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5주년특집] AI아티스트에 듣다⑨ 김미라 작가 “AI 예술 방향, 협업에 달려 있다”
AI아티스트 릴레이 인터뷰⑨ 김미라 작가 프랑스 AI아티스트展서 ‘머나먼 여정’ 등 전시 AI 기술, 소수의 전유물 아닌 민주적 도구돼야
[편집자 주] 조선미디어그룹이 설립한 인공지능 전문매체 ‘더에이아이(THE AI)’가 창간 5주년을 맞이했습니다. 지난 5년간 AI 기술은 상상 그 이상으로 발전해 왔습니다. 특히 텍스트는 물론 이미지와 영상까지 창작해 내는 생성형 AI 기술은 예술의 영역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그 변화의 중심에는 창의적 감각으로 AI 기술을 예술로 승화시킨 아티스트들이 있습니다. THE AI는 창간 5주년을 맞아, AI 예술의 길을 개척해 나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조명하는 특집을 마련했습니다. AI와 예술이 만나 만들어낸 새로운 물결, 그 중심에 선 아티스트들의 목소리를 전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AI 예술의 미래는 다양한 분야의 협업에 달려있다고 생각합니다. 기술 개발자, 예술가, 역사학자, 윤리학자 등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함께 대화하며 AI 예술의 방향성을 모색해야 합니다. 강조하고 싶은 건 경계를 넘나드는 협업의 중요성일 것입니다.”
김미라 작가의 말이다. 예술계에 있어서 인공지능(AI) 발전이 어떻게 이뤄져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그는 이같이 답했다. 그는 일제강점기와 한국 전쟁을 거치며 어려운 삶을 살아야 했던 부모님 세대와 상대적으로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삶에서 자란 젊은 세대와의 가교 역할을 하기 위해 역사적인 여정들을 AI 기술을 통해 재현하고 있다.
김미라 작가는 그림 그리기와 글쓰기에 애착을 가지고 있던 예술가다. 지난 2022년 생성형 AI 기술과 이미지 제작 툴을 접하고 유튜브 채널을 통해 단군, 주몽과 같은 한국 고대사를 재해석한 역사물을 제작하고 어린이들을 위한 애니메이션, 잘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를 동화 형식으로 풀어낸 영상을 만들고 있다.
지난 2월에는 11일(현지시간)부터 양일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국제 AI정상회의인 ‘파리 AI행동정상회의(AI Action Summit)’에서 AI로 만든 작품을 전시했다. 당시 파리국제대학촌 한국관에서는 한국을 대표하는 12인의 AI 아티스트 전시회인 ‘Artists 展 : 미래의 결, 한국성’이 열렸다. 김미라 작가는 이 전시회에서 ‘머나먼 여정(A Long Journey)’ 등의 작품을 출품했다.
이 작품은 최근 헝가리 파파시에서 개최된 파파국제역사영화제에서 익스페리멘탈(experimental)영화 부문으로 출품돼 “베스트 위너”라는 특별상을 받았다. 또 전 세계 영화제에서 총 22개의 대상을 포함 30개 이상의 우수상, 공로상, 파이널리스트, 노미니를 기록했다.
국가와 나이를 초월해 작품의 메시지와 AI 기술에 공감하는 모습이 정말 인상적이라고 말하는 김미라 작가. 그와 자세한 이야기를 나눴다.
- 예술 분야에서 AI 기술을 활용하게 된 계기는.
“그림 그리기와 글쓰기에 깊은 애착이 있었다. 디지털 드로잉으로 그림이 있는 수필집을 만들어보고 싶었는데, 이 작업이 생각보다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했다. 그러던 중 지난 2022년에 생성형 AI 기술이 등장했고, 이미지 AI 툴 미드저니를 통해 이미지를 생성하면서 새로운 가능성에 눈을 뜨게 됐다. 처음에는 단순한 호기심이었지만, 곧 이 기술을 활용해 영상 작업으로 자연스럽게 확장해 나갔다.”
- 예술 분야에 AI 기술이 실질적으로 어떻게 활용되고 있나.
“이미지 생성 분야에서는 미드저니, 달리, Krea, Flux, 스테이블 디퓨전과 같은 도구들이 예술가의 텍스트 프롬프트만으로도 복잡한 시각적 작품을 만들어낸다. 저를 비롯한 창작자들은 이러한 도구를 활용해 기존에는 많은 시간이 걸리던 시각 콘텐츠를 수 시간 내에 제작할 수 있게 됐다. 영상 분야에서는 Gen3, 생성형 AI 기술이 비디오 합성, 편집, 특수효과 제작에 혁명을 가져왔다. 텍스트로 영상을 생성하는 '텍스트-투-비디오' , ‘비디오-투-비디오’ 기술 이전에는 대규모 스튜디오와 전문 인력이 필요했던 작업들을 소규모 창작자, 1인 제작영화도 가능하게 시도할 수 있게 됐다. AI는 이제 협업 도구로서 역할을 확장해 나가고 있다. 창작자는 AI에게 초기 아이디어나 스케치를 제공하고, AI는 다양한 변형과 가능성을 제시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예술가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창의적 방향으로 작품이 발전하기도 한다.”
- 장점과 한계점은 무엇이 있었나.
“장점은 무엇보다 창작의 속도와 가능성의 확장이다. 전통적인 방식으로는 한 장면을 구상하고 완성하는 데 며칠이 걸리던 작업을 AI와 함께하면 몇 시간 내에 다양한 변주를 시도해볼 수 있다. 특히 역사물을 제작할 때 문헌에만 남아있던 고대 의상이나 건축물을 시각화하는 과정에서 AI의 도움이 컸다. 예상치 못했던 시각적 요소나 스토리텔링 방향을 AI가 제안해줄 때 창작의 새로운 영감을 얻기도 했다. 경제적 측면에서도 큰 장점이 있다. 독립 창작자로서 대규모 제작팀을 구성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AI는 마치 수십 명의 스태프가 함께 작업하는 효과를 가져다 줬다. 무명 독립운동가 이야기를 영상화할 때, 다양한 역사적 장소와 인물을 표현하는 데 드는 비용과 시간을 크게 절약할 수 있었다. 분명한 한계도 경험했다. 가장 두드러진 것은 AI가 생성하는 콘텐츠의 예측을 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일관성을 유지하기 어렵다. 같은 인물이나 배경을 연속된 장면에서 일관되게 표현하려면 상당히 정교한 프롬프트 작업과 수정 과정이 필요했다. 특히 한국적 정서나 역사적 맥락을 정확히 반영하도록 하는 것은 지속적인 도전이었다. AI는 서구 중심적 데이터에 더 최적화돼 있어, 우리 고유의 문화와 역사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많은 추가 작업이 필요했다. 이 외에도 창작 과정에서 느끼는 섬세한 감정이나 인간만의 직관적 판단은 AI가 완전히 대체할 수 없다. 예술 작품이 갖는 진정성과 감동은 결국 인간 창작자의 경험과 감성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AI는 뛰어난 도구지만, 작품의 영혼을 불어넣는 것은 작가의 몫이다. 기술적으로는 고해상도 영상 제작이나 복잡한 스토리를 구현할 때 효과가 잘 안나왔다.”
- AI 기술이 예술계에 미칠 영향은.
“긍정적 측면에서는 창작의 문턱을 낮추어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술 창작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독립운동가 이야기를 영상화할 때처럼, 개인 창작자도 이전에는 대형 스튜디오만 가능했던 규모의 작품을 만들 수 있다. 우려되는 부분은 창작자의 정체성과 저작권 문제가 복잡해지고, 기존 예술가들의 입지가 좁아질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AI가 훈련한 데이터에는 많은 예술가들의 작품이 포함돼 있는데, 그들의 기여가 적절히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이 생긴다. 저 역시 작품 활동 중에 이런 윤리적 딜레마를 자주 경험했다. 진입장벽이 낮아졌다고 해서 AI 기술의 접근성이 모두에게 평등하지 않다는 점도 고민된다. 고성능 컴퓨팅 자원이나 최신 AI 도구에 대한 접근은 여전히 경제적, 지리적 격차가 존재한다.”
- 진입장벽이 낮아짐으로써 발생할 효과는.
“진입장벽이 낮아지는 현상은 예술의 대중화에 있어서 중요한 전환점이라고 생각한다. 경험한 바로는, 전문적인 드로잉 실력이 없어도 미드저니를 통해 상상 속 이미지를 구현할 수 있게 됐고, 이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창작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 저처럼 전통적인 예술 교육을 받지 않았더라도 역사적 콘텐츠나 독립운동가 이야기를 시각화할 수 있게 된 것은 진정한 변화다. 이런 변화가 예술계에 가져올 영향은 복합적이다. 예술의 장벽이 낮아져 더 많은 사람들이 진입할 수 있게 됐지만, 동시에 기술의 세련도와 정교함은 더욱 고도화될 것이다. 처음에는 단순히 AI로 이미지를 생성하는 것에 만족했지만, 점차 프롬프트 엔지니어링 기술이 발전하고, AI 결과물을 후보정하는 기술, 여러 AI 도구를 결합하는 워크플로우가 중요해지고 있다. 이는 예술계의 상향 평준화로 이어질 것이다. 궁극적으로 이런 변화는 예술의 본질에 대한 더 깊은 탐구로 이어질 것이다. 기술적 장벽이 낮아진 만큼, 진정한 예술적 가치와 창의성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한계점도 존재한다. 이 부분은 기술 발전으로 상쇄될까.
“경험한 한계점들의 약 80%는 기술 발전으로 해결될 것으로 생각한다. 현재 겪고 있는 일관성 문제나 한국적 맥락 반영의 어려움은 앞으로 AI 모델이 더 정교해지고 한국 문화에 특화된 데이터가 늘어나면 상당 부분 해소될 것이다. 하지만 나머지 20%는 기술 발전만으로는 채워지지 않을 것이다. 예술 작품에 담긴 인간만의 고유한 경험, 삶의 맥락에서 우러나오는 감성과 직관은 AI가 완전히 이해하고 재현하기 어려운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제가 인간의 삶을 영상화할 때 느꼈던 감동과 역사적 무게감, 그 이야기를 통해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의 깊이는 결국 인간 창작자의 영혼이 담긴 부분이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이런 인간 고유의 창작 본질은 AI가 온전히 대체할 수 없을 것이다.”
- 머나먼 여정(A Long Journey)을 기획한 계기는.
“머나먼 여정을 기획한 계기는 제 마음속에 오랫동안 자리했던 이야기를 전하고 싶은 열망에서 비롯됐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극심한 가난과 어려움 속에서 불굴의 의지로 오늘날 한국의 놀라운 발전을 이끌어낸 부모님 세대의 삶은 제게 항상 경이로운 이야기였다. AI 기술을 만났을 때, 이 역사적 여정을 시각적으로 생생하게 재현할 수 있는 기회라고 느꼈다. 물질적 풍요 속에서 자란 젊은 세대들에게 그들이 누리는 오늘의 번영이 어디서 왔는지, 조부모 세대가 어떤 희생과 노력을 통해 한국의 발전을 이루어냈는지 보여주고 싶었다. 단순한 역사적 사실 전달이 아닌, 감정적 연결을 통해 이해와 존경을 이끌어 세대 간 가교역할을 하고 싶었고 작품의 가장 중요한 목표였다.”
-관람객(수용자)들의 반응은 어땠나.
“세대 별로 반응은 달랐다. 게임과 애니메이션 문화에 익숙한 젊은 세대들에게 이 작품은 내용적 측면에서는 그들의 관심과 거리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핵가족화된 사회에서 자라난 젊은이들에게 대가족 문화나 노인세대의 고충은 다소 진부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저처럼 부모님을 봉양해야하는 베이비부머 세대에게는 이 작품이 마치 거울처럼 우리의 현실을 비춰줬다. 제 세대의 많은 분들은 공감을 해줬다.”
- AI 기술의 발전으로 나타날 사회적 문제도 있을 것 같다.
“가장 시급한 문제는 저작권과 창작자의 권리 문제다. 머나먼 여정을 만들면서 많이 고민했던 부분인데, AI 모델들이 기존 예술가들의 작품으로 학습됐다는 점에서 윤리적 갈등이 생긴다. 두 번째로 예상되는 문제는 예술가의 경제적 생존 문제다. 이미 일러스트레이터나 스토리보드 아티스트 등 일부 분야에서는 AI로 인한 일자리 감소가 현실이 되고 있다. 세 번째는 문화적 다양성과 창의성의 동질화 문제다. AI 모델들이 서구 중심적 데이터에 편향돼 있어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표현할 때 어려움을 겪었다. 이런 기술적 편향이 지속된다면 지역적, 문화적 특성이 반영된 다양한 예술 표현이 줄어들 위험이 있다. 예술 교육과 예술가 양성 체계의 변화도 불가피할 것이다. 앞으로는 전통적인 예술 교육과 AI 기술 활용 능력을 어떻게 균형 있게 가르칠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제기될 것이다. 예술의 진정성과 가치 평가에 대한 혼란도 예상된다. 기술과 인간성, 예술의 본질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1~2년 후 예술계에서 AI 기술은 어떻게 발전할까.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날 것 같다. 가장 두드러지게 발전할 분야는 실시간 영상 생성 기술일 것 같다. 아마 1~2년 후에는 거의 실시간으로 고품질 영상을 생성하는 기술이 상용화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일관성 문제도 크게 개선될 것 같다. 현재 가장 힘든 부분 중 하나는 동일 인물이나 장소가 장면마다 조금씩 달라지는 현상인데 이 문제가 해결되면 장편 영화 전체를 AI로 제작하는게 가능해질 것 같다. 포토샵 등의 기능을 활용해 추가적인 작업을 해야했다면 미래에는 그런 작업들이 사라지지 않을까 싶다. 인터페이스들도 더 혁신적으로 발전할 것 같다. 현재는 프롬프트를 입력했다면 음성과 제스처, 스케치를 직접 입력해 영상을 그릴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 5년 후 이 분야에서 AI 기술은 어떻게 발전할 것으로 보는가.
“솔직히 상상이 되지 않을 정도로 현재 기술의 발전 속도는 빠르다. 현재로서는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달라져 있을 것 같다. 1~2년 전 이미지를 처음 생성하는 기술조차 지금은 놀라운 기술이었는데, 지금은 영상까지 만들 수 있게 됐다. 이런 속도라면 5년 후에는 어떻게 발전할지 가늠되지 않는다. 창작의 개념 자체가 완전히 바뀔 수도 있다. 그 미래에서는 전통적인 ‘창작자’와 ‘수용자’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수용자가 실시간으로 작품의 전개에 참여하는 쌍방향 예술이 주류로 떠오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특정 장르를 구분하는 것도 무의미해질 정도로 새로운 형식의 예술이 등장할 수도 있다.”
- 강조하고 싶은 말은.
“AI 예술이 기술의 발전만큼이나 인간의 정신적, 문화적 가치를 담아내는 방향으로 성장해야 한다. 머나먼 여정을 제작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기술적 완성도보다 한국인의 삶과 역사, 정신을 진정성 있게 담아내는 것이었다. AI 예술의 미래는 다양한 분야의 협업에 달려있다. 기술 개발자, 예술가, 역사학자, 윤리학자 등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함께 대화하며 AI 예술의 방향성을 모색해야 한다. 중요한 건 이런 경계를 넘나드는 협업의 중요성이다. 마지막으로, AI 예술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접근 가능해지길 바란다. 첨단 기술이 소수의 전유물이 아닌, 다양한 이야기와 목소리를 담아내는 민주적인 도구가 되길 희망한다. 한국의 이야기를 넘어 세계 각국의 다양한 문화와 역사가 AI를 통해 새롭게 조명되는 미래가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