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AI 교과서 발행사들, 정부 압박에 생존 위협... “배수진 칠 기회도 없다”

교육부, 가격협상 기한 못 지키면 ‘학교 사용 불가’ 경고 개발비용 수백억 투자한 발행사들 “투자 비용도 못 건져”

2025-02-17     구아현 기자
지난 1월 15일 방문한 대한민국 교육박람회 에듀테크코리아 AI 디지털교과서(이하 AIDT) 특별관. /구아현 기자

AI 디지털교과서(AI 교과서) 협상 과정에서 정부가 강압적인 태도를 일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AI 교과서 구독료 가격 협상이 좁혀지지 않자 AI 교과서 발행사들에게 학교에서 사용하지 못하게 하겠단 취지의 발언도 나왔다. AI 교과서 도입과 유예, 교육자료 격하 등 이미 정책적 혼란을 겪은 발행사들은 정부의 일방적인 소통에 협상 여지조차 없는 벼랑 끝에 내몰렸다고 토로한다.

17일 THE AI 취재 결과에 따르면 교육부는 AI 교과서 구독료에 대한 5차 협상이 결렬되자 발행사들에 18일 정오까지 조정 가격을 요청했다. 여기서 가격 조정이 어려우면 사용을 금지시키겠단 협박성 발언도 나왔다. 실제로 “새 학기 시작 전까지 가격 조정이 안될 경우 학교에서 사용을 못 하게 될 것”이라는 경고성 멘트가 나온 것으로 파악됐다.

이미 막대한 손실을 낸 발행사들은 난감하다는 입장이다. 한 발행사 관계자는 “교육부가 제시한 가격에 협의하지 못하면 AI 교과서를 학교에서 사용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하니 사실상 선택권이 없는 상황”이라며 “업계가 제시한 희망 가격으로 협상이 돼도 올해 AI 교과서 자율 선정으로 손해가 날 것을 예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교육부와 AI 교과서 발행사들은 지난 13일부터 이틀에 거쳐 5차 구독료 협상을 이어갔지만 타결되지 않았다. 교육부는 3~4만원 초반을 발행사들은 9~11만원 수준의 구독료를 제시한 것으로 확인됐다. 구독료에는 AI 교과서 도입에 필요한 클라우드 비용까지 포함된다.

가격 협상 간극은 크다. 발행사들은 AI 교과서를 전 학교에 도입하겠다는 정책을 믿고 수백억 원을 투자했다. 문제는 AI 교과서 도입에 관한 논쟁이 격화하면서 발생했다. 많은 돈과 인력을 투입해 애써 만든 AI 교과서를 뒤늦게 도입하지 않겠단 국회 입장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국회는 지난해 AI 교과서를 ‘교육자료’ 규정하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후 정부는 재의 요구권을 발동해 교과서 지위를 유지하지만 학교가 선택적으로 도입할 수 있게 했다. 원하는 학교에만 AI 교과서를 도입시키겠단 것이다. 이에 발행사들은 투자 대비 수익을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발행사들은 모든 학교가 자율 선택을 하게 됐고, 여러 AI 교과서 중 과목별 하나씩 선택해 도입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손해는 클 것으로 보고 있다. 이미 손실을 입고 있는 발행사들은 더 이상 뒤로 물러설 때가 없다는 입장이다. “최소 3년 평균 사용자 4만 명, 적정 가격 등 요건이 갖춰진다고 해도 발행사로서 어려움을 겪을 수 없는 상황”이라며 “정권 불안정으로 향후 정책 방향성에 대해 장담할 수 없어 발행사들이 더 큰 손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고 어려움을 토해냈다.

정부도 AI 교과서 구독료 가격을 지원하긴 어렵다는 입장이다. 교육부는 AI 교과서 구독료를 별도 예산으로 지원하는 게 아닌 기존 지방교육재정교부금에서 지원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지방마다 충분한 금액이 확보돼 있지 않기 때문에 지원은 어렵다고 전했다.

이번 가격 협상에 따라 작은 업체들은 사업 위기가 찾아올 수도 있다. 한 개발사 관계자는 “AI 교과서로 손해를 보면 작은 업체일수록 살아남지 못할 수 있다”며 “스타트업에게는 위기”라고 말했다.

운영 비용도 문제다. 개발 비용 외에도 AI 교과서 운영 비용이 발생하고 있는데 이 금액 충당도 힘들다는 게 개발사들의 입장이다. 한 관계자는 “AI 교과서 웹 전시부터 각 학교 민원 대응에 연수 및 행사 요청까지 인력과 비용을 계속 쓰고 있다”며 “정부가 제시한 비용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을 정도로 손해가 크다”고 말했다.

인력 불확실성도 커졌다. 불안정한 정부 정책과 AI 교과서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들로 인해 AI 교과서를 만든 개발자·업계 관계자들의 사기는 낮아지고 있다. 한 AI 교과서 개발자는 “교육 발전을 위해 만든 AI 교과서가 정부의 잘못된 정책 추진으로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며 “AI 교과서를 만들려고 최선을 다했는데 제대로 평가도 받기 전에 부정적인 인식들로 인해 개발자들의 자긍심이 바닥을 쳤다”고 말했다.

만약 가격 협상이 계속 연장돼 학기가 시작되었을 경우 교육부는 현재 대통령령에 명시돼 있지 않는 상황이 발생 시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절차상 법률 검토를 하겠다고 밝혔다. 교육부 관계자는 “교육부는 2월 말까지 가격 협상이 안될 경우 절차상 법률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AI 교과서는 올해 3월부터 초등학교 3·4학년, 중학교 1학년, 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학, 영어, 정보 과목을 우선 도입한다. 지난해 11월 말 최종 검정에 통과된 76종의 AI 교과서가 선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