를 들어 R&D, 마케팅, 생산 등 부서별로 반복적이거나 복잡한 업무 중 AI가 개입할 수 있는 영역을 선별했고, 이를 기반으로 실질적인 프로젝트들이 이미 시작된 상태다. 이러한 에이전트는 단순한 템플릿이나 프레임워크가 아니라, 계열사 현장 업무에 최적화된 실행형 에이전트로, 실질적인 업무 효율성과 품질 향상을 목표로 한다. 동시에, 장기적으로는 사용자나 기업이 직접 자신들의 업무 흐름에 맞는 에이전트를 구축할 수 있게 하는 방향도 함께 고민하고 있다.”
- 멀티모달의 경우 LG AI연구원은 엑사원 2.0 때 세계 최초로 ‘양방향 멀티모달’ 기술을 선보이며 실력을 입증했다. 앞으로의 멀티모달 전략은 무엇인가.
“앞으로는 생성(generation) 중심에서 이해(understanding) 중심으로 전략을 확장하고자 한다. 현재 우리가 중점을 두고 있는 분야는 기업 내 실제 데이터와 업무에 기반한 멀티모달 이해다. 기업들이 보유한 데이터는 대부분 텍스트와 이미지, 그리고 디스플레이 제조 등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센서 데이터로 구성돼 있다. 이러한 비정형 데이터들을 통합적으로 이해하고 분석할 수 있는 멀티모달 AI가 앞으로 R&D, 로봇, 자동화 등 고도화된 산업 영역에 핵심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특히 피지컬 AI, 즉 실제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AI에서 멀티모달의 중요성은 커질 것이다. LG그룹은 자체적으로 로봇 사업도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단순 인식이나 생성이 아니라 로봇을 실질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멀티모달 액션 모델’ 개발에도 집중하고 있다. 이처럼 LG AI연구원의 멀티모달 전략은 단순히 모델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텍스트·이미지·센서 데이터·로봇 제어까지 아우르는 ‘실행 중심 멀티모달 AI’라고 볼 수 있다.”
- AI 에이전트가 발전하면서 AI 추론 영역이 중요해지고 있다. 그런데 이를 발전시키기 위해선 추론용 데이터들이 필요한데, 여기서부터 어려움이 큰 것으로 알고 있다.
“맞다. 지금처럼 AI 에이전트가 단순한 응답 생성이 아니라, 복잡한 상황에서 추론하고 판단하는 수준까지 나아가기 위해서는 고품질의 ‘추론용 학습 데이터’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데 이 데이터를 만드는 과정이 상상 이상으로 어렵고 복잡하다. 우리가 최근 특허청과 함께 진행한 사례를 보면 그 어려움이 잘 드러난다. 특허 심사관은 단순히 문서를 읽는 것이 아니라, 관련 문헌 검색, 판례 조사, 다양한 의견 청취, 논리적 디베이트를 거쳐 최종 판단을 내리는 고차원적 추론 작업을 한다. 이 과정을 데이터화하려면, 각 단계의 논리와 근거, 판단 기준이 명확하게 기록돼야 하는데, 전문가가 직접 개입하지 않으면 만들기 어려운 데이터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워낙 바쁘고, 이런 정교한 데이터를 일일이 만드는 데 시간이 많이 들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대규모 추론 데이터를 확보하는 데 큰 제약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한편으로는 전문가가 만든 고품질 데이터를 기반으로 AI가 유사한 형식의 데이터를 자동 생성할 수 있도록 하는 기술도 함께 개발하고 있다. 예전에는 사람이 하나하나 만들던 데이터도, 이제는 AI가 패턴을 학습하면 일정 수준 이상 재생산이 가능해졌고, 실제로 상용화 수준까지 상당히 진전된 상태다. 이처럼 사람의 전문성과 AI의 생성 능력을 결합하는 방식으로, 추론용 데이터의 품질과 생산성을 동시에 확보하려는 노력이 앞으로 AI 추론 기술 발전의 핵심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 LG AI연구원은 그동안 세계적으로 놀라운 업적을 냈다. 세계 최초 ‘양방향 멀티모달’ 기술을 비롯해 모델 경량화 등에서 높은 성과를 내고 있다. 비결은 무엇인가.
“가장 핵심적인 비결은 새로운 도전을 장려하는 문화와 이를 실현할 수 있는 조직 구조에 있다고 생각한다. LG AI연구원은 LG그룹의 독립된 산하 조직이다. 누군가 물어보면 ‘LG그룹의 문샷(Moonshot)’이라고 답하기도 한다. 우리가 계열사 체계 안에 있었다면 여러 제약 때문에 여러 시도를 하기 어려웠을 텐데, 독립적인 연구조직으로서 그룹 차원의 미래 투자 프로젝트로 운영되다 보니 과감한 실험과 혁신을 추진할 수 있는 환경이 잘 갖춰져 있었다. 이러한 환경 덕분에 ‘과연 우리가 미국처럼 막대한 자원과 인력을 갖고 있지 않아도 유사한 프로젝트를 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 속에서도 여러 성과를 낼 수 있었다. 그 중심에는 인재가 한몫했다. 연구원은 설립 초기부터 좋은 인재를 확보하는 데 집중했고, AI 업계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연구 환경, 인프라, 그리고 함께 일할 훌륭한 동료들을 갖추기 위해 정말 많은 고민과 노력을 했다. 연봉 체계도 능력 중심으로 유연하게 운영해 탁월한 성과를 낼 수 있는 인재에게는 충분한 보상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수평적인 조직 문화를 기반으로 자율성과 협업이 살아 있는 구조도 큰 도움이 됐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최근에는 대학에서 ‘학생들이 LG AI연구원에 가고 싶어 한다’는 얘기를 종종 전해주기도 한다. 결국, 도전과 혁신을 장려하는 구조, 인재 중심 철학, 그리고 이를 뒷받침한 그룹의 장기적 비전이 지금의 성과를 가능하게 한 근본적인 이유라고 생각한다.”
- 가까운 미래인 약 3년 뒤, AI 기술은 어떤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하나.
“AI 업계에서는 한 달이 일반 산업의 1년과 같다고 할 정도로 변화 속도가 빠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3년 후면 지금의 기술 수준과는 완전히 다른 국면이 열릴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예상해 보자면, AI 에이전트와 피지컬 AI의 본격적인 일상화가 이뤄질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우리는 단순히 AI가 텍스트를 생성하거나 응답해 주는 수준을 넘어서, 복잡한 작업을 스스로 계획하고 실행하며, 사용자의 의도를 이해하고 필요한 정보를 가져와 최종 결과까지 도출해 주는 에이전트에 점점 더 의존하게 될 것이다. 기업들도 이러한 AI 에이전트를 중심으로 업무방식을 재편하게 될 것이고, 많은 산업에서 반복적인 작업이나 복잡한 의사결정이 AI에 의해 대체되거나 보완될 수 있다. 동시에, 제조·물류·에너지 같은 물리적 환경에서도 AI의 활용이 급격히 확산될 것이다. 로봇을 비롯한 다양한 디바이스들이 센서와 AI를 통해 서로 협업하고, 실시간 데이터를 기반으로 자동 대응하며, 인간 개입 없이도 생산성과 품질을 끌어올릴 수 있는 체계가 만들어지고 있다. 이미 국방 분야에서는 무인 전투기가 편대를 이뤄 자율적으로 작전을 수행하는 수준에 도달한 상태다. 이처럼 앞으로 3년 안에 우리는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양쪽에서 AI가 주도하는 전환의 한가운데에 서게 될 것이다. 개인의 일상부터 산업의 운영 방식까지, AI가 단순한 보조를 넘어 실질적인 주체로 기능하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고 본다.”
- AI 의존성이 높아져 사람의 역량이 중요해지지 않을 수 있단 걱정이 든다.
“충분히 공감되는 우려다. AI가 점점 더 똑똑해지고 편리해지다 보면, 사용자는 판단을 점점 AI에 맡기게 되고, 결국에는 무비판적으로 신뢰하게 되는 상황도 생길 수 있다. 문제는 이 신뢰가 쌓이다 보면, 크리티컬한 의사결정 영역에서도 AI에게 모든 걸 맡겨버리는 위험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의료, 금융, 안전처럼 결과에 따라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분야에서는 사람이 반드시 개입해 최종 판단을 내리도록 하는 가이드라인이 필수적이다. 이와 함께 AI의 판단 과정과 결과를 점검하고 검증할 수 있는 감사 체계, 기술적 안전장치도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AI가 실수했을 때 이를 추적하고 책임을 명확히 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어야만, 신뢰와 안전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다.”
- AI 능력이 올라가는 상황에서 사용자들은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AI 에이전트가 돈을 벌어오는 현실이 다가오는 상황에서 미래 인재들은 어떤 것을 준비해야 할 지 고민이 깊다.
“어려운 질문이다. 일단 중요한 것은 AI를 잘 활용해야 할 것 같다. 그런데 AI가 못하는 영역들이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인간 고유의 창의력을 비롯해 감성적 공감 등의 부분 등이다. 물론 생성형 AI가 등장하면서 AI가 창의적인 결과를 내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사실 이 것은 기존 데이터의 재조합에서 나오는 ‘확률 기반의 창의성’이다. 반면 인간의 창의성은 때로는 완전히 새롭고 예측 불가능한 발상에서 나온다. 그것이야말로 AI가 쉽게 따라갈 수 없는 본질적인 차이점이라고 생각한다. 또 AI는 감정을 흉내낼 수는 있지만, 사람의 깊은 감정 상태를 진정으로 이해하거나 공감하는 데에는 여전히 한계가 있다. 이런 정서적·사회적 역량은 앞으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중요한 경쟁력이 될 것이다.”
- 앞으로의 목표와 비전이 궁금하다.
“LG AI연구원은 국가적으로 의미 있는 기여를 하고 싶다는 비전을 갖고 있다. 엑사원 모델을 개발할 때, 우리 연구원들은 정말 극한의 노력을 했다. 한 달 동안 밤낮없이 모델을 준비했다. 그런데 이 과정을 직접 겪은 연구원들은 ‘힘들지만 즐거웠다’고 말한다. 왜 그런지 물어보니, ‘우리 아니면 이걸 못 한다’, ‘우리가 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었다고 했다. AI 연구라는 게 단순히 높은 연봉이나 좋은 환경만으로 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결국은 ‘우리가 진짜 해내고 있다’는 자부심과 ‘우리가 뭔가 의미 있는 것을 만들고 있다’는 사명감이 큰 원동력이 된다. 앞으로도 우리는 LG그룹 내부에서 다양한 산업 현장에 AI를 접목해 실질적인 성과를 내는 것은 물론, 우리나라가 글로벌 AI 경쟁에서 존재감을 갖출 수 있도록 기여하겠다. 단순히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함께 만들어 가고, 세계에 우리가 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크다. LG AI연구원은 앞으로도 기술적 도전과 함께 사회적 책임을 함께 생각하는 연구 조직으로서, 산업과 국가의 미래를 함께 만들어가는 주체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