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5주년 특집] AI아티스트에 듣다 ⑧ “AI, 패스트아트 시대 열 것”
AI아티스트 릴레이 인터뷰⑧ 엘리사 작가 프랑스 AI아티스트展서 ‘한국음식들의 초상’ 등 전시 AI, 예술작품 생산·소비 가속화… 기술보단 메시지 집중해야
[편집자 주] 조선미디어그룹이 설립한 인공지능 전문매체 ‘더에이아이(THE AI)’가 창간 5주년을 맞이했습니다. 지난 5년간 AI 기술은 상상 그 이상으로 발전해 왔습니다. 특히 텍스트는 물론 이미지와 영상까지 창작해 내는 생성형 AI 기술은 예술의 영역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그 변화의 중심에는 창의적 감각으로 AI 기술을 예술로 승화시킨 아티스트들이 있습니다. THE AI는 창간 5주년을 맞아, AI 예술의 길을 개척해 나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조명하는 특집을 마련했습니다. AI와 예술이 만나 만들어낸 새로운 물결, 그 중심에 선 아티스트들의 목소리를 전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패스트푸드가 처음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그것을 단순히 ‘싸고 빠른 음식’으로만 보지 않았다. 그 시대의 속도, 리듬, 생활 방식이 만들어낸 새로운 먹는 방식이었다. 단순히 배를 채우는 행위가 아니라 시간을 다르게 소비하는 방식, 일상을 효율화하는 문화의 일부였다. 예술도 비슷한 흐름을 타고 있다. AI로 만든 예술은 단순히 ‘빠르게 만든 예술’이 아니다. 그 안에서 중요한 건 기술이 아니라, 그 짧은 접촉 안에 얼마나 진짜 이야기가 담겨있는가라고 생각한다.”
이번 인터뷰를 통해 강조하고 싶은 말이 있냐는 질문에 엘리사 작가는 이같이 답했다. 그는 현재 AI를 활용한 예술을 ‘패스트아트(Fast Art)’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는 오늘날 예술을 감각적으로 생산·소비하고 있는 방식 자체가 패스트푸드처럼 빠르게 소비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난 2월 11일(현지시간)부터 양일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국제 AI정상회의인 ‘파리 AI행동정상회의(AI Action Summit)’에서 작품을 전시한 아티스트다. 당시 파리국제대학촌 한국관에서는 한국을 대표하는 12인의 AI 아티스트 전시회인 ‘Artists 展 : 미래의 결, 한국성’이 열렸다.
전시회를 통해 국내 AI 아티스트 12인들은 국제 과제인 기후 위기, 전쟁, 경제난, 기아 등 사회 문제 해결과 치유를 예술로 승화시키기 위해 저마다의 작품을 선보였다. 엘리사 작가는 이날 전시회서 ‘한국 음식들의 초상(Portrait of Korean Food Series)’ 등을 출품했다.
엘리사 작가는 기술의 발전으로 예술의 소비가 빨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소장하지 않아도 저장 버튼을 통해 작품을 저장하고, 작품과 관람객들이 한 번에 감정적으로 연결되는 것이 현대 시대 예술의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또 여기서 중요한 건 기술이 아닌 짧은 접촉 시간 안에 얼마나 진짜 이야기를 담아내는가라고 강조했다. 그와 자세한 이야기를 나눴다.
-예술 분야에 AI 기술을 활용하게 되신 계기는.
“본업은 브랜드 디자이너고 AI를 활용한 아티스트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디자이너로서는 무언가를 표현하는 데 상업적 제약이 있었다. 예술가로서 좀 더 날것의 진심과 질문을 꺼내고 싶었다. 미드저니를 처음 접했을 때 나의 이야기를 한계없이 표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대로 AI 아트는 상업성과 분리된 순수 창작의 장이 돼 줬다. AI를 통해 좀 더 근원적인 사회적 질문과 욕망의 구조까지 표현할 수 있게 됐다.”
-예술 분야에서 AI 기술이 어떻게 활용되는지.
“AI 예술 분야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장르의 경계가 허물어졌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회화를 하는 사람은 화가로 불렸고 영화를 만들면 감독으로 불렸다. AI 기술은 창작자의 정체성을 보다 유연하게 만들고 있다. 저는 주로 정적인 이미지를 중심으로 작업했다. 이제는 마음만 먹으면 움직이는 이미지를 구현할 수 있다. 이런 흐름은 단순 툴의 변화가 아닌, 예술가라는 존재 자체의 확장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의 AI 아티스트들은 하나의 정의로 묶기 힘든 정체성을 가졌다. AI 도구로 새로운 창작 생태계가 만들어졌다.”
-실제로 AI를 활용해보니 장점과 한계점은.
“대체로 AI를 활용한 분들은 속도와 편의성을 장점으로 꼽지만, 저에게 가장 큰 장점은 의도를 실현하는 자유도에 있다. 기존 방식으로라면 ‘구상-스케치-촬영-보정’이라는 과정을 거쳐야 했던 것을, AI는 단 몇 초 만에 상상 속 이미지를 현실화해준다. 그 안에서 반복적으로 시도하고, 조율하고, 결국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 가장 정확한 형태를 찾아가는 과정을 만들어간다. 무엇보다 좋은 점은 1인 크리에이터가 감독, 디자이너, 촬영 감독 등의 역할까지 통합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이다. 다만 AI가 아직 신체 구조나 비율을 완벽히 이해하지 못하는 한계점도 존재한다. 끈이나 막대기,안경같은 형태가 가늘고 구조적인 요소들도 여전피 표현력이 떨어진다는 한계가 존재한다. 가장 큰 딜레마는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비슷하게 복제해낼 수 있다’는 점이다. 창작자로서는 허탈감을 느끼며, 예술의 본질이 위협받는 것을 보고 있으면 종종 윤리적 피로감이나 불안감을 느낄 때도 종종 있다.”
-한계점이 기술의 발전으로 해결될지.
“기술은 분명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이미지의 해상도는 높아지고, 스타일은 정교해지고, 생성 속도도 빨라졌다. 하지만 저는 모든 한계가 기술 발전만으로 상쇄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예술의 핵심은 기술적인 정교함 이전에, 인간을 얼마나 깊이 이해하고 표현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AI가 가장 못하는 분야다. AI가 진짜 예술가의 감각을 대체하려면, 먼저 인간의 뉘앙스를 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의 말투, 표정, 행동 패턴, 미묘한 감정의 결까지. 지금의 AI는 여전히 그런 미세한 층위를 다루기엔 부족한 점이 많았다. 단순히 "더 잘 그리는 AI"가 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왜 이 사람이 이렇게 표현했는가"를 이해하는 능력이 함께 발전해야 진짜 창작의 영역에 가까워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고로 저는 기술의 발전으로 한계점은 계속해서 남아 인간의 몫이 남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창작자의 철학, 질문, 감정 같은 비물질적 요소의 중요성은 더욱 부각될 것이다. 결국 AI는 상상을 실현해 주는 로봇팔이 될 수는 있어도, 무엇을 꿈꿀지는 사람만이 결정할 수 있다.
-AI 기술이 예술계에 미칠 영향은.
“AI는 예술의 접근성과 실험 가능성을 확장시켰다고 생각한다. 기존에는 장비, 예산, 협업 인력이 필수였던 작업도 이제는 아이디어와 의도만 있다면 훨씬 빠르게 실현해 볼 수 있다. 예술의 입문 장벽이 낮아졌다는 건 단지 초보자에게 유리해졌다는 뜻이 아니라, 기존 창작자에게도 훨씬 더 과감한 시도와 실험을 가능하게 한다는 의미다. 결국 ‘더 많은 사람들이 창작할 수 있게 됐다’는 사실뿐 아니라, ‘예술가가 더 이상 하나의 역할로 고정되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열렸다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야말로 산업이 더 다양해지고 건강해지는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AI로 기술적 장벽은 낮아질 것이라고 생각된다. 어떻게 생각하는지.
“AI 아트의 확산으로 인해 예술계에 ‘Fast Art(패스트아트)’라는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다고 생각한다. 이 개념은 직접 만들었다. 현재는 예술이 패스트푸드처럼 빠르게 만들어지고 소비된다. 그 안에 지금 시대만의 감성과 문화적 함의를 담아 새로운 예술 소비의 패러다임을 만들어야 한다. 현재 도래한 가장 큰 변화는, 예술이 더 이상 '소수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변화는 예술의 권위적 구조를 해체하면서, 누구나 자신의 감각으로 작품을 선택하고, 저장하고, 공유하는, 심지어는 소비자가 생산자가 되기도 하는 민주화된 예술 생태계를 만들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형태의 예술 소비는 더 이상 소수 전문가의 평가에 의존하지 않는다.‘당신의 취향이 곧 기준이다’는 메시지를 던지며, 소비자와 작가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 기술 장벽이 낮아졌다는 것은 결국, 예술에 대한 물리적, 심리적, 경제적 장벽이 함께 낮아졌다는 뜻이고, 그로 인해 예술이 우리 일상 속으로 스며들 수 있는 공간이 더 많아졌다는 뜻이다. 이게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지금 세대가 예술을 새롭게 정의하는 방식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Portrait of Korean Food Series를 구상한 계기는.
“늘 무형의 개념을 의인화하여 초상화로 표현하는 실험을 해왔다. 특히 추상적인 개념을 인간화된 캐릭터로 시각화하는 작업에 큰 흥미를 가지고 있다. Portrait of Korean Food Series는 그 연장선에서, 한국 음식이라는 문화적 아이덴티티를 하나의 인물처럼 인격화해보려는 시도였다. 이 시리즈는 김밥, 치킨, 불닭볶음면, 빙수—이 네 가지 음식으로 시작되었고, 모두 SNS와 유튜브 등 디지털 공간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고 있는 한국 음식들을 기반으로 선정했다. 단순한 미각이나 전통의 재현이 아닌 현대인의 일상과 대중문화, 그리고 디지털 환경에서의 '소비 트렌드'를 시각화한 초상화 시리즈라고 할 수 있다. 저는 이 음식들을 마치 하이패션 화보처럼 의상과 헤드피스, 색감, 정체성을 부여해서 하나의 인물로 그려내는 작업을 해보고 싶었다. 이 작업이 가능했던 건 지금이 AI 시대이기 때문이라고 확신한다.”
-관람객(수용자)들의 반응은 어땠는지.
“대체로 ‘재밌다’, ‘신기하다’, ‘처음 보는 스타일이다’는 반응이 많았다. 제 작품은 미니멀한 구성을 추구하면서도 강렬한 색감 대비와 구조적 대칭성에 많은 공을 들이는 편이다. 이같은 노력에 ‘눈이 즐겁다’, ‘컬러감이 시선을 확 사로잡는다’는 반응이 인상 깊었다. 작품의 심미성만큼은 절대 타협하지 않는 것을 중요한 원칙으로 삼고 있다. 그래서 색감, 구도, 디테일의 조화를 통해 감각적으로 꽉 찬 이미지를 전달하려고 늘 고민하고 있다.”
-사회적 문제는 없을지.
“창작의 주체가 누군지에 대한 혼란이 커질 것으로 생각한다. AI로 만든 이미지가 넘쳐나는 지금, 우리는 그것이 누구의 창작물인지, 어디까지가 작가의 의도고 어디부터가 기계의 생성 결과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시대에 들어섰다. 결국 이건 창작의 진정성과 책임, 그리고 윤리에 대한 새로운 기준이 필요해지는 시점이라는 뜻이다. 또한 최근 이슈였던 특정 스타일이 AI에 의해 대량 재현이라던지 학습 데이터로 이미지들이 무단으로 사용되는 점에 대한 논의가 매우 시급해졌다고 생각한다. 지브리풍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는 현상을 보고 있으면 약간의 불편함을 느끼기도 한다. 많은 이들이 그것을 ‘귀엽다’, ‘예쁘다’며 소비하지만, 그 이미지들이 어떤 맥락에서 만들어졌고, 왜 그런 스타일이 반복되는지에 대한 고민은 거의 없는 경우가 많다.지브리가 수십 년에 걸쳐 축적해온 철학과 세계관은 사라지고, 단지 외형적 스타일만 복제되는 모습은 결국 기술만 남고 예술은 사라지는 상태라고 생각한다. 그건 창작이 아니라 표피적인 반복일 수 있다. AI를 활용한 예술은 그 자체로 충분히 의미 있고 아름다울 수 있지만, 그것이 예술이 되기 위해서는 결국 창작자의 존재와 철학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
-1~2년 후 예술계에서 AI는 어떻게 발전할지.
“기술적으로만 보면 이미지 생성능력은 더 정교해질 것으로 생각한다. 영상계에도 고해상도 영상이 기준이 되듯이 고해상도 이미지가 기본이 될 것 같다. 영상은 편집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발전할 것으로 생각한다. 곧 있으면 프롬프트만으로도 ‘롱폼영상’을 만들 수 있게 될 것 같다.”
-5년후 AI 기술은 어떻게 발전·적용될지.
“지금은 AI가 ‘신기한 기술’이라는 호기심의 영역에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거부감보다는 열광에 가까운 태도로 소비하고 있다. 실제로 새로운 이미지 생성 모델이 나올 때마다 SNS가 들썩이고, ‘이게 진짜 그림이야?’ 같은 반응이 쏟아진다. 하지만 저는 이 열광이 오래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분명 피로감을 느낄 거라고 본다. AI 창작물이 시장을 뒤덮고 너무 많아지면, 오히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기 시작할 것이다. ‘뭔가 다 너무 비슷해. 너무 인위적이야. 인간적인 게 그립다.’고 말이다. 누구나 인공지능을 다룰 수 있는 세상에서는 AI는 더 이상 신기하지 않고, 과잉된 ‘잘 만든 이미지’들 속에서 감정적 연결을 느끼기 어려워지는 순간이 올 것이다. 그때 사람들은 오히려 불완전하지만 인간적인 것, 서툴지만 살아 있는 것, 기계가 흉내 낼 수 없는 자연스러움에 다시 이끌리게 될 것이다. 그래서 저는 기술도 점점 그 자연스러움이라는 방향으로 진화할 거라고 생각한다. 불쾌한 골짜기를 벗어나기 위한 미세한 조정들, 감정의 리듬을 읽는 디테일,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기계적인 완성도보다 ‘사람처럼 느껴지는 것’이 더 높은 가치로 인정받는 시대가 올 것이다. 결국 5년 후 AI의 진짜 발전은 기술의 정밀도가 아니라, 얼마나 ‘자연스럽게 느껴질 수 있는가’, 얼마나 ‘기계가 아닌 사람처럼 연결될 수 있는가’라는 감각적 지점에서 평가받게 될 거라고 생각한다. 그 시점에서 인간 창작자는 ‘더 이상 할 일이 없다’가 아니라, 다시금 본질을 회복한 창작자로 재조명되는 기회가 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작가·예술가로서 목표는.
”저는 ‘모든 것들의 초상화 시리즈’를 저만의 시그니처 작업으로 발전시키려고 한다. 음식, 감정, 브랜드처럼 비물질적인 개념들을 한 인물의 얼굴로 시각화하는 방식은 앞으로도 계속 확장할 계획이다. 그리고 한 편으로는 앞으로도 사람들이 꺼려하거나 불편해하는 이야기, 그러나 반드시 누군가는 해야 할 이야기들을 작품으로 계속 표현하고 싶다. 그게 저에게 가장 중요한 창작 방향이자 태도다. 그래서 저는 팝아트적인 강렬함과 직설적 비주얼의 힘을 계속 유지할 것이다. 예쁘게 소비되기 위한 이미지보다는, 불편하더라도 진짜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이미지, 그걸 계속 만들어내는 작가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