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피지컬 AI, 진정한 무대는 제조업”
세계 최대 정보기술(IT)·가전 전시회 박람회 CES 2025에서 가장 주목받은 기술 중 하나는 단연 ‘피지컬 인공지능(Physical AI)’이었다. 다만 휴머노이드 로봇에 초점이 치우친 점은 피지컬 AI보다 본질적인 가능성을 조명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고 생각된다. 피지컬 AI의 진정한 잠재력은 단지 인간을 모방하는 로봇에 그치지 않는다. 특히 제조업 분야에서는 더욱 그렇다.
한국은 제조업의 국내총생산(GDP) 비중이 세계에서 손꼽을 정도로 높은 나라다. 이러한 산업 구조 속에서 경쟁력을 유지하고 도약하기 위해서는 제조 공정 전반에 걸쳐 자율 시스템을 구축하고 이를 통해 생산성과 품질을 동시에 향상하는 것이 핵심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피지컬 AI가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필자는 피지컬 AI를 현실 세계를 인식하고 자율적으로 판단해 제어 시스템과 연동해 실제 장비나 설비를 작동하거나 최적화할 수 있는 AI로 정의한다. 이는 센서 기반 인식, 상황 판단, 제어 명령까지 하나의 시스템 안에서 유기적으로 작동하는 지능형 물리 시스템의 구성 요소라 할 수 있다.
제조업은 이러한 피지컬 AI가 가장 필요하고 적합한 분야다. 제조는 본질적으로 물리적 프로세스의 집합이, 각 공정은 센서, 설비, 제어 장치 등의 복잡한 상호작용 위에 구축돼 있다. 따라서 개별 기술 단위가 아닌 시스템 전체를 대상으로 한 통합적 접근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피지컬 AI 생태계의 기술 성과를 실질적인 제조 자율화로 연결하고 고차원의 운영 최적화를 실현할 수 있다.
과거 국내 대형 물류 허브에서 수화물의 상하차 진척도를 추정하는 AI 시스템을 개발한 바 있다. 단안 깊이 추정을 통해 택배 상자와의 거리를 계산하고 이를 기반으로 자동으로 작업 진척도를 산출하는 비전 시스템이었다. 이 AI 시스템은 단지 영상 분석 기술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추정된 정보가 물류 스케줄러에 입력되어 화물차의 배차와 실제 이동까지의 자동화된 연동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연계는 물리적 환경의 인식과 판단이 시스템 전체의 작동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필자가 정의하는 피지컬 AI의 전형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이처럼 피지컬 AI를 시스템 레벨에서 바라볼 때 AI 도입의 본질적인 어려움 또한 더욱 분명히 드러난다. 제조 현장에서는 새로운 센서를 설치하고 데이터를 수집하며 실제 공정에서 테스트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 대부분의 AI 적용 대상이 이미 가동 중인 생산 라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AI 엔지니어에게는 알고리즘 역량뿐 아니라, 센서 설계·운용 능력, 제어 시스템에 대한 이해와 연계 역량도 동시에 요구된다. 두 영역을 결합한다는 것은 단순한 기술의 조합이 아니라 개발자 혹은 개발팀이 두 영역을 유기적으로 통합할 수 있는 시스템적 시야를 바탕으로 일관된 통합 설계와 구현을 할 수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이는 피지컬 AI가 AI 기술의 발전만으로는 실현될 수 없으며, 시스템 설계 및 구현 방법론의 진화가 병행돼야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현재 엔비디아의 디지털 트윈 플랫폼 옴니버스(Omniverse)를 활용해 가상 환경에서 센서와 제어 시스템을 통합 설계하고 시뮬레이션하며 이를 실제 물리 시스템과 연동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이러한 가상공간 기반 엔지니어링 플랫폼은 통합적 시스템 접근을 가능케 하는 강력한 도구이며 이를 얼마나 정교하게 활용할 수 있는지가 피지컬 AI의 경쟁력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피지컬 AI의 성공은 AI 알고리즘 자체에만 달려 있지 않다. 그것을 어떻게 시스템적으로 통합하고 현실에 구현하느냐에 달려 있다. 제조업의 진정한 인공지능 전환은 AI의 진화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으며, AI를 포함한 전체 시스템 엔지니어링의 진화에서 비롯된다. 다시 말해 AI가 ‘시스템 속 구성원’으로 통합돼 시스템의 한 축으로 유기적으로 작동할 때 비로소 제조업의 진정한 혁신이 시작될 것이다.
윤일용 센터장은 서울대 전기공학부에서 학사·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2007년부터 삼성디스플레이에 재직하면서 무안경 3D 이미지 생성 기술을 개발했다. 2014년부터 현대자동차에서 딥러닝 기반 AI 기술 개발, 서비스 로봇을 위한 AI 및 소프트웨어(SW) 개발을 이끌었다. 현재는 포스코DX AI기술센터장으로 구매·생산·물류·마케팅 등 제조 밸류 체인의 전 과정을 자율화하기 위한 산업 AI 기술 개발을 총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