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英 불참 속 막 내린 파리 AI 정상회의… 글로벌 협력 한계 증명
AI 행동 정상회담 폐막식서 ‘파리 선언문’ 채택 58개국 채택... 美, 과도 규제 비판·AI 패권 유지 강조 EU, 300조원 투자계획 발표 AI 경쟁 뛰어들어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된 AI 행동 정상회의가 미국과 영국의 불참 속에 ‘파리 선언문’을 채택하고 막을 내렸다. 미국은 AI 기술 1위 국가이고 영국은 AI 안전한 발전을 목적으로 AI 정상회의를 처음 개최한 나라다. 이들이 선언문에 서명하지 않으면서 개방적·포용적·윤리적 AI 개발을 위한 국제 협력 강화라는 행사 취지는 무색해졌다. 이번 행사로 글로벌 협력의 한계가 드러났다.
◇ 미국·영국 빠진 지속 가능·포용적 AI 파리 공동선언 채택
11일(현지시간) 엘리제궁과 로이터 등 외신에 따르면 ‘사람과 지구를 위한 지속 가능하고 포용적인 AI에 관한 선언문’에는 프랑스, 인도, 독일, 중국, 한국, 일본, 호주, 캐나다 등 58개국과 EU, 아프리카연합 등이 서명했다. 이 선언문은 AI가 개방적이고 포용적이며, 윤리적이고 안전해야 한다는 원칙을 담고 있다.
공동 선언문에서는 AI의 다양성과 포용성을 강조하며, AI 접근성 향상, 윤리적이고 안전한 국제 프레임워크 구축, 시장 독점 방지, 노동시장 발전 도모, 지속가능성 확보, 국제 협력 강화 등을 핵심 과제로 선정했다. 아울러 AI 기술의 투명성과 신뢰성 확보를 위해 공동 노력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AI 기술 주도권을 쥐고 있는 미국은 강력한 EU 규제를 비판하면서 서명에 불참했다. 폐막 세션 연설에서 JD 밴스 미국 부통령은 “AI 산업에 대한 과도한 규제는 변혁적 기술을 죽일 수도 있다”며 “AI는 반드시 이념적 편향에서 자유로워야 하며, 미국의 AI가 권위적 검열 도구로 전락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럽의회는 지난해 세계 최초로 AI를 규제하는 포괄적인 법안인 ‘AI법(AI Act)’을 통과시켰다.
그러면서 EU의 디지털 서비스법(DSA)과 온라인 개인정보 보호 규정(GDPR)에 대해 거론하며 “과도한 규제가 중소기업에 끝없는 법적 준수 비용을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밴스 부통령은 이번 파리 정상회의 연설 직후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과 프랑스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의 연설을 듣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이후 그는 별도로 두 정상과 회담을 가졌다고 알려졌다.
트럼프 행정부의 자국 우선주의 기조가 이번 AI 공동선언문 서명 불참으로도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는 파리기후변화협정, WHO, 유엔 인권이사회 탈퇴 등 국제협력 체제 이탈과 맥을 같이한다. 중국이 오픈AI 추론모델 ‘o1’ 수준의 성능을 갖춘 저비용 고성능 모델을 오픈 모델을 포함해 출시하면서 AI 주도권 경쟁이 격화되는 상황에서 미국 견제 강화로 공동선언문 채택이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됐었다.
이날 밴스 부통령은 “미국 AI 기술이 앞으로도 세계 최고 표준이 되도록 할 것”이라며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가장 강력한 AI 시스템을 미국에 구축할 것”이라고 말하며 유럽과 중국에 대한 견제를 드러내며 미국이 AI 주도권을 주도하겠다는 의지를 공고히 했다.
영국 역시 서명에 불참했다. 2023년 AI 안전 정상회의를 처음 개최하고 안전한 AI 개발 국제 연대를 강화하는 ‘블레츨리 선언’ 채택을 이끌었던 행보와는 반대된다. 이에 일각에서는 미국 트럼프 정부 이후 미국과 관계 강화에 집중하고 있는 영국 노동당 정부가 미국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파리 선언문에 서명하지 않은 것이라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AFP 통신에 따르면 영국 총리실 대변인은 “국가 이익에 부합한다고 판단되는 이니셔티브에만 서명할 것”이라고 말하며 파리 선언문은 영국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다고 전했다.
◇ EU, 과도한 규제 풀고 투자·혁신 강화
EU는 이번 정상회의를 계기로 AI 정책에 변화를 시도했다. 그동안 규제 중심이었던 정책 기조를 투자와 혁신 촉진으로 선회한 것이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이날 연설에서 약 300조원 규모의 민간·공공자본 투자 계획인 ‘인베스트AI 이니셔티브’를 발표했다.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미국과 중국에 비해 유럽이 뒤처지고 있다는 말은 동의할 수 없다”며 “AI 경쟁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이어 “기업을 위해 불필요한 규제를 줄이겠다”고 밝혔다.
앞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폐막 연설에서 “유럽 AI 산업이 번성할 수 있도록 EU는 규제 완화를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프랑스는 이번 정상회담 개막 전날 1090억 유로(약 164조원) 규모를 AI에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는 프랑스 입장에서 미국이 AI 프로젝트 ‘스타게이트’에 투자하겠다고 발표한 5000억 달러(약 725조원)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 중국 선언문 서명… 밴스 美 부통령 중국 겨냥 발언
주목할 만한 점은 미국과 AI 패권을 두고 경쟁하는 중국이 이번 선언문에 서명했다는 사실이다. 장궈칭 중국 부총리는 “중국은 AI 안전을 보장하고, 성과를 공유하며, 인류 공동체를 위한 협력을 지속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밝혔다.
밴스 부통령은 이날 중국을 겨냥해 “권위주의 국가들이 보조금을 지급해 저가 기술을 시장에 수출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며 “일부 권위주의 정권은 AI로 군사 정보와 감시 역량을 강화에 외국 데이터를 훔치고 다른 국가의 국가 안보를 훼손했다”고 말했다. 이어 “트럼프 행정부는 이러한 문제를 완전히 차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중국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지 개인정보를 무차별적으로 수집하고 AI를 군사 무기와 국민 감시에 활용하고 있는 중국을 겨냥한 발언으로 보인다.
이에 AI 기업들은 이번 정상회의의 성과에 대해 실망감을 표명했다. 다리오 아모데이 앤트로픽 최고경영자(CEO)는 이번 정상회의에 대해 “AI 기술이 통제 없이 발전하면 돌이킬 수 없는 위기를 초래할 것”이라며 이번 정상회의에서 AI 공급망 관리, 보안 위험, 노동시장 변화 등 중요한 이슈를 다루지 못한 것을 ‘놓쳐버린 기회’라고 평가했다.
한편, 영국, 한국, 프랑스에 이어 내년에 열리는 AI 정상회의는 인도에서 개최될 예정이다.